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해, 크로노스(Kronos)의 시간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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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해, 크로노스(Kronos)의 시간을 보내며...
  • 박광기 대전대·정치학
  • 승인 2023.12.17 0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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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기 칼럼]

앞으로 2주면 2023년이 지나고 새해가 다가온다. 대학은 방학이 시작되었지만, 신입생 모집과 변화되는 환경에 대비하느라 더 바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 교수에게 방학은 그래도 조금 여유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물음이 방학 중에 가장 많이 듣는 말이었다. 아마도 학기 중에는 수업과 학생지도, 연구 등으로 바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물어볼 필요가 없지만, 방학 중에는 이런 부담이 없다고 생각해서 하는 물음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이런 물음에 대한 답으로 '그럭저럭' 지낸다는 말 외에는 딱히 할 말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럭저럭 지낸다는 답은 일견 성의 없는 답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그럭저럭'이라는 답을 하면 더 이상의 물음도 없고 대충 이해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비록 '그럭저럭'이라고 표현하지만, 흔히 말하듯 '놀고먹는' 그런 일상이 아니라 나름대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방학 중에 하는 일들을 자세히 설명하기도 그렇고 어쩌면 질문하는 분이 자세한 내용에 큰 관심이 없고 그냥 지나가는 인사치레로 묻는 말일 수도 있으니 그냥 '그럭저럭'이라는 답이 가장 적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지내느냐?'는 물음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는 말과 같은 의미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리스어인 '크로노스(Kronos)'와 '카이로스(Kairos)', 즉 '그냥 덧없이 보내는 시간'과 ‘그래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크로노스는 한 시간, 하루, 일주일, 한 달, 그리고 일 년과 같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나가는 시간이나 큰 의미 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뜻하는 것으로 바로 '그냥 지나가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고, 카이로스는 누구와 같이 하는 행복한 시간은 물론이고 어떤 일이나 생각, 행동 그리고 무엇인가를 위해 집중하고 성과를 위해 노력하는 시간과 같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크로노스가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의 영역에서 물리적으로 지나가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면, 카이로스는 인간의 의지와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시간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카이로스의 의미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사느냐는 문제는 종교적 의미에서 말하는 '찰나'의 의미도 그렇고, 물리적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또 다른 차원의 시간 개념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크로노스의 시간은 본능이나 자연적 시간의 흐름만이 존재하는 것이고, 카이로스의 시간은 인간에게만 존재한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크로노스와 같은 물리적 시간에 새로운 의미의 시간을 부여하여, '그냥 지나가는 시간'인 크로노스를 '보다 의미 있고 뜻있는 시간'인 카이로스로 바꾸는 것이 바로 인간이며, 그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카이로스가 신의 영역에서 신의 의지에 따라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나, '의미 있는 시간'이나 적어도 '보람'을 느끼는 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에 카이로스는 인간의 의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인간이 누리고 지내는 모든 시간, 즉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의 범주 내내 유지될 수는 없을 것이다. 크로노스와 같이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 다시 말하면 인간 삶의 전부가 의미 있는 카이로스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때로는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는 고통과 번민 등을 겪는 시간조차도 과연 카이로스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로 힘들고 어려운 고통의 시간을 보낼 때는 크로노스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원하고, 흔히 말하듯이 '시간이 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약이 되는 시간은 어쩌면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닌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관계는 분명히 다르게 인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시간을 따져보면 그 시간이 많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의 삶을 돌이켜 보면, 그 시간이 길 수도 있고 짧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과거를 돌아보면서 미래의 인생을 생각하면 결코 그 시간은 길지 않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언제나 모든 시간에 충실했다고 하지만, 돌아보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 적도 있고 때로는 후회가 드는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그러나 인생의 전체 시간 속에서 그 의미들을 살펴보면, 그 시간 모두가 어쩌면 소중한 시간일 수도 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위 '멍 때리는 시간' 역시 다음의 카이로스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은 소중하지 않은 시간이 없다. 신이 준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의 시간도 인간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따라서 모두 카이로스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꾸는 것 또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크로노스의 시간이 그냥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을 인간이 어떻게 활용하고 보내는가에 따라서 그것이 그냥 크로노스에 머물 수도 있고, 카이로스로 의미 있게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의지를 동원해서 '창조적'으로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 '창조적'이라는 의미는 새롭게 의미를 찾아가는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창조'의 의미도 있지만, 인간 개개인이 느끼는 '창조'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창조적'으로 바꾸려는 의지를 가지고 그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2023년 한해를 돌이켜 보면서, 과연 올해가 의미 있는 변화나 발전이 있은 카이로스의 시간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또 지나간 카이로스의 시간이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학이 맞이하고 있는 위기와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위험과 위기에 대해서 그냥 지나가는 시간이 아닌 창조적인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기 위해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면서 그냥 지나버린 크로노스의 시간을 반성해 본다. 

※ 이 글은 필자의 2018년 1월 26일자 중도일보, “창조적 카이로스(Kairos)를 찾아서” 칼럼 내용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박광기 대전대·정치학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독일 뮌헨대학교 정치학 박사. 대전대 대학원장 및 도서관장, 국무총리실 인문사회연구회 및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 한국연구재단 사회과학단장, CBS 시사포거스 및 시사매거진 앵커, 한국정치정보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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