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교양교육 발전을 위한 정책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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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교양교육 발전을 위한 정책 제안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12.23 1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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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F 이슈페이퍼]

 

최근 10여 년 동안 교양교육의 중요성은 대학 내외에서 모두 강조해왔다. 교양대학 등 교양교육 전담 기관을 설치한 대학이 크게 증가한 것도 이를 반영한 것이다. 교양교육의 본질적 의미를 살린다면 직업적 전망 못지 않게 인문교육의 성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교양교육은 특정한 직무를 위한 능력이나 전문성, 혹은 직업을 위한 일반적 역량을 기르는 영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현대 교양교육에는 자유교육(Liberal Education)과 일반교육(General Education)이란 두 지향이 중첩되어 있다. 자유교육의 이념에 따르면 교양교육은 능동적, 주체적, 자율적인 인격을 갖춘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일반교육은 전문성을 갖춘 직업인이기에 앞서 다양한 영역에 걸쳐 풍부한 삶을 살아가는 전인적 인격체로서의 인간을 형성하는 교육이다. 두 관점 중 어느 쪽에 기대어 보더라도 한 인간으로서 좋은 삶을 살게하는 인문교육이 교양교육의 핵심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상반된 두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는 4차 산업혁명과 AI를 통해 ‘기술의 도전’이라 표현되는 이 기술발전 시대에 교양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으며 교양교육의 응전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교양교육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존속의 위기를 고민하는 대학교육의 현장에서는 교양교육의 정상화와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도 더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한국연구재단은 이 양면성을 모두 살피면서 전자를 살리고 후자를 극복하기 위해 교양교육의 내실화에 접근하는 정책을 제안하는 보고서 <인문 교양교육 발전을 위한 정책 제안>(저자: 박정하 성균관대 교수 외 2인)를 「NRF 이슈 리포트 2023_12호」로 최근 발간했다. 아래에 리포트의 주요 내용을 요약했다.

 

■ 기술발전 시대 인문 교양교육의 필요성과 방향

첫째, 리터러시 교육을 더 강화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직업 환경이 현저히 빠르게 변화할 것인데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평생학습 능력의 근간이 되는 리터러시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둘째, 자기성찰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기초학문 중심 교육을 더 강화해야 한다.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해 사회도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고 그에 따른 불안정한 삶의 상황에서 자신이 나아갈 방향의 설정과 이를 성찰하며 지켜나갈 수 있는 능력이 무엇보다 더 필요한 시대이다. 이 능력은 기초학문 중심 교육을 통해서 교양교육에서 배양되고 강화될 수 있다.

셋째, 교양교육은 기술의 발전을 숙명론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기술의 발전 방향과 속도를 결정해야 할 주체임을 깨닫고 이를 결정할 수 있는 의사결정 능력을 강화하는 교육이며, 기술발전의 올바른 방향을 판단할 수 있는 도덕적 판단력 배양 교육이 그 중심에 자리한다.


■ 인문 교양교육 발전 저해 요인: 문제점과 그 원인

▶ 전공 학과 중심의 대학 학사구조

민주시민의 양성, 세계시민의 양성은 고등교육의 기본 과제이며 교양교육의 기본 목표일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강력하게 요구하는 현안 가운데 하나이다. 

오늘날 한국 대학의 기본 골격을 이루고 있는 전공 학과(부) 중심의 학사구조가 가지고 있는 분권적이고 폐쇄적인 경직성과 비효율성은 창의적인 융합 인재 양성이라는 사회 수요에 대응하기 어렵게 하고 있으며, 학생의 전공 선택권 확대라고 하는 새로운 고등교육 정책을 추진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 교양교육의 목적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대학평가

대학기관평가인증이나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의 교양교육에 대한 평가 혹은 진단은 교양교육에 대한 전면적 평가나 진단이라기보다 고등교육기관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었는지를 평가한다거나 역량중심 교육과정을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는지를 진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대학평가의 본래 목적이나 취지를 달성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교양교육에 대한 본격적이면서도 전면적인 평가라고 할 수는 없으며 교양교육의 내실화와 개선에 중요한 요건이 되는 교육목표의 적절성이나 교과목의 적합성, 교양교육 전담기관 등에 대한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좌우되는 교양교육

한국 대학은 국공립대학보다 사립대학이 월등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재정지원사업과 관련된 고등교육 정책의 방향에 따라 대학의 교육 또한 커다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교육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특정 사업 수행을 위해서 교육과정이 바뀌고 뒤틀리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 대학 교양교육 정책 제언 기구의 부재

융합인재의 양성이 시대적 과제로 부상하면서 여러 학문 분야를 폭넓게 교육하는 교양교육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 혁신, 그 중에서도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교양교육의 혁신을 위한 정책 제언을 주된 업무로 담당하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부재는 한국의 미래, 한국 대학의 미래를 위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교양교육에 대한 대학의 인식 및 역량 부족

대학의 교수나 학생들은 교양교육을 ‘학습 부담이 높지 않은 과목’, ‘생활 속의 소양이나 예절’, ‘알아둬서 나쁘지 않은 것’ 혹은 ‘인문학의 다른 이름’ 정도로 이해하고 있으며, 교양교육을 담당하는 교양교육 전담기관 내 교수들조차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로 인해 대학에서 개설되는 교양 교과목 가운데에는 학술성이 미흡하다고 평가받는 과목이 부지기수이다.

