팔레스타인은 어떻게 이스라엘의 실험실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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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은 어떻게 이스라엘의 실험실이 되었을까?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1.01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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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 실험실: 이스라엘은 어떻게 점령 기술을 세계 곳곳에 수출하고 있는가 | 앤터니 로엔스틴 지음 | 유강은 옮김 | 소소의책 | 356쪽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이후 끊임없이 벌어진 분쟁 상황을 조명하면서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유대 국가의 위상을 갖게 되었는지도 살펴본다. 저자는 그 자신이 유대인으로서 새로운 문서와 관련자들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자행되는 불법적인 감시와 차별, 통제 등 인권 침해의 민낯을 보여주며, 또한 이스라엘의 무기와 점령 기술이 전 세계에 어떻게 파급되고 있는지를 통찰력 있게 파헤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깊은 뿌리를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팔레스타인 실험실’이다. 이스라엘이 장벽과 드론, 감청 장비 등으로 가자를 에워싼 것은 가자에 꼼짝없이 갇힌 23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세계 최대의 지붕 없는 감옥에 영원히 수용해두고도 아무런 부작용이 없을 거라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금 이 순간도 가자에서 초토화 작전을 수행하며 신무기를 실전에서 시험하고 있다. 또한 소셜 미디어에서는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는 데 사용된 자신들의 전쟁 무기를 버젓이 홍보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실험실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책은 이스라엘이 아파르트헤이트 남아프리카공화국, 피노체트의 칠레, 차우셰스쿠의 루마니아, 수하르토의 인도네시아, 그리고 1994년 집단 학살 전후의 남수단, 르완다의 권위주의 정부를 포함하여 지난 75년간의 방위 동맹에서 이루어진 비밀스러운 관계를 자세히 보여주는 새로운 문서를 공개하고, 이스라엘이 어떻게 무기 산업과 정교한 감시 및 정보 장비를 설계하고 판매하는 글로벌 리더가 되었는지 심층적으로 파헤친다. 그 밑바탕은 팔레스타인 점령 이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을 통제한 경험이며, 많은 나라에서 이스라엘을 성공 모델로 삼아 모방하기를 원한다. 그만큼 팔레스타인은 완벽한 실험실이 되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대해 이전에 쓰인 적이 없으며 분쟁의 새로운 면을 드러내는 이 책은 한 세기 안에 이스라엘과 같은 더 많은 민족국가가 번성하는 것을 필연적으로 보게 될 조사이자 경고이다.

오늘날 유대 국가의 길은 분명하다. 독재 정권과 때로는 반유대주의 정권(헝가리, 폴란드 등)과의 동맹, 그리고 권위주의 국가에 무기를 판매하고 팔레스타인 점령을 무기한 유지하는 것이다. ‘네타냐후주의’라고 부르는 현대 이스라엘의 정책은 민족주의, 반이민, 반무슬림, 친트럼프 의제로 요약된다. ‘부수적 피해’, ‘테러와의 전쟁’, ‘평화 프로세스’ 등은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대중화한 문구다. 이스라엘은 아랍과 팔레스타인 전체를 악마화하는 언어와 행동을 사용하여 미국이 현재 전 세계에서 싸우고 있는 ‘적’에 대한 언어적·군사적 전투를 주도해왔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팔레스타인 점령이나 중동에서의 군사적 모험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국민은 요르단 강 서안에서 기록적인 수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무기한 구금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종 청소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급진적 유대 극단주의자들이 활개를 쳐도 여전히 민주 국가임을 자처하고 지지를 표명한다. 물론 세계 곳곳에 조직된 유대인 공동체와 인권 단체들을 중심으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기에는 아직까지 역부족이다.

이스라엘은 인권에 대한 자유주의적 가치를 거부하고 팔레스타인 땅을 무단 점령했지만 서구에서는 유대 국가의 접근 방식을 수용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방위 산업은 호황기를 맞았다. 900만 명의 작은 나라가 갑자기 ‘테러와의 전쟁’을 앞장서 이끌자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까? 당장의 전망은 불투명하지만 이스라엘의 국가 정책이 시온주의를 고수할 것인지,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의 중대 갈림길에 서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책에 언급되는 많은 자료와 논평을 제공한 이스라엘의 인권변호사 에이타이 맥은 팔레스타인 실험실이 빛을 잃으려면 많은 이스라엘인에게 세계 곳곳에 죽음과 비참을 파는 것은 최악의 유산이 되리라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러시아와 이스라엘부터 중국과 미국에 이르기까지 무책임한 국가의 힘에 지배당하는 세기에 이스라엘식의 종족민족주의가, 극단주의적이고 편향적인 인식이 팽배하면 얼마나 끔찍하고 잔혹한 희생이 뒤따르는지 이 책을 통해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21세기의 이스라엘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들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면서 매우 성공적이고 수익성 높은 사업을 펼친다. 이 책은 정교한 무기와 감시 장비를 설계 및 시험하고 ‘팔레스타인 실험실’을 중요한 홍보 포인트로 부각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이 어떻게 디지털 및 군사 산업 단지의 개념과 그것이 스파이, 안면 인식, 데이터 보존, 드론 및 전쟁에 관한 21세기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지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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