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시각의 준거: 수평의식의 논리 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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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시각의 준거: 수평의식의 논리 ➀
  •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 승인 2023.12.30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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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빈 교수의 〈동아시아 담론〉

 

내가 곧 우주라는 깨달음 

‘서울의 봄’ 영화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천박한 놈들이 도리어 착한 보통 사람들을 겁박하고 강요된 순종으로 서열을 매기는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날강도 짓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만원 지하철에 앉아 있을 때, ‘나’는 이 우주 안에서 지극히 별 볼 일이 없는 작은 ‘원자’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고 한없는 왜소함을 느낀다. 그러나 나의 의식을 국가에서 동아시아로, 나아가 세계와 우주로 확장하여 이 세상을 비판적으로 관조하게 되면, ‘내가 곧 하나의 세계이자 우주’라는 자각을 하게 된다. 한국인이 지하철에 앉아 항상 쳐다본다는 핸드폰에는 지구와 은하계의 뉴스도 실시간으로 떠 있다. 

그런데 ‘나’라는 한 우주의 중심적 존재가 또 다른 우주적 존재와 비교를 당하고 서열을 지정 당한다면 너무 화가 나지 않을까. 이 글은 이렇게 작위적 준거로써 비교하면서 서열을 강제하려는 광폭한 힘들을 해산시키기 위한 논리를 창출하려 시도한다. 


국가주의적 서열론의 해체와 수평의식론

이전 글에서 동아시아의 문제와 담론을 바라보는 ‘비판의 준거’로서 ‘동아시아시각’은 한중일이 표방하는 ‘작위적 역사관’이 구성한 ‘생각의 습관’을 개선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지적하였다(〈동아시아시각을 찾아서〉). 나아가, 비판이론의 주체 각성의 사유를 참조한 동아시아시각은 세계시민의식과 거의 동의어이며 우주시민의식으로까지 시야를 확장해나가야 한다고 주창하였다. 

구체적으로, ‘동아시아시각’을 방해하는 요인은 중화민족 다원일체 대통합의 ‘역사공정’과 일본의 작위적 ‘신중화주의’와 ‘식민사학’, 그리고 한국의 ‘반도사관’과 ‘타율이성’의 사상체계를 들 수 있다. 이른바, 중국과 일본의 작위적인 대국 지향의 역사관에 대해 한국은 스스로 “소국의식과 지정학적 운명론”을 내면화하고, 그 결과 생성된 “타율이성”은 한국 사상사의 특성을 구성하고 있다.

내가 제시하는 논리는 이러한 3국의 왜곡된 역사관을 국가주의적 시각이 아닌 동아시아시각에서 비판과 성찰을 거쳐야 동아시아에 내면화한 국가주의적 서열의식을 극복하고 수평의식을 건설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지적인 비관주의”에 빠지지 말고 “의지적 낙관주의”로써 생각의 습관을 바꾸는 시도를 해야 한다. 오랜 역사에서 한중일 3국은 경제와 군사력에서는 차등을 보여 왔지만, 지식인의 지적인 수준, 상호학습효과에 의한 사상-문화적 발전의 측면에서는 시대에 따라 그 우열관계가 유동적이었다. 

이른바, 동아시아 역사에서 주목할 점은 반드시 중원 왕조가 경제와 군사력이 강하였기 때문에 조공-책봉체제가 작동되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고려와 조선왕조는 중원 왕조가 쇠퇴하더라도 조공-책봉체제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송대와 명대가 그러했다. 베트남의 이조(李朝) 왕조는 1076년 송의 침략을 격퇴하고 나서도 유교화를 지속하고 책봉체제를 수용하였다(조동일, 《동아시아문명론》, 254-260면). 고전시대 한국과 베트남의 상기 사례는 당시 중국의 정치적 패권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유교문화의 보편성과 유교 네트워크로서의 국제체제를 승인했다는 의미이다. 일본은 지리적 격리로 인하여 조공-책봉을 거부한 시기가 길었는데, 대신 그 기간에는 동아시아 교역체제에서 고립을 초래하였다. 특히 임진왜란은 책봉체제로 작동하는 동아시아 교역질서에 대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지로 발생한 측면도 분명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니시지마 사다오, 《일본의 고대사 인식: ‘동아시아세계론’과 일본》 227-241면; 西嶋定生, 《古代 東アジア世界と日本》 2000). 

상기 사례는 고전시대 동아시아에서 오늘날 부상하는 수평의식론의 사상적 근원들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사유의 출발선에서, 내가 활용하는 ‘동아시아시각’의 함의는 5개의 개념을 하나로 연동시켜 ‘비판의 준거’를 구성한다. 1) 탈국적주의(국가주의의 상대화), 2) 탈서구중심주의(오리엔탈리즘의 해체), 3) 문화적 우열의식 해체, 4) 동서이원론의 상대화와 세계시민의식 배양, 5) 동서양 상호학습효과에 의한 혼성근대화론이다. 

