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의 여의주를 얻어야 진정한 ‘용’으로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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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의 여의주를 얻어야 진정한 ‘용’으로 비상
  • 임재해(林在海) 안동대 명예교수·민속학
  • 승인 2024.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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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띠로 보는 갑진년

 

새해는 갑진년 용띠 해이다. 용은 12지 띠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가상의 동물이다. 그러나 아무도 가상의 동물로 여기지 않을 만큼 친숙하게 일컬어진다. 따라서 일상용어에 용으로 일컬어지는 말들이 아주 흔하다. 인명과 지명의 고유명사에는 물론, 특별한 사물이나 사실을 일컫는 보통명사에도 용이 들어간 말이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미꾸라지 용 됐다.’거나 ‘용이 여의주를 얻었다.’ ‘장사 나면 용마 난다.’ 등 용에 얽힌 속담도 숱하게 많다.

친근한 인식과 달리 용은 초월적 존재로서 곧잘 신격으로 숭배된다. 용이 농촌에서는 풍농 기원의 농업신이고, 어촌에서는 풍어 기원의 어업신이다. 불교를 수호하는 호법신인가 하면, 나라를 지켜주는 호국신이기도 하다. 용산에 올라가 기우제를 올리고 바다에서 용왕굿을 하는 일들은 모두 용신신앙의 전통이다. 그러므로 용은 예사 동물과 달리 신격화 되어 다양한 신앙문화를 창출했다.

용의 초월적 신성성은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 따라서 왕은 으레 용으로 은유되어 왔다. 왕이 곧 용인가 하면, 왕의 얼굴은 용안(龍顏)이고 왕의 옷은 용포(龍袍)이며 왕이 앉는 자리는 용상(龍床)이다. ‘용비어천가’는 세종의 직계 조상 6대조를 모두 육룡(六龍)으로 일컬었다. 이처럼 왕은 용의 존재로 신비화되어 높이 숭상되기 일쑤였다. 봉건왕조의 잔재에 따라 지금도 대통령을 용인 양 섬기며 성역화 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용이라고 하여 다 신성하거나 숭상되는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 악룡은 퇴치의 대상이다. ‘용비어천가’의 서두는 “해동(海東) 육룡(六龍)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天福)”으로 시작된다. ‘우리나라에 여섯 용이 날으시어서 하는 일마다 하늘에서 복을 내려 매사가 잘 풀려나갔다’는 뜻이다. 노래 제목과 시작에서 한결같이 용의 비상을 노래했다. 왜냐면 용이 날아오를 때 비로소 초월적 능력을 발휘하는 까닭이다. 따라서 날지 못하는 용은 허울만 용일 뿐 사실상 용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용이라는 사실보다 어떤 용인가 하는 정체성이 더 중요하다. 


하늘로 날아오르게 하는 용의 여의주

문제는 용이라고 해서 다 비상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용이 비상하려면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 조건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여의주라는 보물을 얻어야 하고, 둘은 사람들로부터 ‘용’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여의주를 얻지 못한 용은 아무리 오래 묵어도 하늘로 날아오를 수 없고, 용이 분명한데도 사람들이 아무도 용이라고 불러주지 않으면 용으로 비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첫째, 용과 여의주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용이라 하더라도 여의주를 얻지 못하면 용 구실을 하지 못하므로 사실상 뱀이나 마찬가지이다. 흥미로운 것은 하늘을 날아오르는 데 필요한 여의주는 딱 하나여야 한다는 점이다. 여의주를 두 개 이상 가진 용은 탐욕 때문에 비상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용은 여의주가 없어도 문제지만 여의주를 과도하게 가져도 문제이다.

도대체 여의주가 무엇이길래 용을 날아오르게 하는 힘을 지닐까. 여의주는 누구든 갖기만 하면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신통한 보물이다. 거꾸로 말하면 여의주를 가진 자는 사실상 용이나 다름없다. 왕이 용인 것은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왕권은 곧 여의주나 다름없는 신통한 권력이다.

민주사회의 대통령도 흔히 용으로 은유되는데, 왕권처럼 막대한 법적 권한을 가진 까닭이다. 실제로 대통령은 여의주를 지닌 용처럼 자기 뜻대로 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특권을 지녔다. 이 특권을 어떻게 행사하는가에 따라 대통령도 성군과 폭군처럼 선악의 두 유형으로 갈린다. 법적 권한을 정당하게 행사하는 민주적 대통령과, 법적 권한을 넘어서 월권으로 횡포를 부리는 독선적 대통령이 있다. 우리는 후자의 대통령을 흔히 독재자라고 한다.

