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도성을 거닐며 권력의 정경을 그리다
상태바
고대 도성을 거닐며 권력의 정경을 그리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12.16 21: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고대 도성, 권력으로 읽다 | 권순홍 지음 | 푸른역사 | 136쪽

 

이 책에는 담장, 감옥, 고층 불탑, 성곽, 격자형 가로구획 등 고대 도성을 구성했던 여러 경관을 통해 본 권력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간을 매개로 과거 인간의 삶을 조망·재현함으로써 인간과 인간문화에 대해 좀 더 깊게 이해하기를 희망하는 저자는 고대 중국의 장안성, 주왕성, 낙양성부터 고구려의 평양 도성, 집안 평지성, 장안성까지 다양한 고대 도성을 거닐면서 권력이 깃든 정경을 그려낸다.

“정상부에 거대한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진”, “웅장함에 눈을 뗄 수 없는 산” 오녀산. 저자는 고구려 주몽이 부여에서 난을 피해 왔다가 도읍으로 정했다는 오녀산을 보며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나아가 권력의 속성을 떠올린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신전이나, 오녀산 위에 도읍한 천제의 아들 주몽이나, 경관이 부여한 신성성에 의지하고 신성한 곳을 독점하여 권력을 하늘에서 부여받았다고 주장함으로써 권력의 정당성을 창출하려는 노림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가 오녀산에서 받은 인상은 몇 년 후 윌리엄 호스킨스의 “경관은 자연 풍경이 아니라 역사적 풍경”이라는 구절을 만나면서 고대 도성 연구로 구체화한다. “황무지를 경지로 만들고 골목과 도로와 샛길을 내고 도시를 건설하는 인간의 모든 활동은 자연 경관을 변화시키며, 그렇게 변화되어 우리 눈앞에 펼쳐진 경관의 배후에는 인간의 역사적 활동이 깃들어 있다”는 호스킨스의 지적을 고대 도성에 적용한 것이다. 

거주 환경이 취락에서 도시로 변화하는 모습에서 계층의 분화와 권력의 출현을 보고, 생산력 발달과 생산량 증대에 따라 계층 분화와 권력 집중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도시 간 서열화를 살핀다. 왕의 등장과 함께 도성이라는 공간이 조성되자 궁실과 종묘라는 왕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배타적 공간이 등장했음을 말하고, 사회질서를 위해 공권력과 그 공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 재정이 필요해지자 국가 권력이 뇌옥과 대창고라는 새로운 경관을 만들어냈음을 짚는다.

고층 불탑으로 장식한 현란한 스카이라인의 등장에서는 불교를 매개로 신분질서와 지배체제의 유지를 도모하는 권력의 양상을 이야기하고, 격자형 가로구획의 출현에서는 도성민의 감시와 통제를 통해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서열화를 시각적·형식적으로 명확히 보여주고 도성민이 자신의 신분을 자각해 신분제에 순응하도록 하는 권력의 속성을 들여다본다.

 

저자가 고대 도성을 거닐며 펼쳐 보이는 권력의 풍경은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취락에서 도시로의 전환을 살피며, 왕이 등장하면서 만들어진 도성에서 ‘궁실’과 ‘종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넓은 대지에 큰 집을 짓고 담장을 두른 왕의 집 궁실과 하늘의 자식이 된 왕의 고귀한 핏줄을 기리는 사당 종묘가 도성이 도성일 수 있는 경관상 특징이 되었다는 것이다.

왕의 권력 행사를 위해 무력을 바탕으로 하는 강제력이 필요해지자 출현한 구금시설 이야기도 흥미롭다. 저자는 감옥이 주민 통행량이 가장 많은 사통발달 대로에 설치되었다고 말한다. “교육 효과를 노린 왕의 의도에 따라서이다.” 감옥 같은 공권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돈이 필요해지자 출현한 대창고 이야기에도 눈길이 간다. 공권력 유지에 필요한 국가 재정 창고가 “공권력을 뒷받침할 국가 재정의 출현을 알림과 동시에, 창고의 재분배 기능을 통제한 결과로서 귀족에 대한 왕의 상대적 권력 신장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왕이 스스로 부처가 되어 우러름을 받기 위해 만든 고층 불탑, “물리적으로 공간을 구분함으로써 권력과 비권력, 지배와 피지배를 공간적으로 구분하는 공간의 신분화를 가시화”한 성곽, 도로 정비와 택지 지급 등을 통해 도성민을 감시·통제하고 도성민 스스로가 자신의 신분을 자각함으로써 신분제에 순응하게 만든 격자형 가로구획 등 저자가 살피는 고대 도성의 풍경은 그야말로 ‘권력의 풍경’ 그 자체이다.

저자는 “권력에 의한 도성 경관의 생산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한다. 하지만 사실은 “권력의 운동장을 벗어나 비권력의 역사를 서술”하고 싶다고 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