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전상서, 새해에 올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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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전상서, 새해에 올리는
  •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 승인 2024.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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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 칼럼]

새해입니다. 또, 다시. 무한한 공간과 시간을 지내온 님께는 새해가 무슨 의미일지 모르겠지만요. 무한대 속에 한 점을 찍고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우리 인간들은 많은 생각과 결심을 되새기는 시간입니다. 비록 한 점에 불과할지라도 45억 년 만에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다시 오지 않을 올해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심하면서요. 님께서는 해마다 익히 보셨고 능히 아시겠지요. 하여, 기원후 이천스물네 번째 해를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소망으로 시작합니다.

태초의 카오스가 이러했을까 싶게 혼탁한 요즘 세상에도 새해가 주어짐에 감사합니다. 이대로 가면 우리 후대들이 더 이상 이 행성 지구에서 새해맞이를 하지 못하는 해가 올 터이지요. 우리 같은 이들을 선조로 둔 결과로요. 지구의 종말이나 인간사의 결말 전에 먼저 인구소멸로 이 나라가 사라질 수도 있겠고요. 소싯적에는 세상이 이 모양인 것이 님께서 천지창조 하고 구태여 수고로이 사람을 만드신 후로 쭉 안식만 취한 탓이라고 여겼습니다. ‘매일같이 천지창조 후 첫 아침인양 지저귀는 새처럼,’ 매일 쏟아지는 세상사의 오류를 님과 타인과 사회의 잘못으로 돌렸지요. 철들고 보니 세상의 모든 카오스가 우리 탓, 제 잘못이었습니다. 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 욕망과 이기심과 무지로 인해 혼돈의 장으로 만들어왔습니다. 

늙으면 좋은 것이 없다고들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모든 생물이 나이 들고 늙고 죽어감을 묵상하며 님의 지혜로운 선택을 깨닫습니다. 제 몸의 세포가 매 순간 죽어가고 있음을 체감하며 겸허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어릴 적에 진리를 찾으며 사는 이유를 알아야겠다고 온갖 문헌을 뒤적이고 도처를 헤매고 다닐 때 귀동냥했던 선진들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각 사람마다 정해진 운명이 있되, 자기 운명의 고난과 역경을 소멸시키거나 감소시킬 기회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건만 우리네들 대다수가 욕심과 어리석음 탓에 그 기회를 놓치고 스스로 고난과 역경을 오히려 가속화하고 악화시키는 선택을 한다고요. 

우리에게서 나간 모든 것이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우리 각자가 한 그대로 거둠을 시나브로 깨달아갑니다. 말하고 행한 모든 것이 하나도 허투로 땅에 떨어지지 않고 우리가 다 되돌려 받음을 더 깊이 알 수 있기를 새해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받은 상흔과 오해와 중상모략과 억울함을 곱씹으며 되새김질 하고, 타인과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 소중한 시간과 열정을 소모했던 부질없음도 떠올려집니다. 무한한 우주공간, 영겁의 시간에서 찰나의 한 시공간을 공유하는 개개 생명과의 만남에는 연유가 있겠지요. 얽혀진 연(緣)들의 무수한 상황을 제 좁디좁은 그릇을 키우고, 무익한 자존심을 성찰하고, 근거없는 오만을 바로잡을 기회로 삼을 수도 있었습니다. 부당함과 상처를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으며 비슷한 인간이 되는 선택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나도 옳고 너도 옳을 수 있었음에도 나의 옳음과 너의 그름으로 차이 짓느라 관용과 포용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삶은 불공평한 것이라고 말해주는 이들이 내 삶을 다스리도록 허용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내 삶을 부당하게 대했음을 돌이켜봅니다. 

인생의 주어진 날을 계수하지 못하고 살아온 어리석음을 돌아봅니다. 받은 생명의 남은 날을 세면서 살아가는 지혜를 이 새해에 구합니다. 허송세월을 많이 했습니다. 한국적 상황을 핑계 삼아, 정치판 개혁에 실제로 참여할 것도 아니면서 동료들과 정치에 대한 무익한 논의로 훨씬 진취적인 일을 할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정치가들이 다른 사람들을 왜 바보취급 하는지 이유에 대해 정치가가 “우리 같은 사람에게 표를 줬으니까”라고 답하는 극중 대사에 웃으면서요. 대학에서는 시간이 따로 흐르는 탓으로 변명하기도 했지요. 말 많고 탈 많은 이 나라 교육에 대해 결실 없이 허다한 논쟁으로 소요한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벤자민 버튼이나 살바도르 달리의 시간처럼, 대한민국 교육계나 대학의 시간이 거꾸로 가거나 멈추도록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교육계에 발 디딜 때는 선생으로서 교육을 하기보다는, 교육이 되길 바랐지요. 교육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종국적으로 세상을 개혁한다고 믿었으니까요. 제 타고난 그릇과 성품에 비해 지나친 이상이요, 오만이었습니다. 여전히 한참 부족해서 스스로 교육이 되기는커녕 교육을 하는 것도 벅찹니다. 사탕이 가장 큰 기쁨인 어린애(학생)한테, 아무리 할머니(교육자)가 인생의 갖은 기쁨을 설명하려 해도 아이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C.S. 루이스의 비유를 차마 적용할 자격도 없습니다. 만사가 경쟁인 나라, 적자생존과 학벌과 경제적 능력이 우선시되는 이 나라 풍토를 만들고 허다한 후진들의 귀한 인생을 망가뜨리는 우를 범한 우리를 보셨지요. 스스로 조성한 설정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벗어날 방도조차 찾지 못하는 허물을 고합니다. 

우리 모두가 ‘같은 우주에서 유래되고 같은 생명을 나누고 있건만’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눈먼 우매함으로 후진들이 스스로 인구소멸을 선택하게끔 인도했습니다. 부디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짜인 천처럼 서로 연결되어 상생하는 시공간에서, ‘내가 곧 너이고 네가 나인 것’을 잊지 않게 하소서. 장차 주어진 세월을 아끼며 지혜로이 지내다 후회 없이 떠날 수 있기를 이 새해에 소망합니다.

※ 도움 준 분들: 성경 저자, 아이작 싱어, 황희, J.K. 롤링, 아가사 크리스티, C.S. 루이스, 윌리엄 블레이크 등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미국 델라웨어대학(University of Delaware)에서 미술사 박사학위 취득. 국립 스미소니언박물관 Fellow와 국제학술자문위원, 미국 국립인문진흥재단(NEH)과 루스(Luce)재단 Fellow, 중국 연변대학 객좌교수, 일본 동지사대학 국제대학원 강의교수를 거쳤으며, 국내에서 현대미술사학회 회장, 원광대 평생교육원장, 대외협력처장, 국제교류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원광대 조형예술디자인대학 교수, 중국 웨이난사범대 석좌교수,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위원 등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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