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품 너머를 상상하며 신라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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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품 너머를 상상하며 신라를 말하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12.1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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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에서 신라사를 생각하다 | 옥재원 저 | 푸른역사 | 188쪽

 

박물관을 방문한 관람객이 되었을 때 우리는 보통 무엇을 할까. 아마도 전시실에서 유물의 외형을 훑고 설명문을 읽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쓸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호기심은 대략 누군가가 이미 역사 중에서 선별한 주요 사건·사람·사실을 반복해 익히거나 암기의 빈칸을 채우려는 쪽으로 집중된다.” 역사의 기록 아래 묻혀 이름을 드러내지 못한 유물 생산자의 정직한 노고에 시선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

이 책에는 관람객의 입장에서 본 박물관 속의 신라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신라 마립간 시기를 중심으로 사회 구조와 사람 관계를 연구하고 있는 저자는 “스스로를 관람하는 사람이라 여기며 전시실을 다니고 전시품을 감상”하면서 국립중앙박물관 신라실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을 통해 신라사를 상상한다.

금관·금허리띠의 방에서는 신라의 핵심 지배층이었던 마립간 및 마립간을 배출한 혈족 집단의 이모저모를 떠올린다. 이사금 시기 신라의 성장에 큰 역할을 했던 철기들로 가득 찬 방에서는 전쟁과 농사뿐만 아니라 사회운영 차원에서 신라 사회가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음을 짚는다.

금령총에서 출토된 말 탄 사람 토기가 반기는 세 번째 방에서는 신라실의 역사적 서사 가운데 핵심을 차지하는 마립간 시기의 문화상을 조명한다. 신라 지배층의 각종 위세품들이 전시된 곳에서는 위세품이 자신의 신분과 소속을 과시하고 스스로를 위세품 소유가 거의 불가능했던 사람들과 확실하게 분별하는 데 효과적이었음을 살핀다. 흙 인형 진열장에서는 꾸밈이나 막힘이 없던, 표현은 거칠지만 다양한 감정들을 솔직하게 담아낸, 일상의 욕망을 자유로운 몸짓들로 표현한 장인들의 능숙한 솜씨를 연상한다.

네 번째 방에서는 6세기 전반 왕경의 정비와 불교의 공인이라는 기존 전통의 환기를 본다. 신라실 마지막 공간에 서 있는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에서는 밖으로 적과 맞서는 긴박한 상황에서 충성심과 애국심을 발휘하는 신라인들을 그린다.

 

저자는 신라실을 거닐며 다양한 전시품에서 갖가지 신라를 펼쳐 보인다. 마립간을 배출하는 혈족 집단이 전유한 위세품을 대표하는 금관을 보고는 태생적으로 ‘귀속 지위’를 누린 마립간 소속 혈족 집단 사람들뿐만 아니라 혼인 등으로 ‘성취 지위’를 얻어 왕실에 든 여성까지 상상한다. 원료를 구하기 어렵고 가공이 복잡하며 세공도 까다로운 금·은 위세품을 보고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값어치를 갖는다는 점에서 위세품 소유자의 높은 신분을 떠올린다.

신라실 1924번 진열장 안에 서 있는 남자 흙 인형의 직물로 지은 관모와 복장을 보고는 율령 안에 머무르면서 집권적 체제에 종사한 관료들의 모습을 그린다. 전시실 1927번 진열장에 배열된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들을 보고는 “지방 곳곳의 인력과 물자를 일부 지역으로 원활하게 동원하여 나라의 공간 전반을 효율적으로 운영해나간” 신라 중앙 정부의 모습을 연상한다. 6세기 전반 그릇들의 종류와 모양, 문양 등에서 나타나는 통일성을 보고는 체제와 국왕의 힘이 개혁을 거치며 사회 곳곳에 섬세하게 미쳤겠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박물관 속 신라사’이다.

저자는 관람객을 계몽의 대상으로만 보던 과거의 박물관에서 벗어나 역사가 놓쳤던 주인공들과 더불어 전시를 만들고 체험을 펼치는 오늘날의 박물관에서 “역사를 감당하며 이야기를 손수 지은” 신라인들에게 관심을 쏟는다. “그저 열심히 살며 무사히 견디다 요행히 천수를 누”린, “그리 지내는 중에 긴급한 현실”을 만나자 “나라와 지배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신라실의 주체들에게 눈을 맞춘다. 저자는 이 책이 “암기를 경계하며, 자기 주도적 사고로 박물관에서 전시품을 관찰하고 해석하면서, 자의식을 생산·축적”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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