독립적으로 보이는 이 5항목을 연동하여 동아시아의 ‘사상(思와 想)-사물(事와 物)’의 흐름에 대한 하나의 ‘비판의 준거’를 구성하기 위한 공통분모를 찾아보면, 동서양과 동아시아 구성원들이 상호 ‘수평의식’(horizontal consciousness)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으로 수렴한다. 근대(와 탈근대)에 이르러 우리는 주체의 각성을 이루었다. 인간 세상의 나와 다른 많은 주체 간에는 우열론을 허물고 서로 대등해지려는 수평의식을 가지고 있다. 자연계에서도 모든 생명체 집단은 대등을, 물(water)은 수평을 이루기 위해 운동한다. 이처럼 수평의식은 단순히 인문학적 상상이 아니라 자연과학적 지지도 얻고 있다. 

즉, 인류사회의 모든 구성단위(개인과 국가, 민족과 문명, 자연과 동식물생명체)는 각자의 고유성을 가지고 있고, 그 고유성은 자기만의 존재 가치(자존감)를 자부하면서 상호 우열관계를 허물려는 본성이 있다. 이 본성으로 인해서 인류공동체의 수평의식은 항상 우열관계성을 거부하려는 ‘비판과 저항성’을 품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수평상태에 머물려는 ‘소극적 의식’이 아닌, 그것을 건설하려는 ‘능동적 의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의 단위 중에 어느 하나가 우월하고 열등하다는 서열론은 역사상 특정 시기 특정 상황에서 나타나는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이러한 비판의 준거로서의 동아시아시각인 ‘수평의식론’을 받쳐주는 몇 가지 연구 사례를 들 것이다. 이를 배경으로 결론에서는 동아시아 구성단위들의 “상호학습효과에 의한 혼성 근대화와 발전론”을 주창하려고 한다. 차례로, 조동일, 미야지마 히로시, 이언 모리스(Ian Morris)의 연구를 소개한다. 한국의 “실증적 민족주의 사학”(이덕일의 《한국통사》; 필자의 〈동아시아시각을 찾아서〉 참조)도 동아시아 서열의식에 도전하고 있으나, 이미 소개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조동일의 《동아시아문명론》과 대등론

《동아시아문명론》을 전개하는 한국의 대표적 석학 조동일 교수(이하 ‘조동일’로만 표기)는 유교적 사유구조에서 탈피, 동아시아 역사와 철학사, 문학사상사를 종합한 사유에서 ‘대등론’의 사상적 근원을 발굴하면서 유연한 문명론을 제시하였다. 유연하다는 것은 중화주의와 일제 식민사관의 작위적이고 정치적인 ‘차등론’을 초극한다는 의미이다. 

필자와 마주한 대화에서 그는 ‘동아시아는 정치적인 차등이 있었으나 문화적이고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차이를 극복하여 대등에 이를 수 있다’라고 하였다. 패권과 지배관계의 행방을 추적하는 동아시아 정치사에 대한 대안을 대등한 창조력을 우선시하는 문학과 사상의 교류에서 찾아 제시하였다. 그는 “철학사와 문학사는 하나이며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철학사와 문학사 둘인가 하나인가》)라는 시각에서 동아시아의 대등한 문명론을 전개한다. 나는 이것을 ‘문학사’가 아닌 ‘동아시아사상사’로 읽는다. 

그에 따르면, 동아시아문명론 논의는 20세기 말 ‘아시아적 가치론’이 회자되면서 서구 학자들(William Theodore de Bary, 《동아시아문명》) 사이에서 시작된 이후 주로 유교 전통에 주목하면서 진전되었다. 예를 들어, 뚜웨이밍(杜維明)은 동아시아의 유교적 인문주의가 생태적 전환을 모색함으로써 세계문명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았으나(《문명들의 대화》), 윤리적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다소 추상적이다. 한중일의 문화적 기호로 접근한 문명론(《이어령의 가위바위보 文明論》)은 흥미롭지만 사상사적 근원과는 거리가 있다. 

나는 그에게 문명과 문학의 대등론을 어떻게 정치사상사에 적용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나의 논지와 비슷한 게 있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대등한 요인인가는 “지식인의 수준”이며, 정치경제적인 수준은 경제와 군사력으로써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니시지마의 책봉체제론은 ‘차등론’인데, 반면에 위에서 송명 시대의 한국과 베트남의 사례처럼 그의 책봉체제론은 ‘대등론’이다. 그러나 그의 논지에 의하면 정치·경제·군사적 측면은 ‘차이론’의 범주이지 차등론의 주제가 아니다. 이것은 ‘차이론’으로써 차등론을 극복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의 저서(《동아시아문명론》과 《대등한 화합》)는 왜 우리가 동아시아의 성원들이 대등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입증하고 있다. 그가 제시한 사례들은 즉, 지식인과 정치인의 지적 수준, 지배층 관료들의 고품격의 한문 사용수준, 중국에서 고려와 일본으로 차례로 이동한 불교 이해의 수준과 교류사, 문학사와 사상사의 상호학습효과에 의한 대등한 발전 특히 기철학의 사례를 비교하면서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조동일의 대등론은 정치·경제·군사력이 아닌 지식인에 의한 사상과 문화적 교류의 역사를 근거로 삼는다. 반면에 나는 중국의 선천적 제국성, 일본의 신도문화와 신불습합사상, 작위적인 식민사학과 동아시아연대론, 한국의 반도사관과 타율이성의 사상사를 모두 국가주의가 아닌 동아시아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3국의 작위적인 서열론을 해체시키려 시도한다. 

