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개의 물건으로 현대 한국인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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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개의 물건으로 현대 한국인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읽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1.01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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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동산이 현대사 세트: 전우용의 근현대 한국 박물지』 |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1,536쪽

 

『잡동산이 현대사』는 지금 우리에게 익숙하고 사소한 물건들이 언제 이 땅에 들어와 어떻게 우리 삶을 바꿔놓았는지 이야기한다. 1권 ‘일상·생활’, 2권 ‘사회·문화’, 3권 ‘정치·경제’로 나눠 묶었다. 매일 먹는 음식이나 평범한 물건 등 사소한 것부터 건물과 시설, 문서에 이르기까지 281개의 항목을 통해 근현대 한국사를 읽는다. 이 책은 물건의 유입사와 내력을 설명하고 그로 인해 달라진 한국인의 삶의 모습을 그려낸다. 다양한 물건들을 통해 한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뿐 아니라, 물건들의 역사와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인의 행태, 습성, 정신 등을 조망하고 생활상과 그 변천사를 살필 수 있다.

이처럼 이 책은 현대 한국인의 삶과 의식을 형성한 ‘물건’의 역사를 다루지만, 내용과 서술이 미시사적 소재주의로 떨어지지 않는다.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 사회에 유입된 물건들이 한국인들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여 삶의 양식과 가치관을 만들어냈는지 이해하려고 한다. 서구화, 식민주의, 산업혁명이 추동한 대량생산과 대중소비, 기술혁신이라는 시대 조건에서 우리 삶에 들어온 물건들은 한국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저자의 말처럼 전등이 없는 시대에서 있는 시대, 냉장고가 없는 시대에서 있는 시대로의 이행은 그 어떠한 역사적 분기점 못지않게 중요하다.

물건이라는 물질적 조건은 현대인의 습관과 정신을 주조했을 뿐 아니라 제도와 관습을 결정하고 정착시켰다. 물건의 근현대사라는 이 책의 주제를 통과하면 현대 한국인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사회 제도와 풍습은 어째서 그러한지가 보인다. 저자는 ‘물건’이 언제, 근현대사의 어느 국면에서 들어와 한국인의 생활과 의식에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이 물건들이 한국 역사와 어떻게 조응했는지를 살핀다. 따라서 ‘물건의 근현대사’는 ‘한국 근현대사’를 읽는 저자 고유의 방법이자 관점이다. 저자는 작은 물건 하나에 온축된 한국인의 삶과 한국 근현대사를 꺼내어 펼쳐 보여준다.

요컨대 이 책은 물건을 사용하며 변화해가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시대를 읽으려 한다. 우리는 하루 중 대부분을 물건과 상호작용하면서 보내기 때문에, 물건의 특성이 달라지면 그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과 시대의 특성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기껏해야 닷새에 한 번 시장 생활을 경험하던 사람과 스마트폰에 시장을 담고 사는 사람의 감각이 같을 수는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장주의형 인간’이 늘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건의 유입사와 내력을 살피는 것은 그 자체가 흥미롭고 호기심이 생기는 일이지만,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쓸모없는 잡다한 물건’인 잡동사니들의 역사는 우리 자신을 알고 다가올 시대를 가늠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 의식주를 다루다

■ 잡동산이 현대사 1 일상ㆍ생활: 전우용의 근현대 한국 박물지 |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516쪽

1권(일상생활)은 2권(사회문화), 3권(정치경제)에 비해 더 미시적인 소재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책이 현대 한국인의 삶을 구성하는 물질적 조건을 다루고 있기에 ‘몸’이라는 주제(1장 「닦고 가꾸다」)가 책 맨 앞에 배치된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 뒤로 의(衣, 3장 「입고 지니다」), 식(食, 2장 「먹고 맛보다」), 주(住, 4장 「생활하고 거주하다」)에 관한 소재들이 뒤따른다. 

