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수업 시간에 종을 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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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수업 시간에 종을 친다니
  •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 승인 2023.12.19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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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형 칼럼]

얼마 전에 학술 발표를 들으러 서울 시내의 한 대학에 다녀왔다. 평일 오후에 다른 학교 교정을 가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런데 발표를 한창 듣는 도중에 강의실 어디에선가 벨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휴대전화를 꺼 놓지 않았는가 보다 하고 그 소리를 무시했다. 그런데 몇 분 뒤에 또 벨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그제야 이 학교에서는 고등학교처럼 수업 시간에 맞추어 종을 친다는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얼핏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지금까지 필자가 근무했거나 출강했던 학교들 중 수업 시간마다 종을 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기에, 대학 강의실에 종소리가 울린다는 것이 귀에도 거슬리고 마음에도 거슬렸다.

필자는 그 대학을 다닌 적도 없고 그곳에 출강한 적도 없는 완전한 외부인이다. 그러니 필자가 남의 학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필자가 하려는 이야기는 비단 이 학교뿐만 아니라 대학 사회 전반과 관련이 있는 사안이기에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강의실에서 종을 치는 것은 물론 수업 시간을 잘 지키라는 뜻일 것이다. 수업 시간을 지키는 것은 교수와 학생 사이에 맺은 엄격한 약속이다. 필자 또한 이 약속을 지키고자 늘 노력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대학 강의를 하는 동안 수업 시간에 지각한 적이 없었고, 아무리 늦어도 수업 시작 1~2분 전에는 강의실에 미리 들어가서 강의 준비를 마치고 정해진 시각에 수업을 시작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아 왔다. 끝나는 시간도 물론 잘 지켰다. 하지만 이러한 약속은 남이 통제해서가 아니라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지켜야 의미가 있는 법이다. 누가 밖에서 종을 치지 않더라도 교수와 학생이 수업 시간을 잘 지킬 때 비로소 약속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강의실에 시계가 없고 교수와 학생들도 휴대용 시계를 가지고 다니기 힘든 상황이라면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거의 모든 강의실에 전자칠판과 컴퓨터 등 현재 시각을 알려 주는 도구가 있고 벽걸이 시계 또한 강의실에 기본적으로 걸려 있다. 그리고 학생들도 대부분 스마트폰이나 휴대용 컴퓨터를 이용하기 때문에 시계를 보지 못할 리는 없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다. 그러니 시각을 몰라서 수업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렇게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종을 쳐서 수업 시간을 알려 준다니, 어쩌면 학교에서 교수와 학생들을 지나치게 통제하거나 간섭하려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대학은 통제나 간섭보다는 자율에 바탕을 두고 운영해야 하는 기관이다. 대학의 존재 이유 또한 다른 사람의 통제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을 가진 지성인을 양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굳이 시키지 않아도 수업 시간을 지키려는 교수와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치는 종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약속을 자율적으로 지키려는 선의를 실현할 기회를 앗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자가 다녀온 학술 발표 행사처럼 특정 수업 시간과 관계없이 진행하는 행사를 할 때도 종소리는 백해무익하다. 연주회장에서 뜬금없이 울리는 휴대전화 벨소리를 상상해 본다면 학교에서 일률적으로 송출하는 종소리가 왜 문제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특정 대학 이야기를 이렇게 공론장에서 해도 되는지 글을 쓰는 내내 고민했다. 어떤 분들은 혹시 자기 학교 이야기 아닌가 하고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것은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구체적인 사안을 계기로 해서 대학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를 함께 성찰하고 개선점을 찾아 나가자는 뜻임을 알아 주셨으면 한다. 그러면 아무리 한때는 학생들을 통제하고 간섭하는 제도를 운영했던 학교라 하더라도 앞으로는 더 자율적이고 더 합리적인 대학을 앞장서서 설계해 나가는 한국 대학 사회의 길라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꼭 그렇게 되기를 필자 또한 진심으로 바란다.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하임 라이프니츠 독일어연구원 방문학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천주가사에 대한 텍스트언어학적 연구”, “텍스트언어학에 기반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 텍스트 구성 시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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