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전쟁, 경합하는 해방과 속박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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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전쟁, 경합하는 해방과 속박의 교육
  • 문화과학사
  • 승인 2023.12.17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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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과학 (2023년 겨울 통권116호) - 학교 전쟁』 | 임태훈·김환희·김성일·강정석·김성윤·임세화 외 12명 지음 | 문화과학 편집부 엮음 | 문화과학사 | 319쪽 | 2023.12.12.

 

ㅇ ‘학교 전쟁’을 제호로 삼은 계간 『문화/과학』 116호는 공교육에서 대학 교육에 이르는 한국 교육 시스템의 총체적 실패와 구조적 한계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기획됐다. 한국 공교육은 교육권을 빌미로 학내의 다양한 구성원에 대해 ‘갑질’을 자행하는 왜곡된 소비자주의, 피해자주의, 교사의 안전 책임 과중, 갈등을 중재할 리더십의 부재 등의 구조적 모순에 갇혀 있다. 법률화된 불신을 극복하고 교권, 노동권, 인권이 조화를 이루는 학교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ㅇ 87년 민주화 이후로 역대 정부는 ‘능력주의적 교육 평등관’을 교육정책의 기본 기조로 삼았고, 윤석열 정부의 ‘공정성’ 이데올로기 역시 그 연장선이다. 표면적 취지와 정반대로 교육 불평등으로 양극화된 이중사회를 재생산한 핵심이다. 문화 정치적 평등성 기획으로부터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ㅇ 교육위기에 관한 현재의 담론에는 돌봄 기회의 격차가 교육 불평등의 조건이 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결핍됐다. 평가절하된 돌봄의 중요성을 의미화하는 것은 교육위기 해결의 핵심 진단 과제다. 

ㅇ 정부의 대입·대학 정책에 공교육이 종속된 상황에서, 시장만능주의, 기술 맹신에 치우친 정책이 추진 중이다. 근본적인 교육 환경 변화를 위해선 시민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미래 가치와 철학,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교육을 강화해야 하며 또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연구하는 자가 제도권의 허구에 기대지 않는 새로운 공동체를 개척해야 한다.


□ 특집 〈학교 전쟁〉

오늘날의 학교는 세속적인 교육 서비스 시장인 동시에 감정노동의 최전선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상황은 더 나빠졌다. 그 원인을 ‘입시 경쟁’이나 사회 전반에 침윤된 ‘신자유주의’의 폐해로 분석하는 것은 더 이상 충분치 않다. 역대 정부에서 교육정책의 기본 전제였던 능력주의적 교육 평등관의 폐해를 분석하고,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배움의 구조 변경, 외주화된 돌봄 노동의 문제, 금융화된 인간의 내면 변화를 정밀하게 진단하여, 이 모든 한계 상황으로부터 나아갈 상호부조의 교육공동체에 대한 비전과 모델을 제시한다.

임태훈은 특집을 여는 글 「‘학교 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에서 오늘날의 학교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ISA)로서도 수준 미달이라고 진단한다. 학교는 법 기술과 자경주의의 난장판이 되었고, 그 양상은 한국 사회의 분자적 내전으로 연장된다. 정부의 대입·대학 정책에 공교육이 종속된 상황에서 학교 공동체의 변화는 대학의 변화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육 당국은 AI 교사와 AI 튜터, AI 챗봇을 활용해서 초개인화 맞춤형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 맹신에 몰두하며, 이 시대 학생들이 약자, 소수자를 상상하고 사유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음을 책임지지 않고 있다. 더욱더 철저한 인권을 학교에서 보장해야 하며, 시민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미래 가치와 철학을 배우는 곳이 학교라는 믿음과 기대를 회복해야 한다.

