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혁명은 세상을 어떻게 바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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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혁명은 세상을 어떻게 바꿨을까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12.23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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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소드 The Method: 20세기를 지배한 연기 테크닉 | 아이작 버틀러 지음 | 윤철희 옮김 | 전종혁 감수 | 에포크 | 704쪽

 

“메소드는 단순히 연기론이나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울먹이게 만드는 든든한 방법이 아니다. 변화를 불러오고 혁명을 일으킨 현대적인 예술운동이자, 20세기의 위대한 생각이다. 무조음악, 모더니즘 건축, 추상미술처럼 “시스템”과 메소드는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버릴 인간 경험을 상상하는 새로운 방법을 내놓았다.” _'들어가며' 중에서

 

메소드는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와 하나가 된 상태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특별히 메소드 배우라고 지칭하지 않더라도 현대 연기에는 어느 정도 메소드 연기가 바탕에 깔려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메소드의 등장은 ‘연기 혁명’이라 불릴 만큼 연기에 대한 접근법은 물론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던 연기에 대한 개념까지 바꿔버렸다. 하지만 메소드는 논란이 많은 테크닉이기도 하다. 감정을 끌어내는 몇몇 방식이 배우들을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저자 아이작 버틀러는 메소드를 몇몇 전설적인 천재들의 이야기 또는 몇몇 스타 배우들의 기이한 연기 테크닉이라는 프레임에서 꺼내, 메소드 자체가 주인공인 새로운 문화사를 만들어냈다. 그는 메소드에게는 부모가 있으며, 메소드와 메소드를 둘러싼 논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메소드가 살아온 시대와 당시 문화적 맥락에서 이를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러시아 혁명 이전의 러시아에서 시작된 연기 철학이 어떻게 미국으로 건너왔고,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를 점령하며 미국 연기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는가를 주제로 다룬다.

뛰어난 연기란 무엇인가. 뛰어난 연기를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무대와 스크린에서 배우의 연기를 보는 순간, 그것이 뛰어난 연기인지 아닌지를 직감적으로 안다. 배우는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 달리, 배우 자신이 재료인 특별한 영역이다. 화가인 동시에 회화인 셈이다. 배우들은 대체 어떻게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서 ‘자아’를 꺼내 예술에 쏟아 넣을 수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약 130년 전, 차르가 통치하던 러시아에서 이 문제에 천착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배우이자 연출가였던 스타니슬랍스키다. 그와 네미로비치단첸코는 러시아의 검열제도와 틀에 박힌 연기에 갇힌 연극을 개선하고자 모스크바 예술극장이라는 극단을 만들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차르 표도르 이바노비치]와 [갈매기]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스타니슬랍스키가 연기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고민하게 된 계기는 그가 헨리크 입센의 희곡 [민중의 적]에서 스토크만 역을 연기할 때였다. 자신이 무대 위에서 생동감이라고는 없이 연기 시늉만 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배우에게서 영감을 이끌어내고자 무대 연출이나 디자인을 활용해왔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어떻게 해야 ‘공연 포스터에 적힌 그 시간’에 무대 위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을까?

스타니슬랍스키는 당시 유행하던 관습적인 감정 표현과 웅변 위주의 연기를 버리고 ‘페레지바니예’, 즉 ‘경험하기’를 통한 연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레지바니예는 배우가 캐릭터가 처한 상상 속 현실에 철저히 녹아들어 캐릭터가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배우가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 때 발생한다. 즉 ‘배역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페레지바니예는 완전히 그 캐릭터가 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배우의 살아 있는 의식과 캐릭터의 허구적 의식이 만난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를 위해 스타니슬랍스키는 “시스템”이라는 연기 테크닉을 개발했다. 그중 지금도 논란의 대상이 되는 개념 하나가 바로 ‘정서 기억’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기억력처럼 정서적 인상 역시 저장하고 떠올릴 수 있으며 훈련하여 향상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연극 [파랑새], [검찰관], [시골에서의 한 달]에서 이를 활용해 관객과 평단 모두의 호평을 받았다. 이로써 러시아의 연극과 연기는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메소드의 탄생과 성공, 내리막길의 서사가 뼈대를 이루지만 뼈대를 둘러싼 이야기를 풍성하고 생생하게 만드는 것은 당시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이 얽히면서 빚어낸 다양한 일화들이다. 메소드는 그 시대의 정치적 상황과 문화적 변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메소드가 거쳐온 100년의 시간 동안 벌어진 러시아 혁명, 미국의 대공황, 매카시 선풍,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 영화 기술의 발전 등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사건들 역시 메소드의 일생에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스타니슬랍스키가 네미로비치단첸코를 처음 만났던 1897년 모스크바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모스크바에서 뉴욕(브로드웨이)으로, 로스앤젤레스(할리우드)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갈매기], [차르 표도르 이바노비치], [백의의 사람들], [레프티를 기다리며] 등 연극 작품,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대부], [졸업], [분노의 주먹] 같은 할리우드 영화, 말런 브랜도, 더스틴 호프먼,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등 메소드 배우들의 연기 특징을 상세히 다룬다. 그밖에도 198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아메리칸 곤조’와 메릴 스트리프 등을 비롯한 다양한 연기 테크닉을 소개하며 메소드 이후의 변화도 소개한다.

20세기 중반에 전성기를 누린 메소드는 전성기가 지난 지 한참인 지금까지도 미국 문화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처럼 메소드는 밤하늘의 별자리가 되어 항상 우리를 굽어보고 있으며, 진실과 예술에 대한 메소드의 사상은 아무리 흔들어도 끄떡없을 만큼 너무나 강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메소드는 배우들을 위한 연기 테크닉을 넘어 예술과 인간을 바라보는 혁신적인 사고로서 지금까지도 확실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연극평론가 빈슨 커닝햄은 “메소드의 역사는 강렬함의 역사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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