독재자들은 모두 말로가 비극적이다. 초법적 권력을 누리며 흥청망청하다가 성난 민중에 의해 권좌에서 끌어내려진 까닭이다. 그것은 마치 용이 여의주를 지나치게 탐한 까닭에 비상하지 못하고 하늘에서 떨어지고 마는 격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권력 남용을 삼가고 국리민복을 위해 법적 권한을 공정하게 행사해야 순조롭게 비상할 수 있다.


민심을 얻지 못하는 용은 공포의 대상

둘째, 사람들이 용으로 불러주어야 용이 비상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떤 존재든 그 자체로 위대하지 않다는 뜻이다. 용이라 해도 별 수 없다. 아무리 대단한 용이라도 사람들이 용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날아오르지 못한다. 주위에서 용을 널리 인정하고 용으로 받들어 섬기며 용의 자질을 공인할 때 비로소 용의 초월적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용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용은 사실상 뱀으로 인식될 따름이다.

따라서 용을 보는 눈도 두 가지이다. 하나는 용을 신성한 존재로 보는 눈이고, 둘은 용을 무섭고 징그러운 뱀으로 보는 눈이다. 용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은 용의 자질에 의해 결정된다. 용이 날지 못하고 물속에 잠겨 있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뱀처럼 인식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용을 보고도 으레 “뱀!”이라고 소리 지르며 깜짝 놀라 물러서기 일쑤이다.

용으로 상징되는 왕에 대한 인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신성한 왕권으로 민심을 헤아리며 백성을 위해 선정을 펼치는 왕은 용으로 인식되지만, 백성들 위에서 군림하며 폭정을 일삼는 왕은 뱀처럼 무서운 존재로 인식될 뿐이다. 민주사회의 대통령도 국민들에게 용도 되고 뱀도 된다. 대통령이 민생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을 휘두르며 자유를 억압하게 되면 국민들은 대통령을 징그러운 뱀처럼 여기며 기피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대통령 권력은 양날의 칼과 같다.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위대한 용으로 비상하는 신성한 권력인가 하면, 사람들이 모두 기피하는 뱀처럼 혐오스러운 권력이기도 하다. 비상하지 못하는 용은 뱀으로 인식될 뿐 아니라, 아예 ‘이무기’ 또는 ‘꽝철이’로 일컬어진다. 세간에서는 이무기가 용이 되려다 실패하면 꽝철이가 된다고 한다. 이무기나 꽝철이는 독재자처럼 국민들에게 각종 재앙을 안겨준다. 꽝철이가 주는 재앙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가뭄’이다. 용은 비상을 하면서 비를 불러오지만, 용이 못된 꽝철이는 화가 나서 열불을 내는 탓에 극심한 가뭄을 일으킨다고 믿는다.

따라서 오랜 가뭄에 시달리게 되면 사람들은 가뭄을 극복하기 위하여 꽝철이를 쫓아내는 집단행동을 한다. 밤에 횃불을 밝히고 꽹과리와 징을 요란하게 쳐서 이무기를 쫓아내는 거사를 벌인다. 그러므로 신성한 용과 징그러운 뱀, 비를 내려 주는 용과 가뭄을 유발하는 꽝철이는, 숭상해야 할 신격과 퇴치해야 할 괴물로 극명하게 갈린다.

대통령도 국민들의 처지에서 보면 이렇게 둘로 엇갈린다. 둘로 가르는 준거는 대통령의 권력 행사에 따른 국민들의 지지 여부이다. 제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라도 초법적인 월권을 행사하며 폭정을 일삼으면 국민들은 단연코 지지를 철회한다. 국민들의 지지도가 낮으면 대통령으로서 정책을 순조롭게 펴기 어렵다. 비상하지 못하는 용이 이무기에서 꽝철이가 되듯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대통령은 무능한 지도자로 전락하다가 마침내 독재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지나가기만 하면 초목이나 곡식이 다 말라 죽는다고 하는 전설상의 악독한 용(龍). 전국적으로 전승이 유행한 요괴로, 지역별로 강철, 깡철, 꽝철 등의 표기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실린 것은 ‘강철이’이다. (이미지 출처: 나무위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권력의 폭주

