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포스의 왕정이 없었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정복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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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포스의 왕정이 없었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정복도 없었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1.01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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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 아버지와 아들의 세계정복기 | 에이드리언 골즈워디 지음 | 전경훈 옮김 | 책과함께 | 864쪽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와 그의 유명한 아들에 관한 책이다. 고대 그리스 변방의 작은 국가에 불과했던 마케도니아를 그리스 최강의 패권국으로 만들고, 페르시아 점령과 동방 원정으로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으며, 헬레니즘 문명의 초석을 닦은 정복자 부자의 일대기를 담았다.

불가피하게도 고대 또는 현대에 거의 모든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다. 그러나 마케도니아를 개조하고 통합하여 더욱 크고 강한 국가로 만든 것은 필리포스였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군대를 조성하고 심지어 페르시아 공격 계획을 세운 것도 그였다. 필리포스가 없었다면 알렉산드로스도 없었을 것이다.

저자 골즈워디는 이 책에서 두 인물의 이야기를 깊고 자세하게 다룬다. 특히 그동안 연구나 저술에서 간과되었던 필리포스의 성취를 최대한 되살려내며, 그를 바라보지 않고는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이해도 온전할 수 없다고 말한다. 두 사람 모두를 바라보아야 그들을 각각 올바른 맥락 속에 둘 수 있으며, 그들의 업적 또한 뚜렷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필리포스가 즉위했을 때 마케도니아는 위기에 놓여 있었다. 전임 통치자였던 그의 형 페르디카스 3세가 일리리아 군대의 손에 완패해 목숨을 잃었고, 마케도니아는 주변 지역의 포식관계에 노출되어 언제든 침공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검증되지 않은 23세의 젊은 왕이 약소국 마케도니아의 운명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킬 것이라고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즉위 후 필리포스는 사리사(6미터 길이의 장창)라는 새로운 무기를 고안했고, 창병 팔랑크스(고대 그리스의 중보병 대형)를 정비해 전쟁에 적합한 강력한 군대를 만들었다. 장차 필리포스 치세는 물론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에서도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어 세계를 제패할 군대였다. 필리포스는 즉위하자마자 주변국의 위협을 물리쳤고, 아테네와 테바이를 비롯한 대형 그리스 도시국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그리스 패권을 장악했으며, 페르시아에 맞선 범(凡)그리스 연합군의 지도자로 추대되었다. 명실상부 그리스의 패자는 필리포스였다.

필리포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알렉산드로스가 왕좌에 올랐을 때는 페르시아 원정에 몰두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이 마련되어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20여 년간 성공의 경험을 쌓은 크고 자신감 넘치는 군대와,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던 강력한 제국을 물려받았다. 통치 초기 나라의 해체 위기에 직면한 필리포스와 달리, 알렉산드로스는 왕국의 존속을 염려하거나 계속되는 성공이 좌절될 것이라고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었다. 미래의 성공을 꿈꾸는 것이 당연했다. 물론 그렇게 큰 꿈은 알렉산드로스 같은 자만이 꿀 수 있는 것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맹렬하면서도 영리하고 치열하게 싸우는 지도자였다. 짧고 장렬한 생애 말미에 그는 페르시아를 점령하고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오늘날의 파키스탄으로 진군해 아드리아해에서 인도까지 뻗은 제국을 세우며 고대 세계지도를 다시 그렸다. 어느 허구의 영웅보다 많은 승리를 거두었으며 패배를 겪지 않은 정복자였다. 그가 더는 정복할 땅이 없어 눈물을 흘렸다거나, 나설 싸움이 없어 칼을 집어넣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가 그토록 짧은 시간에 이룬 일들이 작아지지는 않는다.

저자는 알렉산드로스와 관련된 자료를 총동원해 그의 생애와 원정의 과정을 생생하게 펼쳐낸다. 각 전투 장면의 세세한 묘사는 마치 눈앞에 격렬한 싸움의 현장이 보이는 것처럼 선명하게 재현해냈다. 또한 신화로 남은 영웅에게 덧씌워진 무늬를 지우고 인간의 맨얼굴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전체 서술에서 이것이 인간의 역사임을 반복해서 강조하는데, 이는 알렉산드로스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역사상 누구도 필적할 수 없는 성취를 이루었지만, 알렉산드로스 역시 실수와 후회를 반복하는 한 인간이기도 했다. 그는 술에 취해 평생을 그의 아버지와 그의 아래에서 헌신해온 장군을 홧김에 살해한 후 후회로 자살 시도를 하기도 하고, 도저히 변호할 수 없는 학살을 저지르기도 했다. 페르시아 복식과 의전의 무리한 도입으로 부하들의 원성을 사거나, 세계 정복에 대한 병적인 집착으로 수많은 병사를 희생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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