교양교육 전담기관의 경우에는 전교생의 교육을 담당함에도 불구하고 극히 일부의 비교과 프로그램 운영 예산이나 교원 워크숍, 정책연구 예산을 제외하면 예산 편성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학마다 교양교육에 대한 예산 배정의 기준이나 원칙이 설정되어 있지 않아 교양교육의 지속성과 투명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정책 제안

▶ 교양교육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국가 차원의 재정지원

실용적 지식교육 중심의 교과과정 편중화가 심각해지는 현실에서 교양교육의 위상을 바로잡고 교양교육의 질적 내실화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교양교육과 관련된 연구를 진작시키는 학문적 활성화는 물론이고 교육인력의 안정화를 위한 국가 차원의 재정지원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 한국교양기초교육원 위상 강화: 지원기관에서 정책기관으로

그동안 한국교양기초교육원은 인문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양교육을 지원해 왔으므로 한국교양기초교육원에 대한 재정지원과 인력지원을 대폭 확대하여 지원기관에서 정책기관으로 격상시킬 경우 교양교육 나아가 인문교육의 진흥이 가속화될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교양기초교육원을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 진흥 전담기관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 교양교육 평가의 전문성 제고

그동안 시행되어 온 국가 단위 사업들은 교양교육도 전공교육과 동등한 대학교육의 한 영역이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 하지만 질적 개선까지는 충분히 유인하지 못했다. 평가 내용이나 기준에서의 전문성 결여가 일차적 이유이고, 교양교육 전문가 집단을 기획과 시행의 주체로 확보하지 못한 것이 근본적 이유이다. 전문성을 갖춘 주체가 확보되어야 비로소 바람직하고 전문적인 평가가 가능하므로 무엇보다 교양교육 전문가 집단이 교양교육 평가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교양교육 평가의 전문성을 높이는 근본적 해결책이다.

▶ 학문분류에서 교양교육 위상 재조정

현재 교양교육은 ‘대분류-중분류-소분류-세분류’로 위계화된 한국연구재단의 ‘학술연구분야분류표’에서 ‘사회과학-교육학-분야교육-교양기초교육’으로 교육학의 세분류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불합리한 구조이므로 시급한 개선이 요구된다. 인문학, 기초사회과학, 자연과학 전체를 망라하는 교양교육이 “교육”이란 말이 붙었다는 이유로 사회과학의 한 분야인 교육학의 세분류로 배치한 것은 체계상으로도 불합리하며, 교양 교육의 비중과 위상에 걸맞은 수준의 연구비 배정을 막아서 교양교육에 대한 전문적이고 심층적인 연구를 저해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합리적 조정을 통해 교양 교육, 혹은 교양학을 중분류 이상에 배치하든가, 그 이전이라도 각종 연구사업에서 교양 교육을 별도의 트랙으로 설정하여 적절한 수준의 연구비를 배정하는 합리적 접근이 필요하다.

▶ 학내 자원 배분 원칙 유무에 대한 교육부의 관리 감독

국가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대학 내부에서도 한정된 학내 자원(인력, 예산, 학점 등)을 전공과 교양에 어떻게 배분해야 할지에 대해 교내 합의를 통해 원칙을 정하여 명문화하고 이를 실행하도록 해야 한다. 교양이 전공과 동등한 독립된 교육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자원 배분의 원칙이 없으면 학교 운영진이 교양교육에 의지를 갖고 있어도 그때그때 당면 문제 해결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교양교육은 자꾸 뒤로 처지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학내 다수를 차지하는 전공 교수도 교양교육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자원 배분에 대해서는 자기 전공의 몫을 빼앗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교육부가 관리기관이라 할 수 있으니 각 대학이 배분 원칙을 세우고 있는지 정도는 점검할 필요가 있으며, 이런 원칙의 유무와 원칙의 실행 정도를 대학 평가시 반영할 필요가 있다.

▶ 교양교육 교원 공유를 위한 제도적 지원

교양교육에서 인문학을 비롯한 기초학문 교과목의 중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이를 강의할 교수자의 채용이나 확보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이 지역대학이나 전문대학의 상황이므로 이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교육부도 혁신지원사업의 일부로 교육공유를 각 대학이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했고, 특히 교양교육에서 공유가 시도된 사례들이 있으나 제도의 미비로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다. 따라서 같은 지역 복수의 대학들이 교수자를 공유하는 제도를 법적으로 인정하거나 혹은 일종의 국가교수제와 같은 교수자 지원제도를 교육부에서 정책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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