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월 늪, 철새 날다 ‥‥ 경남 창원 동판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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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월 늪, 철새 날다 ‥‥ 경남 창원 동판저수지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3.12.3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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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혜숙의 〈여행이야기〉_ 경남 창원 무점마을 동판저수지

 

주남(용산), 산남, 동판저수지를 통칭해 주남저수지라 부른다. 유역 면적은 동판저수지가 가장 넓고 자연 습지가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있다. 

창원시 동읍의 무점리(武店里). 천변의 수풀 우거진 좁은 길에 무점리 버스 종점이 있다. 낮은 세단의 창밖으로 둑길이 훤히 보이는 자리, 조막만 한 백미러 속으로 구릉지의 무점리 집들이 소복이 들어앉는 자리다. 연두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자그마한 버스가 버스정류장을 휘 지나쳐 멀어진다. 이상하고 아름답다. 종점에서 몇 걸음이면 천을 건너는 알록달록 예쁜 다리다. 천은 주항천(周港川), 김해 진영에서 출발해 창원 무점리로 온다. 마을 앞으로 동판저수지가 아득히 넓고 마을 옆으로는 대산평야의 일부인 거문들과 미내포들이 또 아득하다. 주항천은 마을을 지나 저수지와 들 사이를 흘러 알게 모르게 동판저수지와 하나가 되는데, 그 물가에 둑이 길다. 

 

주항천은 마을을 지나 저수지와 들 사이를 흘러 알게 모르게 동판저수지와 하나가 되는데, 그 물가에 둑이 길다.  
둑길은 2.5km의 코스모스길이다. 무점마을 사람들이 직접 씨를 뿌리고 가꾸었다고 한다. 매년 가을이면 축제도 연다. 

다리 건너 둑길에 오른다. ‘무점 코스모스 길’이라 새겨진 표석을 본다. 그 뒤에 ‘무점카페’가 있고 ‘제5회 코스모스 축제’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둑길은 2.5km의 코스모스길이다. 무점마을 사람들이 직접 씨를 뿌리고 가꾸었다고 한다. 매년 가을이면 축제도 연다. 2016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올해가 5회였다. 카페는 축제 때만 운영되는 모양이다. 정자도 있고 들을 내다보는 전망 데크와 천과 마을을 조망하는 데크도 있다. 무점의 ‘무’는 ‘중심’을 의미하고 ‘점’은 ‘주막’을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무점’은 ‘중심이 되는 곳에 있는 주막’으로 해석된다. 속 시원한 해석은 아니지만 옛날에 정말 주막이 있었으면 좋겠다. 무점리 남쪽은 무성리(武城里)다. ‘무’는 역시 ‘중심’을, ‘성’은 ‘고개’를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무성은 ‘중심이 되는 재’가 된다. 무성리 바로 남쪽에 동창원IC가 위치한다. 교통의 요지라는 뜻이겠다. 그러면 무점리는 재 너머 주막마을 쯤 되려나. 이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주항천에 물새 몇 마리 논다. 천변에 의자 세 분이 물새들 노는 모양을 지켜본다. 

 

오른쪽은 동판저수지, 왼편은 들이다. 새들은 떼 지어 둑길을 넘나든다. 고개를 들면 그들의 날갯짓이 바로 눈앞인 듯 보인다. 
주항천이 언제 동판저수지로 흘러드는지는 알 수 없다. 천은 어느새 습지다. 수로에는 새들이 노닐고 습지에 뿌리내린 나무들이 그들을 자꾸만 감춘다. 

코스모스는 무성한 줄기만 남기고 모두 떠났다. 바람 한 점 없고 햇살만 먼지처럼 자욱한데, 태양에 등 떠밀린 사람처럼 걷는다. 콘크리트 길바닥에 네 잎 클로버가 새겨져 있다. 하나, 둘. 길바닥에 검은 새가 새겨져 있다. 하나, 둘. 그리고는 말갛게 뻗어나가는 핑크빛 시멘트 길이다. 주항천이 언제 동판저수지로 흘러드는지는 알 수 없다. 천은 어느새 습지다. 수로에는 새들이 노닐고 습지에 뿌리내린 나무들은 그들을 자꾸만 감춘다. 동판저수지는 주남저수지다. 그러니까 주남(용산), 산남, 동판 세 저수지를 통칭해 주남저수지라 부르는데, 주남의 명성에 가려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리고 실상 유역 면적은 동판저수지가 가장 넓다. 

 

오른쪽은 동판저수지, 왼편은 들이다. 새들은 떼 지어 둑길을 넘나든다. 고개를 들면 그들의 날갯짓이 바로 눈앞인 듯 보인다. 
주항천과 무점마을. 주항천은 김해 진영에서 발원해 창원 무점리에서 동판저수지로 흘러든다. 7km 정도 되는 낙동강 제2지류다. 