‘이태리타올’은 이탈리아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목욕용품이다. 이국적이고 고급스러운 이름은 사실 궁핍했던 한 시절의 생활상과 사람들의 원망(願望)을 암시한다. 1968년 부산의 김필곤이 이탈리아산 비스코스 레이온으로 마찰력 있는 수건과 장갑을 만들어 실용신안 특허를 얻었고, 곧 전국의 대중목욕탕과 가정에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이태리타올은 대중목욕탕에 자주 가기 부담스럽고 목욕하기가 어려웠던 우리네 형편과 더불어 유럽산 제품에 대한 당대 한국인들의 동경이 반영된 물건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서구 열강과 일제의 침략이 ‘물건’의 유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경우가 많은 게 한국 근현대사의 특징이다. 1871년 강화도 바다에 정박한 미군 함대에 보낸 조선의 문정관(問情官)은 그들의 의도는 파악하지 못한 채 맥주만 한아름 선물받아 돌아왔다. 이 땅에 처음으로 맥주가 도래한 그 장면은 사진으로 남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가 대맥(大麥) 재배를 장려했는데 일본 맥주회사들에 값싼 원료를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일본 맥주회사들은 그 맥주를 조선에서 판매하여 이익을 얻었다. 이중의 착취 구조였다. 그럼에도 맥주는 ‘개화인의 술’로 인식되었고, 지금 가장 대중적인 주류로 소비되고 있다.

저자는 주거 생활의 변화가 가정 내 역할 분담과 가족 관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온수보일러’는 따뜻한 물을 사용할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온기의 평등’을 나눌 수 있게 함으로써 구성원 간 수평적 관계를 만드는 데 일조했을 거라는 해석이 그 하나다. 1969년 첫선을 보인 싱크대는 남성들을 부엌으로 유도하는 데 기여했으며, 같은 해 상용화된 전기세탁기로 인해 여성들은 가사 노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1887년 2월 10일 경복궁에 전등이 처음 설치되었을 때를 가리지 않는 발전기의 소음 때문에 ‘건달불’로 불렸던 전등은 이내 밤을 몰아내고 불야성(不夜城)을 선사함으로써 현대인이 쓸 수 있는 시간(노동, 여가 시간 등)을 크게 늘렸다. 1893년 제중원 의사 올리버 애비슨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들여오기 전, 안경은 몹시 비싼 물건이었으며, 어른에게 안경 낀 모습을 보이는 건 무례한 일로 간주되었다. 안경이 노화와 노인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100여 년 전까지 집 한 채 값에 육박할 정도로 귀했던 안경은 이제 안 쓴 사람이 드물 정도로 흔한 물건이 되었다. “현대인이 근시라는 ‘시대 병’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안경 덕이다.”


현대 한국인의 교육·문화·사회관계·공간·환경 분야를 조망하다

■ 잡동산이 현대사 2 사회·문화: 전우용의 근현대 한국 박물지 |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500쪽

2권(사회·문화)은 총 4개의 장 85개의 항목으로 구성하여 한국 현대인의 교육·문화·사회관계·공간·환경 등을 조망한다.

1장 「배우고 향유하다」에서는 교육과 문화를 다룬다. ‘유치원’은 오늘날 사실상 의무교육처럼 되어 현대인의 사회화가 시작된 곳이라 부를 수 있으나, 처음에는 부잣집 자제들의 조기 교육기관으로 출발했다. ‘동화책’은 현대인에게 인류가 함께 지향하는 보편 가치를 만드는 데에 크게 기여한 물건이다. ‘연필’의 등장으로 모두가 글씨 쓸 줄 아는 시대가 열렸으며, ‘타자기’가 들어오며 글씨 쓰는 행위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호루라기’는 교육 현장에서 널리 쓰이며 현대인의 몸에 규율을 새기는 데에 큰 역할을 했으며, ‘생활계획표’는 타율을 자율로 인식하고 시간 규율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인간으로 변화한 데에 상당한 구실을 했다.

2장 「어울리고 소통하다」에서는 현대 한국인이 어떤 방법으로 소통하고 서로 어울렸는지, 즉 사회관계 형성에 영향을 끼친 물건들을 살핀다. ‘전화기’는 들여놓으려는 사람은 많은데 설치할 수 있는 전화기는 적은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1970년대 말까지 웃돈을 주고 매매해야 할 만큼 귀했다. 전화 보급률이 낮던 시기에 ‘전화번호부’는 부자 인명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축구공’은 아이들의 신체 조절 능력을 향상시켰으며, 경쟁과 협동이라는 이율배반적 가치를 함께 수용할 수 있도록 했고, 더 좋은 결과를 위해 기회를 양보하는 태도를 가르쳤다.