자질을 갖추지 못한 대통령일수록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려는 욕심 탓에 자신을 특권화 시킨다. 권력을 휘두르면 국민들은 무서워서 잠자코 복종할 것이라 착각하는데, 그것은 스스로 용을 부정하고 뱀을 자처하는 꼴이다. 노조 시위를 막아서 일부 국민이 호응하면, 노조를 아예 적대시하고 정당한 노조활동을 공권력으로 탄압한다. 위에서 억누를수록 밑에서 치받치는 힘도 커진다는 기본적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외교로 지지를 받을 만하면, 빈번한 순방외교로 국가재정을 탕진하는 한편, 긴요하지 않은 외교활동을 무리하게 펼쳐서 국제적 웃음거리가 된다. 몇 초 단위의 만남을 정상외교로 포장하는가 하면, 정상회담을 많이 한 기록을 기네스북에 올리겠다는 발상까지 함으로써, 코미디 수준으로 국격을 떨어뜨리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게다가 자칭 영업사원 1호라면서 오히려 나라 경제를 망가뜨리고 있다. 무역수지 악화는 물론 외국 기업의 국내투자 유치보다 국내기업의 외국투자 유출이 지나치게 많아서 경제적 손실이 막심하다. 국빈방문 대가가 막대한 국부손실로 이어진 결과이다.

지난 정부에서 유치해 놓은 세계잼버리대회조차 졸속으로 운영하여 역사상 최악의 행사로 만들고, 조기 철수와 파행으로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자가 없는 것은 물론 국가 브랜드를 지켰다고 뻔뻔스레 자평한다.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총력외교를 한다며 엄청난 재정을 쏟아부었는데도, 정작 결과는 119대 29라는 엄청난 격차로 참패를 당해 국격 파탄의 지경에 이르렀다.

더 추한 모습은 부인이 명품백을 선물로 받아서 세간에 널리 회자되고 있는데도, 정작 당사자는 없었던 일처럼 시치미 떼고 있는 점이다. 남의 일에는 사소한 문제에도 격노했다고 하는 반면, 자기 가족 일에는 범죄 행위조차 태연하게 깔아뭉개고 있다. 대통령실의 변명은 더 문제적이다. 선물로 받은 명품백을 반환물품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는 오리발이다. 공직자와 그 부인은 고가의 선물을 아예 받지 말아야 하지만, 실수로 받았으면 신고하고 즉시 반환해야 한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록 반환하지 않은 채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는 것은 범죄를 자인하는 꼴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의 공권력은 도무지 움직일 기미가 없다. 압수수색을 능사로 여기는 검찰은 아직 미동도 하지 않고, 법무장관은 알지 못 하는 일이라고 헛똑똑이 노릇을 하며, 국민권익위원회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도리질한다. 말만 공정과 상식, 법과 원칙을 앞세울 뿐 대통령의 가족 범죄에 관해서는 가장 불공정하며 엄청 몰상식한 처리를 할 뿐 아니라 최소한의 법과 원칙조차 깡그리 무시한다. 그러므로 오만한 권력의 폭주만 도드라진다. 


국민의 뜻 묵살하는 ‘국민의힘’은 용산의 힘

김건희 특검법이 발의되자, 정부여당은 온갖 술책으로 모면하고자 애쓴다. 조국 가족들의 비리는 이 잡듯이 뒤지고 탈탈 털어서 사회적으로 매장을 시켜놓은 채, 대통령 부인에 대해서는 혐의가 숱한데도 수사하지 않는 것은 철면피 수작이다. 여당에서는 특검법을 총선을 앞둔 선전선동이라고 비난하는데, 지난 4월에 동의를 했다면 총선과 무관하게 진작 발의되었을 법안이다. 더군다나 특검이 총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다. 특검이야말로 국민들의 정치적 선택과 투표권 행사의 판단 근거를 객관적으로 제공하는 까닭이다.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바로 범인”이라고 한 것도 사실상 국민의힘이다. 수사상황에 대한 언론브리핑을 독소조항이라는 한동훈의 주장도 억지다. 기존 특검법에도 이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윤석열과 한동훈이 함께 수사했던 박근혜 국정농단 특검 때도 같은 조항이 있었다. 그러므로 정부여당의 특검 반대는 한갓 떼쓰기에 지나지 않는다. 김건희 특검에 온갖 트집을 잡는 정부여당은 결국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격이다.