► 현직 초등학교 교사이자 인간무늬연구소 대표인 김환희「‘5·31 교육 체제’를 애도한다」에서 서이초 사건의 양상을 검토하며 만연한 소비자주의와 피해자주의, 교사의 안전 책임 과중, 갈등을 중재할 리더십의 부재 등의 구조적 모순을 분석한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아동복지법 및 아동학대처벌법이라는 법률화된 불신을 개정하고 교권, 노동권, 인권이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 단기적 대안이 될 수 있으며, 근본적으로 사회주의적 합의를 통해 교육을 공공재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김성일「교육권의 과소 혹은 과잉을 둘러싼 학교 전쟁의 또 다른 전선」에서 교육권을 빌미로 교사와 교내 청소노동자, 장애인 학생 같은 학내의 다양한 구성원에 대해 ‘갑질’을 자행하는 왜곡된 소비자 정체성에서 벗어나길 주장한다.

강정석「한국 교육의 이중사회 재/생산: 상층의 독점회로와 하층의 경쟁회로」에서 87년 민주화 이후로 역대 정부에서 이어온 ‘능력주의적 교육 평등관’을 비판한다. 윤석열 정부의 ‘공정성’ 이데올로기 역시 그 연장선에 있으며, 표면적인 취지와는 정반대로 교육 불평등으로 양극화된 이중사회를 재생산한 핵심이라고 지목한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대안적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문화 정치적 교육 평등성 기획이 필요하다.

김성윤「교육 위기의 현재적 쟁점으로서 ‘돌봄의 공백’」에서 교육 위기에 관한 현재의 담론에서 돌봄 기회의 격차를 진단하는 일이 결핍되었음을 비판한다. 돌봄 기회의 격차가 교육 불평등의 조건이 되는 현실에서, 평가절하된 돌봄의 중요성을 의미화하는 것은 교육 위기 해결에서 간과해선 안 될 과제라고 주장한다.

임세화「교양 없는 시대의 교양: 이념이 사라진 시대의 교육 기계들과 교실 이데아」에서 대학으로 확장·심화된 ‘교실 붕괴’ 기저에는 교육이라는 제도화된 가치만을 소비하게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소비 체제가 작동하고 있음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나아가 교육제도의 틀 안에서 규율되지 않은 영역이 엄존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동시에, 삶-일-공부를 분리하지 않는 삶, 비형식적인 교육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 동시대 분석 - 현 정부의 파행적 국정 운영을 비판하는 다섯 편의 글을 실었다.

이동연「포스트블랙리스트 문화 전쟁」에서 윤석열 정부의 검열이 이명박 정부의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및 박근혜 정부 대에 시행된 가이드라인에 의한 배제와 연속적인 관계에 놓여 있음을 분석한다.

김동원「언론 정상화와 장악의 이분법을 넘어서」에서 공적 재원을 통한 공영방송 시스템의 해체 문제를 비판하며, 일단 시행되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파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정권마다 반복되던 현상이기도 하다. 공영방송 장악 시도가 가능했던 배경에 주목하여, 거대 양당 체제의 문제점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비판한다.

용석록「핵 오염수 해양투기, 과연 누가 책임질 수 있는가?」에서 일본의 후쿠시마 핵 처리수 방류를 다뤘다. 윤석열 정부가 공식 명칭으로 정한 ‘처리수’가 왜 ‘오염수’일 수밖에 없고, ‘방류’가 아니라 ‘투기’로 말해야 하는지 선명히 알려준다. 더 나아가 한국 국민의 대다수가 일본의 오염수 해양 투기를 반대하면서 국내 핵발전소 문제에 소홀한 이중잣대를 비판한다.

