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긴 밤을 걷는 널 위해 숨죽여 쓴 사랑시 - 아이유, 정의로운 사랑을 노래하다
상태바
유난히 긴 밤을 걷는 널 위해 숨죽여 쓴 사랑시 - 아이유, 정의로운 사랑을 노래하다
  • 김광식 서울대·인지문화철학
  • 승인 2023.12.24 07: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광식 교수의 〈음악과 철학 사이〉

 

 

[리뷰] 롤스의 〈정의론〉으로 본 아이유의 <Love Poem>


“누구를 위해 누군가 / 기도하고 있나 봐

숨죽여 쓴 사랑시가 / 낮게 들리는 듯해
너에게로 선명히 날아가 / 늦지 않게 자리에 닿기를

I'll be there 홀로 걷는 너의 뒤에
Singing till the end 그치지 않을 이 노래

아주 잠시만 귀 기울여 봐 / 유난히 긴 밤을 걷는 널 위해 부를게
또 한 번 너의 세상에 / 별이 지고 있나 봐

숨죽여 삼킨 눈물이 / 여기 흐르는 듯해
할 말을 잃어 고요한 마음에 / 기억처럼 들려오는 목소리 (....)

아주 커다란 숨을 쉬어 봐 / 소리 내 우는 법을 잊은 널 위해 부를게
(다시 걸어갈 수 있도록) 부를게 / (다시 사랑할 수 있도록) (....)

너의 긴 밤이 끝나는 그날 / 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곳에 있을게”


아이유가 부른 노래 <Love Poem>이다. 그녀는 “유난히 긴 밤을 걷는 널 위해” “숨죽여 쓴 사랑시”를 부른다. “소리 내 우는 법을 잊은 널 위해” “다시 걸어갈 수 있도록” “다시 사랑할 수 있도록” “홀로 걷는 너의 뒤에” 서서 “그치지 않을 이 노래”를 부른다. 또 한 번 별이 지고 있는 너의 세상에 아주 잠시만이라도 귀 기울여 보고, 할 말을 잃어 고요한 마음에 기억처럼 들려오는 목소리에 숨죽여 흐르는 눈물을 삼킨 사랑시를 부른다. 너에게로 선명히 날아가 늦지 않게 자리에 닿기를 기도하며 약속한다. “아주 커다란 숨을 쉬어 봐” “너의 긴 밤이 끝나는 그날, 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곳에 있을게”

한 해가 또 지나간다. 새해를 맞는 설렘 못지않게 지난해를 보내는 아쉬움도 크다. 그 설렘과 아쉬움 사이에 쓸쓸함이 깃든다. 가난하고 약한 이웃이 가장 쓸쓸한 시간도 이맘때다. 그래서 이맘때면 구세군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가난하고 약한 이웃에게 가장 씁쓸한 것은 그들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만드는, 그들을 향한 무시와 혐오의 눈길이다. 무시와 혐오의 눈길은 차별을 낳는다. 무시와 혐오로 차별받는 대표적인 이가 바로 동성애자나 성전환자와 같은 성 소수자다.

한 학생이 있었다. 성 정체성으로 힘들어하던 그는 마침내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바꾸었다. 그리고 한 여대에 합격했다. 그 소식을 들은 재학생들은 “여성의 안전을 위협한다.”라며 입학을 반대했다. 결국 그녀는 고민 끝에 등록 마감 직전에 입학을 포기했다. 한 직업 군인이 있었다. 성 정체성으로 힘들어하던 그는 마침내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바꾸었다. 군은 성전환이 군의 질서를 해친다고 여겨 성을 바꾸어 생긴 신체의 변화를 ‘심신 장애’로 판정하고, 그녀에게 강제 전역 명령을 내렸다. 절망한 그녀는 전역 하루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안전이나 질서를 위해 성 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되는 까닭이 있을까?

미국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는 그의 책 〈정의론〉에서 그 까닭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장 불리한 이가 가장 유리하도록 하는 게 정의다.”

                                                                                - 롤스, 〈정의론〉


성 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되는 까닭은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가장 불리한 이가 가장 유리하도록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가장 불리한 이가 가장 유리하도록 하는 게 정의일까?

                                          Harvard philosophy professor John Rawls (1921–2002)

롤스는 ‘무지의 면사포’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게 되는, ‘무지의 면사포’가 있다면, 그 면사포를 쓰고 내리는 판단은 특별히 나에게 유리하게 할 수 없어 공정하므로 정의롭다. 예를 들어 ‘무지의 면사포’ 때문에, 내가 부자인지 아닌지 모른 채 내리는 판단은 특별히 나에게 유리하게 할 수 없어 공정하므로 정의롭다. 내가 동성애자인지 아닌지, 성전환자인지 아닌지 모른 채 내리는 판단도 마찬가지로 정의롭다.

그런데 왜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내리는 판단이 가장 불리한 이가 가장 유리한 판단이 될까? 배 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기 때문이다. 이익보다 손해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롤스는 케이크 자르기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두 사람이 케이크를 나누어 먹는다고 해보자.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다. 자르고 나서 가져가는 순서는 가위바위보로 정한다. 다시 말해, 마치 ‘무지의 면사포’를 쓴 것처럼 내가 유리한 이가 될지, 불리한 이가 될지 모른 채 케이크를 잘라야 한다. 자르는 이는 어떻게 자를까?

아마도 똑같은 크기로 자를 거다. 만약 다른 크기로 자르면, 가위바위보에서 이기면 큰 것을 가지지만 지면 작은 것을 가질 텐데, 큰 것을 가지는 기쁨보다 작은 것을 가지는 억울함이 더 클 것이므로, ‘억울함이 없도록’ 똑같은 크기로 자를 것이다. 억울함이 없도록 한다는 말은 가장 불리한 이가 가장 유리하도록 한다는 뜻이다.

케이크 자르기가 그렇다면, 성전환자의 대학 입학에 대한 판단이나 성전환자의 군대 강제 전역에 대한 판단은 어떨까? 마치 ‘무지의 면사포’를 쓴 것처럼, 내가 성전환자인지 아닌지를 모른 채 판단을 내린다면, 가장 불리한 이가 가장 유리하도록 정의롭게 판단을 내릴 거다. 무지의 면사포를 벗었을 때 내가 성전환자일 수도 있으므로, 성전환자의 대학 입학에 찬성하고, 군대 강제 전역에 반대할 거다. 

올해도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못했다. 2007년 처음 발의된 지 16년이 지났지만, 유엔이 여러 차례 강력하게 권고했지만, 아직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에 유난히 긴 밤을 걷는 이들은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소리 내 우는 법을 잊은 채 숨죽여 눈물을 삼키며, 마침내 기나긴 밤이 끝나고 당당히 다시 걸을 수 있는, 마음껏 다시 사랑할 수 있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있다. 그 사이에도 수많은 아름다운 별들이 지고 있다. 즐거운 성탄절을 보내고, 행복한 새해를 맞는 오늘 밤에도 어김없이.


아주 잠시만 귀 기울여 봐
숨죽여 삼킨 눈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니?

.
.
.
.
.
.

아무도 숨죽여 눈물을 삼키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게 사랑이야!

 

김광식 서울대·인지문화철학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 과학·기술·철학과에서 인지문화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기초교육원에서 교양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인지과학의 성과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인지철학자이자, 여러 문화현상의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문화철학자이다. 저서로 『BTS와 철학하기』, 『행동지식』, 『김광석과 철학하기』, 『다시 민주주의다』(공저), 『세상의 붕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공저)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