옛날 주남저수지는 크고 작은 6개의 호소성 저습지로 분리되어 있었고 대산평야 역시 습지였다. 이게 다 낙동강이 한 일이다. 무점리 사람들은 쌀과 보리를 키우면서 인근 야산의 고령토를 캐어 옹기를 빚거나 습지의 억새와 갈대 등으로 빗자루와 방석 등을 만들어 파는 부업으로 생활했다고 한다. 습지의 쓰임은 다양했다. 여름이면 농사용 소를 방목했고 겨울에는 땔감을 얻었으며 인근 마을 주민들의 운동장으로, 또는 군, 면 단위의 퇴비증산 풀베기 대회장 등으로도 이용됐다. 그러다 제방을 쌓아 너른 들을 일구었고, 곡식을 키우는데 쓰일 물을 가두었다. 이게 다 사람이 한 일이다. 

 

주항천과 무점마을. 주항천은 김해 진영에서 발원해 창원 무점리에서 동판저수지로 흘러든다. 7km 정도 되는 낙동강 제2지류다. 
            가월갑문 앞에서 동판저수지를 본다. 가만 바라보면, 물새들은 벌써 저만치 멀리 달아난다. 

주남, 동판, 산남 저수지는 배후습지를 활용한 대표적인 인공저수지로 현재 제방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주남저수지의 기능은 북쪽의 낙동강 물을 저장하여 동읍과 대산면 일대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것이다. 70년대 중반까지도 주남저수지는 그저 이름 없는 거대한 저수지일 뿐이었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단지 마을 이름을 따서 산남 늪, 용산 늪, 가월 늪이라 불렀고 일부는 강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로 명성을 얻게 되었고 1983년부터는 겨울철새 보호 시책에 따라 습지 생태공원으로 보호하고 있다. 주남저수지는 여러 번 보았지만 동판저수지는 처음이다. 자연 습지가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있고 새들의 울음소리는 깜짝 놀랄 정도다. 새들이 떼 지어 둑을, 내 머리 위를 넘나든다. 고개를 들면 그들의 날갯짓이 바로 눈앞인 듯 보인다. 비행음이 쏟아진다. 그 소리는, 마치, 행글라이더 천만 개를 동시에 날린 듯하다. 행글라이더를 날려본 지 너무 오래되어 그 소리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보통 최초의 느낌은 대개 맞더라.    

 

            가월갑문 앞에서 동판저수지를 본다. 가만 바라보면, 물새들은 벌써 저만치 멀리 달아난다. 
마을 옆으로 대산평야의 일부인 거문들과 미내포들이 아득히 넓다. 추수가 끝난 논에는 새들이 까맣게 앉았다.

추수가 끝난 논에 새들이 까맣게 앉았다. 머리를 주억거리며, 그 작은 발로 동서남북을 뱅뱅 돌며, 눈을 크게 뜨고 무언가를 찾는다. 몸을 웅크리고 코스모스 무성한 가지에 숨어 그들을 지켜본다. 갑자기, 일제히, 꽁지를 세우고 뒤돌아서더니 시나브로 전진한다. 나! 나로부터 멀어지기로 작정한 것이다. 유리 같은 수면에는 물새들이 가득하다. 가만 바라보면, 물새들은 벌써 저만치 멀리에 있다. 숨소리도 내지 않았는데, 새들은 수면을 밀어내며 달아난다. 몹시 억울하다. 그러다 내가 걸으면 논의 새들도 물의 새들도 자유로워진다. 나의 멈춤을 못 견디는 모양이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지나간다. 

 

주남(용산), 산남, 동판저수지를 통칭해 주남저수지라 부른다. 유역 면적은 동판저수지가 가장 넓고 자연 습지가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있다. 
가월갑문에서 코스모스 길은 끝난다. 갑문 너머로 이어지는 물길은 곧 주천강에 닿고 다시 낙동강과 연결된다.

가월(加月) 갑문에서 코스모스 길은 끝난다. 갑문 너머로 이어지는 물길은 곧 주천강에 닿고 다시 낙동강과 연결된다. 왼편으로는 가월마을을 통과해 동판저수지 변의 산자락 길로 이어지다 판신마을과 주남저수지로 향한다. 가월은 동읍 월잠리에 속하는 자연마을로 반달처럼 생긴 동네다. 달이 뜨면 이 마을이 제일 먼저 밝아온다고 가월이라 했는데 처음에는 ‘놀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놀람’은 무슨 의미일까. 달빛이 너무 밝아서 깜짝 놀란다는 뜻일까. 동판저수지변의 하 많은 마을 이름 가운데 왜 하필 ‘가월 늪’이라 불렀을까. 소가 풀을 뜯거나 운동장이 되어도 가월 앞은 언제나 달 잠기는 늪이었을까. 물음표가 너무 많다. 정면으로 태양을 마주하며 되돌아간다. 눈앞이 깜깜하다. 새떼들도 검은 새떼들이다. 한 남자가 벤치에 앉아 신발 끈을 꽉 묶고 있다. 슬쩍 내 운동화를 살핀다. 흡족하게 갈무리된 신발 곁에 네잎 클로버가 떨어져 있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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