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해진 도시는 축복인가, 재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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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해진 도시는 축복인가, 재앙인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12.23 2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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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영하는 도시, 몰락하는 도시: 도시는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가 | 이언 골딘·톰 리-데블린 지음 | 김영선 옮김 | 어크로스 | 320쪽

 

로컬부터 메가시티까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도시’에 관한 뜨거운 논의가 담긴 책이다. 왜 어떤 도시는 거대해지고 어떤 도시는 소멸하는지, 도시화가 야기한 각종 문제에 세계의 도시들은 어떻게 대처했는지, 21세기 지식 경제 시대에 맞는 도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등 도시가 마주한 문제와 그 해결책을 역사적 사례와 풍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탐구한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에서 고대 로마와 아테네를 거쳐 뉴욕과 상하이 등 현대의 메트로폴리스에 이르기까지, 도시는 항상 인류 발전의 엔진이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 그 명성이 흔들리고 있다. 규모는 커지는데 거주민은 빈곤해지고, 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가상 공간은 사람들을 분열시킨다. 설상가상 전염병과 기후변화까지 도시를 위협한다. 세계의 도시들은 기로에 서 있다. 이대로 멈출 것인가, 계속 번영할 것인가? 이 책에서 저자들은 격동의 시대에 도시를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와, 위기에 놓인 도시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세계의 부와 인구가 도시로 몰리면서 우려와 논란도 뒤따르고 있다. 뉴욕, 런던, 파리처럼 번영하는 거대 도시와 다른 곳의 경제적·문화적 차이가 커지고, 도시 내 격차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도시의 규모가 질적 성장을 동반했던 과거와 달리 개발도상국의 도시들이 발전 없이 비대해지는 경우가 생기면서, 과연 도시가 커지는 것이 바람직한 발전 방향인가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논쟁 가운데에도 이언 골딘은 도시가 가진 힘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인류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도시에 모인 사람들이 협력하고 분업하며 창조적인 발명을 해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도시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 역시 도시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나침반 삼아 도시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겪은 세계 주요 도시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산업혁명으로 분산되었던 영국의 부와 인구는 왜 다시 런던으로 집중되었는지, 19세기 중반 미국 북동부 지역 도시를 중심으로 시작된 산업화가 중서부와 남부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제조업 전성기에 가장 호황을 누렸던 세인트루이스 같은 도시들은 오늘날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고숙련 지식 노동자의 수요 급증과 일자리의 변화는 어떻게 ‘슈퍼스타 도시’를 탄생시켰는지 등은 노동집약적 제조업의 쇠퇴 이후 좀처럼 회생의 기회를 찾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여러 도시들이 주목해야 할 내용이다.

또 1970년대 초 실업률이 치솟으며 돌이킬 수 없는 쇠퇴기에 접어들었던 시애틀이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에 들게 된 전환점은 무엇인지, 일본 도시인구의 45퍼센트를 차지하는 도쿄 광역권의 평균 소득이 다른 일본 도시들과 비슷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지 등 이 책에서 언급하는 도시들의 사례는 부유한 나라의 쇠퇴하는 산업도시들이 다시 번영의 기회를 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해준다.

20세기까지 도시계획의 일반적인 철학은 도시의 여러 지역을 서로 다른 기능상의 용도로 나누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이제 경쟁력 없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저자들은 지식 경제 사회의 일자리에 맞게 도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격 근무는 여러 장점이 있지만, 사람들이 협력하고 분업하며 창조성을 발현하는 도시의 막강한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원격 근무와 사무실 근무의 장점을 두루 취하는 혼합 근무 방식이 주를 이룰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저자들은 미래의 도시가 이러한 흐름에 맞춰 복합용도로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인구 증가는 대부분 개발도상국의 도시에서 일어났다. 과거 한국, 중국, 일본은 도시화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이루었지만, 오늘날 많은 개발도상국 도시들이 그러한 과정을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발전 없이 거대하고 과밀해진 도시의 주민들은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게다가 전염병과 기후변화 같은 인류 공통의 위기는 세계의 도시 중에서도 개발도상국의 도시에 더 큰 충격을 준다. 도시는 늘어나는 인구를 어떻게 수용할 것이며 그들의 일자리를 어디에서 찾을지, 기후변화와 전염병의 대유행으로부터 우리를 어떻게 보호할지 등 해결해야 할 난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인류 진보의 엔진이었던 도시가 앞으로도 그 역할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의 저자들은 도시의 번영과 몰락은 도시가 가진 힘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도시가 맞닥뜨린 위기를 극복하고 운 좋은 몇몇 도시와 그 도시 내 소수에 부와 기회가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경제적 기회를 주기 위해, 지금까지 인류의 발전을 이끌어온 협력과 유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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