정작 문제되는 것은 김건희 특검을 찬성하는 국민이 70%나 된다는 사실이다. 특검 찬성 여론을 보면, 민심 특검은 진작 유죄 판결을 내렸을 뿐 아니라, 김건희는 이미 국민 밉상이 된 지 오래되었다. 이러한 국민의 뜻을 묵살하는 ‘국민의힘’은 사실상 ‘용산의 힘’ 노릇을 하고 있다. 민주사회에서 민심은 곧 용의 여의주이다. 민심이 이반되어 있으면 용이 아무리 애써 봐야 비상할 수 없는 것처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봐야 소용이 없다. 거부권을 행사하면, 오히려 특검을 찬성하는 민심만 더욱 악화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대한 민심은 30%대의 지지도와 60%대의 부정평가에서 잘 드러나 있다. 재벌의 이익을 옹호하고 일본의 국익을 대변하는 자를 누가 대통령으로 인정하겠는가. 앞에서는 자유를 외치며 뒤로는 언론자유에 재갈을 물리고, 국민만 보고 가겠다면서 국민 여론에 반하는 짓을 예사로 하는 언행불일치의 대통령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악화된 민심은 곧 치르게 될 총선에서 더 분명하게 표출될 것이다.


교수사회의 집단지성 역사 발전에 이바지해야

민주사회에서는 국민들이 인정하고 지지하지 않으면 대통령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미 사회 각계각층에서 대통령을 규탄하는 성명서는 물론 아예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까지 빗발치고 있다. 주말마다 대통령 퇴진과 탄핵을 주장하는 시민들의 촛불집회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들은 고작 ‘사자성어’ 찾기에 골몰하고 있으니 퍽 한가롭게 보인다. 교수신문에서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가 ‘견리망의(見利忘義)’였다. 쉬운 말을 어렵게 하는 교수들의 폐단만 드러냈을 뿐 교수사회의 집단지성이 제대로 표명되었다 하기 어렵다. 실천성도 전혀 담보되지 않아서 공허하기 짝이 없다.

민중들은 다르다. 가뭄이 극심하면 용 못된 꽝철이의 해악을 막기 위해 횃불을 들고 나선다. 꽝철이를 쫓아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그들은 꽝철이가 도망갈 때까지 징을 치며 아우성을 지른다. 이러한 민중적 집단행동의 전통이 독재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렸으며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진전시키는 기능을 발휘했다.

교수들은 역사의 진보를 위해 어떤 실천을 하고 있는가. 자문하고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안락의자에 앉아서 머리만 굴리고 있다면 기득권을 누리는 지배집단이나 다르지 않다. 말만 앞세우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교수들 또한 언행불일치의 대통령 권력처럼 자가당착에 빠져 있는 셈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굴리는 데 힘을 보태는 힘꾼 노릇을 기꺼이 감당해야 교수 직분에 맞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책임을 다 할 수 있다. 그러자면 안락의자에서 일어나 생활정치의 현장으로 나아가 행동해야 한다.

용이 민심을 얻어 날지 않으면 용이 아닌 것처럼, 교수들도 민심과 함께 가는 실천적 활동을 하지 않으면 진정한 교수라 할 수 없다. 민심을 얻는 것은 한갓 말재주가 아니라 구체적 행동이다. 김건희 표절논문을 박사학위로 인정한 까닭에 대학과 교수들이 줄곧 국민들의 지탄을 받아왔다. 석사논문 표절심사 결과는 아직도 무한으로 미루어지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그러므로 교수사회의 학문적 권위는 어느 때보다 바닥을 치고 있다.

용띠 해에는 교수사회의 집단지성이 우아하게 날아오를 수 있을까. 용의 여의주를 얻으려면 민심의 바다에서 비상을 꿈꾸어야 한다. 한 인간의 정체성은 그의 지위나 말이 아니라 그의 행동과 실천에서 정직하게 드러난다. 갑진년에는 용의 탈을 쓴 뱀을 몰아내고 진정한 용오름의 해가 될 것을 기대한다. 새해에 치르게 될 총선 결과가 용띠 해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민심을 구체적으로 표명할 수 있는 총선이 있다는 것은 갑진년 새해의 큰 행운이다. 용띠 해의 민심은 여의주를 물고 비상하는 용을 소망한다. 

 

임재해(林在海) 안동대 명예교수·민속학

영남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석사와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안동대학교 인문대 민속학과 교수로 있는 동안 민속학연구소장, 박물관장, 인문대학장을 역임하고, 실천민속학회장, 한국구비문학회장, 비교민속학회장, 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회장 등의 학회활동을 했다. 현재 민속학과 명예교수,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공동대표,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사 일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민속문화를 읽는 열쇠말』, 『신라 금관의 기원을 밝힌다』, 『마을문화의 인문학적 가치』, 『고조선문화의 높이와 깊이』, 『고조선문명과 신시문화』 등 33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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