장혜영「마포구청장, 책과 민주주의를 함께 공격하다: 플랫폼P, 작은도서관, 그리고 우리, 시민들」에서 책 문화의 중심지인 마포가 맞이한 위기를 상세히 폭로한다. 이 지역의 책 문화 생태계는 극심한 파괴에 직면했다. 마포구 관내 작은 도서관은 폐관됐고, 송경진 전 마포중앙도서관장은 파면당했으며, 플랫폼P는 청년창업지원센터로 변경되었다. 이 지역이 축적해온 유무형의 공동체 네트워크와 사회적 자본이 모욕적으로 훼손당했다. 마포의 출판 생태계를 둘러싼 싸움은 현재진행형으로, 일상적으로 향유하는 책 문화가 민주주의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김나희 「체제 전환 없다면 불가마지옥 잼버리장은 우리 공동의 미래」에서 2023 잼버리대회의 파행을 고발한다. 이 사태의 복잡성은 자본 친화적이고 반(反)생태적이며 공공성을 훼손하며 진행되고 있는 각종의 새만금 개발사업에 있다고 지적한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새만금 사업이 신공항 건설로 문제가 더 악화했음을 지적하면서, 공유지로서의 새만금 갯벌과 매립지가 자본의 사유화로 어떻게 훼손되었는지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과 그 후손이 공유해야 할 ‘무위의 가치’를 지닌 공동자산으로 새만금을 재인식할 것을 역설한다.


□ 텍스트의 발견 - 1990년대 문화사와 인공지능 플랫폼 노동의 의미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살펴본다.

정정훈「1990년대의 인지적 지도는 그려졌는가?」에서 윤여일의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를 검토하며, 인지적 지도 그리기로 90년대를 점검하는 이 책의 장단점을 살펴본다.

► 노동문제연구소의 오민규「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새로운 전환점일까」에서 이광석이 엮은 『인공지능 플랫폼 노동의 미래』를 검토하며, 인지자본주의와 인공지능, 인지 노동 등의 문제를 최소주의(자동화 담론이 신화에 불과하다고 보는 견해)나 최대주의(지능형 기술이 노동의 존재론적 모순을 넘어서게 한다는 주장)의 양자택일에 가두어 놓을 때의 맹점을 지적한다.


□ 이론의 재구성  

► 고(故) 신승철 철학자의 사유를 되짚는 자리로 채웠다. 철학 이론과 생태주의, 인류세 담론과 기후 위기 활동가 등으로 다방면에서 활약하던 신승철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전 이사장은 올해 여름,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하면서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의 뒤를 이어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승준 연구자는 「생태적 지혜와 떡갈나무 혁명: 故 신승철의 생태철학의 현재적 의미」에서 신승철의 삶과 활동, 철학적 지향 등을 담담히 적어 내리며, 그의 사상을 정리한다.


□ 제2회 문화비평 공모전 당선작

조윤희의 글 「명사 혹은 형용사로서 무성애」를 선정했다. 조윤희는 무성애라는 주제를 도전적으로 다루며, 이성애중심주의에 맞서 성소수자의 권리를 확보하려는 퀴어 비평의 이항 대립적 구도를 넘어서는 동시에 섹슈얼리티의 불안정성과 유동성을 드러내는 논의를 펼친다. 공모전 선정위원회는 당선작 주제의 독창성뿐만 아니라 모험적인 시도가 가진 긴장성, 해석적 깊이를 높게 평가했다.


□ 이미지 - 불평등의 사회 속에서 위기에 처한 교육의 장을 작업으로 심화해 탐구하고, 예술 언어를 통해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한 세 참여 작가를 소개한다.

백배승 감독의 단편영화 〈무두인〉은 사회적 위기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교육 현장의 비극을 영화의 한가운데에 배치함으로써, 총체적인 모순 속에서 교육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심화시킨다.

함양아의 작업은 사회 시스템과 양육·돌봄·배움의 네트워크에 주목함으로써, 사회가 조직되어가는 방향 속에서 상호적 배움과 연대의 가능성에 다가간다.

► 마지막으로 사회적 기준과 척도가 행사하는 힘에 대해 질문하는 이완의 설치 작업에서 교육은 각자의 다름과 하나의 기준 사이에 남겨진 불투명성을 파고드는 제도로서 탐구된다. 이러한 예술적 접근은 교육에 대한 시각을 미시적 삶과 거시적 구조 사이에서의 복합체로서 파악하게 하며, 또한 교육이 사회적 변화의 동력으로 자리하기 위한 대안적 사유와 실천의 장을 열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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