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꼴이 돼도 좋다 무턱대고 낳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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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꼴이 돼도 좋다 무턱대고 낳고 보자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3.12.23 2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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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명 교수의 〈생활에세이〉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1960년대인가 산아제한을 권장하는 정부의 구호였다. 온 방송과 언론에서 가열차게 퍼뜨렸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세월이 좀 지나고서 조금 더 세련된 구호가 세상을 덮었다. 

아이들이 너무 많아 고민이던 대한민국이 어느새 아이가 너무 없어 큰일인 대한민국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의 원인이 아이를 키우기 힘든 환경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니 가만히 생각할 것도 없이 그냥 얼핏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한국이 세상에서 가장 아이 키우기 어려운 환경인가? 굶주린 나라일수록 아이를 많이 낳고, 우리의 경우에도 오히려 가난한 시절에 아이를 많이 낳았다. 

지나친 경쟁과 부족한 육아 시설, 허리 꺾는 사교육비, 주거비 등이 최저 출산율의 원인으로 거론된다. 맞는 얘기다. 그런데 경쟁은 그전부터 있었고, 육아 시설은 과거에 더 나빴고, 사교육 부담도 과거에 결코 덜하지 않았고, 단칸셋방에서 아이 둘, 셋씩 낳았다. 그러니 이런 요인들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더 중요한 원인은 사람들의 인식이 변했고 사회 분위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가 너무 급격하여 사회 환경의 변화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아이 키우기 힘들지 않아서 아이를 많이 낳았나? 아니다. 그냥 아이 낳은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힘들어도 당연한 짓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당연한 일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아이는 당연히 낳는 것이 아니라 잘 계산해 보고 힘들지 않을 것 같아야 낳는 세상이 되었다. 그 ‘힘들다’는 기준도 당연히 옛날보다 매우 낮아졌다. 섭씨 30도만 넘어도 폭염이라고 죽는  시늉을 하는 세상이 되었다.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개인주의와 사적 행복 추구가 갑자기 드세졌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출산, 육아의 제도적 환경이 못 따라갔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객관적’인 사회 조건과 정책 변화다. 사회 조건은 정부가 개입한다고 단기간에 바뀌는 것이 아니고, 이 글의 주제도 아니다. 정책 변화는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효과가 잘 나지 않는다. 당연하다. 사회 조건과 개인 인식은 더디게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적당한 정책들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가 이해 안 되는 한 가지는, 왜 정부고 언론이고 개인의 주관적인 영역에 대한 노력을 안 하냐는 것이다. 

“거지꼴은 안 될테니 일단 낳고나 보자.” “아이 없는 세상 나라 망한 세상.”

등등 캠페인을 왜 안 할까? 아이 낳지 말자고는 그렇게 외쳐대더니 아이 낳자고는 왜 외치지 않을까? 뭔가 무서운가? 무엇이? 그런 캠페인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촌스러워 보이나? 까닭을 잘 모르겠지만, 모든 문제를 개인보다는 정부와 사회구조 탓으로 돌려야 있어 보인다고 착각하는 많은 지식인들의 위선 또는 허세가 한몫하지 않나 싶다. 

오늘도 방송은 발광하는 아이, 지옥 같은 결혼생활을 선전하고 혼자 사는 노총각 노처녀를 이상화하기에 바쁘다. 이런 문제가 조금씩 지적되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인데, 공론장은 예의 그 위선과 허세로 “시청자가 바보냐, 그런 게 영향을 미치게” 하는 기사나 쓰고 있다. 내가 답한다. 시청자는 대체로 바보고 그 기자는 정녕 바보다. 선전과 광고, 홍보의 효과에 대해 내가 굳이 괴벨스를 들어야 할까 테슬라를 들어야 할까... 

객관적인 조건 향상에 힘들이는 만큼 정부와 사회 지도층이 ‘용감하게’ 나서서 아이 낳기를 장려하고 개개인의 인식 변화를 유도해야 하리라 본다. “넘치는 아이 행복한 미래”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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