3장 「조성하고 개조하다」에서는 ‘전봇대’, ‘광장’, ‘댐’, ‘터널’, ‘마천루’, ‘시멘트’, ‘페인트’, ‘불도저’와 같은 항목들을 살펴보며 통해 현대 한국인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하여 자연환경을 어떻게 개조하였는지 돌아본다. 그리고 4장 「타고 오가다」에서 우리가 가장 자주 이용하는 이동수단인 ‘승강기’서부터 ‘자동차’, ‘기차’ 등 여러 가지 교통수단과 ‘드론’의 등장까지 살펴보며, 위 공간들을 어떤 수단으로 자유롭게 왕래하며 향유했는지 알아본다. 한국 현대사와 조응하여 해방 이후 압축 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인의 행태와 습성의 변화 양상 조망한다.


조선의 백성에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국가와 세계의 일원이 되어간 현대 한국인의 형성 과정

■ 잡동산이 현대사 3 정치·경제: 전우용의 근현대 한국 박물지 |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520쪽

3권(정치·경제)에서는 정치와 경제, 의료, 국제 관계와 관련이 있는 물건들을 다룬다. 1장 「다스리고 통제하다」에서는 근대 국가로 이행하며 나타난 새 제도와 관련된 ‘공소장’, ‘구속영장’과 국민 만들기의 일환으로 나타난 ‘태극기’, ‘국기게양대’, ‘표창장’ 같은 물건들을 살핀다. 2장 「개발하고 융통하다」에서는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돈’을 비롯해 생산력의 급격한 증가를 가능하게 해준 ‘석유’, ‘역직기’, ‘발전기’ 같은 물건을 다룬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시장주의적 인간으로 변해가는 현대인에 대해 논평을 가하기도 한다. 3장 「예방하고 치료하다」에서는 ‘병원’, ‘신장계’, ‘체온계’ 같이 우리의 신체와 건강을 규율하는 제도와 물건, ‘구충제’, ‘금계랍’, ‘항생제’ 같이 질병을 물리쳐준 약품을 소개한다. 4장 「교류하고 나아가다」에서는 ‘만국기’, ‘지구본’ 같이 근대 한국인이 국가를 넘어 세계를 인식하게 도와준 물건들과 ‘인공위성’, ‘자율주행자동차’ 같이 미래를 열어갈 물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치 주제를 다루는 장에 ‘양초’, 의료 주제를 다루는 장에 ‘네이팜탄’이 배치된 것은 흥미롭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초’(촉燭)는 매우 비싼 사치품으로서 조명 용품이라기보다는 제사 용품으로 쓰였다. 초는 엄청나게 비싼 물건이었기 때문에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읊은,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도 떨어진다”라는 시구는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서양에서 파라핀 왁스로 만든 ‘양초’(洋燭)가 전래된 이후, 초는 점차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최근에 와서 양초는 특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무드등으로 주로 사용되었는데, 2000년대 이후 각종 ‘촛불시위’의 주요 소품으로 쓰이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은 섭씨 3,000도까지 올라 주위의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네이팜탄을 개발한다. 네이팜탄 공습을 당해 도쿄에 큰 피해를 입은 일제는, 네이팜탄이 서울에 투하될 것에 대비해 종묘에서 남산에 이르는 구간의 집들을 강제 철거해버려서 불이 옮겨붙지 않을 소개공지대를 만든다. 소개공지대는 1960년대에 판잣집 밀집 지대가 되었다가, 세운상가나 어린이공원 등으로 변모했다. 한국전쟁 중에는 네이팜탄이 실제로 사용되어 많은 피해자가 생겨났는데 이들을 위해 처음으로 시행된 것이 성형수술이다. 그전에 한국에는 성형외과도, 성형수술도 없었다. 1961년 처음 성형외과 전문 진료가 시작되었고, 50여 년이 지난 지금 성형외과 의원은 한국에서 성행하는 ‘몸 관련 산업’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네이팜탄 때문에 생긴 역사의 상흔은 오늘날의 성형수술과 연결된다. 이처럼 생각지 못했던 주제와 물건의 관련성을 밝혀내면서 현대 한국인이 형성된 경로를 추적하는 것도 이 책이 지닌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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