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철학과 사회,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미학의 정치성
상태바
시와 철학과 사회,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미학의 정치성
  • 김정남 가톨릭관동대·국문학 
  • 승인 2023.12.31 17: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저자의 말_ 『시철학 산책 - 시의 세계, 철학의 대지』 (김겸 지음, 이숲, 200쪽, 2023.12)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김겸(본명 김정남) 가톨릭관동대 교수가 철학을 통해 시를 해석하고 시를 통해 철학을 넘어서는 길을 모색하는 비평서 『시철학 산책 ― 시의 세계, 철학의 대지』를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당대 여러 시인들의 시(디카시)를 읽어내면서 지금-여기 우리 문학의 징후를 발견함과 동시에 여러 철학자들의 담론을 통해 그들의 시가 접하고 있는 대지와 이를 통해 일으켜 세우는 세계의 양상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자 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인간 활동의 세 가지 유형을 테오리아theoria, 포이에시스poiesis, 프락시스praxis로 정의한 바 있다. 이는 각각 이론적 탐구, 제작 활동, 윤리적 실천을 가리킨다. 시poet는 포이에시스의 어원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하나의 제작이며 창조 행위이다. 시는 재현representation이 아닌 생산production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작 활동은 다시 윤리적(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지고 이 과정에서 하나의 이론이 정립되며 이 이론은 또 다른 제작의 기반이 됨과 동시에 이를 넘어서기 위한 도약의 발판이 된다. 이와 같은 인간 활동의 범주가 역동적으로 작용하여 인류의 역사가 진보를 거듭해 온 것이다.

조르주 귀스도르프Georges Gusdorf에 따르면 “보편 랑그는 지식의 완전성과 영원히 평화 속에서 화해된 인간의 완전성에”(조르주 귀스도르프, 이윤일 옮김, 『파롤』)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낱말이야말로 표현 의도를 내재하고 있는 문장들의 퇴적물이며 명명(파롤)은 하나의 창조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는 이를 작품의 창작의 메커니즘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어제의 혁신자들은 오늘의 고전 작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작가는 물론이거니와 모든 이들에게 “고착된 랑그는 부패의 신호”이다.

구체적 발화체로서의 파롤은 추상적인 언어 목록인 랑그에 의해서 운용되지만 새로운 파롤은 항시 랑그에 대한 반역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는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하나의 창조임과 동시에 기존의 랑그 체계를 무력화시키는 정동적 에네르기를 동반한다. 이는 전유의 개념과도 연관되는데,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전유를 “자연의 지배, 인간 ‘존재’에 의한 자연의 전유, 프락시스와 포이에시스 등의 의미까지도 포함”(앙리 르페브르, 박정자 옮김, 『현대세계의 일상성』)하는 것으로 설명하며 프락시스의 중심이 바로 일상생활 안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담론의 장 안에서 이러한 전유appropriation는 재전유re-appropriation에 의해 전복의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는데, 여기서 전복적 실천으로서의 아방가르드야말로 예술이 지니는 메타-정치성의 구체적 증좌이다.

이는 또한 같은 맥락에서 재영토화와 탈영토화라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개념과 맞닿는다. 그는 “책은 세계의 탈영토화를 확실하게 해주지만 세계는 책을 재영토화하며, 다시 책은 스스로 세계 안에서 탈영토화된다”(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김재인 옮김, 『천개의 고원-지본주의와 분열증2』)는 진술을 통해 이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 고원Plateaux의 메타포를 사용해 탈주의 의미를 설명한다. 고원은 산과 같이 정상peak이라는 하나의 중심을 향한 초월성이 없다. 고원은 “성층 작용(=지층화)”에 의한 “층層이자 띠帶”(위의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원은 내재성의 적층 과정을 통해서 수평적으로 이리저리 연결될 뿐, 산과 같이 어떤 중심을 향한 지향이 없다. 그는 이 고원의 유연성과 탈중심적인 형상에서 리좀Rhizome의 의미를 찾는다. 이때 “리좀이 일종의 반反계보”라는 것은 “중앙 집중화되어 있지 않고, 위계도 없”기에 도주선ligne de fuite의 다양체를 산출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가 “유기체의 확장과 기관들의 조직화 이전의, 지층 형성 이전의 충만한 알”로서의 기관 없는 신체corps sans organs(CsO)를 제시하는 것도 외디푸스화된 자본주의적 욕망으로부터의 탈영토화된 삶을 그리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세계의 지층은 코드화와 재코드화에 의해 끊임없이 유동하고 있다.

들뢰즈는 “인간은 절편적 동물”이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의 무수한 이항적 절편 구조를 보면 이는 명확해진다. 파시즘이 무서운 것은 이러한 절편화 작용을 통해서 여러 사회적 배치물들을 정교하게 위치시키기 때문이다.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 식으로 말하자면 이는 일종의 장치dispositif로서 주체를 생산하는 “담론, 제도, 법, 경찰, 더 나아가 철학적 명제”(조르조 아감벤, 양창렬 역, 『장치란 무엇인가?-장치학을 위한 서론』)들의 정교한 절편 구조를 가리킨다. 그의 장치학의 핵심은 이러한 장치들에 대한 개입과 통치될 수 없는 분할의 지점들에 대한 발명 혹은 발견을 통해 무수한 이접disjunction을 만들어 간다는 데 있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에 따르면 예술은 대지erde를 딛고 하나의 세계welt를 세우고, 대지를 새로운 세계의 장으로 불러세운다herstellen. 이렇게 대지는 솟아오르면서 세계를 다시 간직한다. 이러한 역동적 과정을 하이데거는 대지와 세계의 투쟁으로 설명한 바 있다. 이처럼 철학은 시적 사유의 대지가 되고, 시(예술)는 다시 대지를 박차고 오르고 하나의 세계가 된다.

요컨대 이 책은 ‘철학’이라는 앎과 ‘시’라는 제작과 ‘정치’라는 윤리적 실천 사이의 관계 속에서 철학을 통해 시를 사유하고 시를 통해 철학을 넘어서는 하나의 도주선을 더듬어 보고자 하는 데 작은 의미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의 세계, 철학의 대지라는 이 책의 부제는 예술과 현실의 작동 원리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미학의 정치성을 내포하고 있어, 이를 통해 발견하게 된 우리 시문학의 현단계는 우리 문학의 풍향계로서도 일정 부분 기여하게 될 것이다.

 

김정남 가톨릭관동대·국문학 

가톨릭관동대학교 VERUM교양대학에 재직하며 연구와 창작을 병행하고 있다. 한양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현대문학」에 평론이, 200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2021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김겸’이라는 필명으로 시가 각각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펴낸 책으로 문학평론집 『비평의 오쿨루스』, 소설집 『잘 가라, 미소』, 장편소설 『여행의 기술: Hommage to Route7』, 학술서 『도시는 무엇을 꿈꾸는가』, 시집 『하루 종일 슬픔이 차오르길 기다렸다』 등 다수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