즉, 필자는 3국의 상기 정치사상사적 특성은 차등론에 근거한 것이지만, 이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준거로서 동아시아시각을 적용하면서 수평의식으로의 전환을 역설하고 있다. 조동일은 동아문명에는 과거로부터 이미 대등한 요인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여 수평의식이 상식화한 동아시아를 그리는 “미래주의적 동아시아구상”(필자, 다음 기회에 상세히 논증한다)에 공감한다고 밝힌다. 

조동일의 동아시아론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사상사적인 흐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이른바, 주자학과 이를 비판한 양명학은 차등론에 입각한 것이며, 기(氣)철학은 대등론을 정초한 사상이라는 것이다. 기학자의 특징은 유교를 보편윤리체계로 내면화하면서도, 그것을 사회경제적 운용원리ㆍ정치이념과 정책개발의 기초로 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양명학은 주자학을 비판하는 데는 효력을 발휘했으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여 명조의 멸망에 일조하였다. 명말-청초의 왕부지(王夫之, 船山, 1619-1692)는 양명학 좌파인 이지(李贄, 卓吾, 1527-1602)를 비판하고 기철학을 수립하였으며 고증학을 완성한 대진(戴震, 東原, 1724-1777)이 이어받았다. 조선에서는 서경덕(1489-1546), 임성주(任聖周, 1711-1788), 홍대용(洪大容, 1731-1783), 박지원(1737-1805), 최한기(1803-1879) 등이 기철학을 발전시켰다. 일본에서는 안도 쇼에키(安藤昌益, 1703-1762)를 특히 지적할 수 있는데, 란학자(사쿠마 쇼잔 外)들도 일본의 기철학 사조 계열에 포함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필자와 조동일이 공감한 것은 기철학 사조는 조선과 청조에서 주자유교에 밀려 주류사상이 되지 못하였고, 일본에서도 기철학보다도 천황과 신도사상이 서구적 근대화와 기묘하게 습합한 메이지 유신사조가 등장하면서 식민주의와 차등론의 극단인 제국주의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필자와 조동일은 메이지 유신을 동아시아시각에서 성찰하면서, 그것은 일본적 특수성에 사로잡혀 국경을 넘어 동아시아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성을 결여한 군국주의와 파시즘 사조에 불과하였다는 일치된 견해를 공유하였다. 메이지 유신의 명암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더 논한다.   

동아시아 역사는 주자학과 양명학, 일본의 신불습합 사상, 메이지 유신의 신불-서구적 근대의 습합사상(필자)과 같은 차등론이 기철학 사조로 대변되는 수평의식의 대등론(조동일)을 압도하여 전개되는 특성을 보였다. 결국 조선과 청조는 체제 붕괴, 일본은 패망에 이르고 말았다. 

조동일은 필자와의 대화를 통하여 ‘생극론’은 곧 ‘대등론’의 사유와 일치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우열론’이 아닌 ‘차이론’으로 ‘차등론’을 극복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동아시아 사상사의 미래는 양극단을 극복하여 대등을 이룬다는 “대등생극론”(對等生克論)(《동아시아문명론》, 57-63면)으로 구상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현대 한국의 숭미-혐중 사조, 중국의 중국몽 사조, 일본의 보수우익사조는 여전히 차등론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 비판적 지식인의 과제는 수평의식과 대등론을 정초하려는 한국의 진보사조(* 필자의 동아시아시각의 수평의식론과 동아시아담론)와 일본에서 침략을 반성하는 반전평화주의 사조, 중국의 진보적 지식인(리저허우, 쉬지린 등)이 주창하는 문명대국론(강성대국론이 아닌)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필자의 ‘동아시아시각의 정치사상사연구’는 이를 위한 사상적 기초를 놓으려는 의미를 가진다.

-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런던대학(SOAS)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제주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아시아 사상과 역사논쟁에 흥미를 가지고 현재 동아시아의 사상사적 문제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 근현대사 역사의 현장』(공저), 『동아시아 담론의 논리와 지향: 비판이론의 탐색』이 있으며, 그 외 동아시아담론, 중국, 일본, 티베트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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