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네 아들 … 서로 다른 삶, 서로 다른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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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네 아들 … 서로 다른 삶, 서로 다른 음악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1.0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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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흐의 네 아들 | 마르틴 겍 지음 | 강해근·나주리 옮김 | 풍월당 | 248쪽

 

이 책은 바흐의 네 아들의 활동을 서술하면서 자연스럽게 바로크와 고전주의 사이 시기를 조명한다. 바로크적/교회적 질서가 해체되고 계몽적/시민적 질서가 새롭게 형성되던 이 시기의 역동적인 모습은 바흐의 네 아들의 삶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버지 바흐의 유산을 물려받은 네 사람은 사실상 모두 나름대로 음악적 측면에서 탁월했다. 다만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적응하고 그 시대에 맡겨진 과제를 얼마나 명확하게 인식했는가에 따라 그들의 평가가 달라졌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바흐의 네 아들은 우리가 그동안 잘 모르고 있던 ‘전고전주의’ 시대의 음악적 초상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활동하는 동안 그의 위대성을 바르게 인식한 전문가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바흐는 사후 빠르게 잊혀 갔다. 그런 가운데 아버지로부터 음악교육을 받은 네 아들은 천재적 재능을 지녔음에도 힘겨운 삶을 살거나(빌헬름 프리데만), 아버지의 후광에 기대어 출발하여 마침내 음악의 새로운 변화를 선도하며 큰 명성을 누리거나(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또는 소박하게 한 자리에 머물며 시류의 변화를 따르고(요한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일찍이 독일을 벗어나 아버지와는 다른 영역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요한 크리스티안), 각기 다른 삶을 살았다. 비록 삶의 모습은 달랐지만 그들은 “형이 작곡하기 위해 살았다면, 나는 살기 위해 작곡했다”는 막냇동생의 고백처럼 모두가 치열하게, 애써 쟁취한 자리에서 자신들의 주변 환경을 개척하고 때로는 돌파해 가며 한 시대를 앞장서 헤쳐 나갔다. 그들은 ‘갈랑’, ‘감정양식’, 혹은 ‘전고전주의’로 불리는 한 시대의 주역이었고, 그럼으로써 고전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의 물꼬를 트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역자에 의하면, 바흐의 네 아들이 차지하는 이러한 역사적 위치와 의미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의 편협함 때문이다. 우리는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가 하이든과 베토벤에게 끼친 영향이나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를 사숙한 모차르트의 경우 등 그들의 시대적 역할에는 주목했으나 정작 그들이 추구했던 음악적 이상에 대해서는 진지한 관심을 보이지 못했고, 그들이 남긴 작품들의 예술성을 바르게 평가하는 일에도 크게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은 우리 곁에서 멀어졌고, 낯선 음악이 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흐의 네 아들을 대할 때 좀더 공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임할 것을 촉구하는 저자 마르틴 겍은 바흐의 네 아들의 개성을 탁월하게 포착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의 관계, 그에게서 물려받았을 재능과 기질적 요소를 연결시켜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먼저 빌헬름 프리데만은 즉흥연주에 뛰어난 독일 최고의 오르가니스트이자 아버지의 작곡 방식을 독창적으로 계승한 불운한 천재로 묘사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버지 바흐가 가지고 있었던 천재성과 더불어 직무상의 무능이 함께 있었고, 이것이 그를 실패로 이끌었다. 

반면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의 경우에는 아버지 바흐의 사교성과 지칠 줄 모르는 근면함, 커리어를 가꿀 줄 아는 수완이 있어 출세와 성공을 가능케 했다. 그는 아버지 바흐가 동시대 신학자들과 활발히 교류한 것처럼 당대의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계몽주의적 신념을 널리 알리는 작품들을 써서 시대의 선구자가 되었다. 마르틴 겍은 클라비어 소나타, 협주곡, 오라토리오, 가곡 등을 아우르는 그의 넓은 음악 세계와 후대에 미친 영향을 인상 깊게 서술한다.

뷔케부르크에서 활동한 요한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바흐는 이 책에서 다뤄지는 바흐의 아들들 가운데 가장 덜 알려진 인물이다. 비록 대중적 성공이나 음악가 사회에서의 명망을 얻지는 못하였지만, 겍은 그를 “미학적 수준에서 형제 가운데 유일하게 성숙기의 빈 고전주의로 다가선” 작곡가라 묘사한다. 한편 ‘런던 바흐’로 잘 알려진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는 아버지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간 아들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성공하고 대영제국의 수도에 정착한 그는 당대 가장 성공한 오페라 작곡가였다. 겍은 아버지에게 잠재되어 있던 극음악적 재능이 이 아들에게서 발현된 것이라고 지적하며 “그의 음악의 본질인 경쾌함과 여유로움”이 빈 고전주의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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