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전체제의 종언은 가능한가?
상태바
한반도 정전체제의 종언은 가능한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12.16 21: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DMZ의 역사: 한반도 정전체제와 비무장지대 | 한모니까 지음 | 돌베개 | 540쪽

 

‘DMZ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책이다. 한국전쟁과 남북 접경지역의 역사를 중심으로 분단과 냉전, 통일과 평화의 문제에 천착해온 저자가 한반도 정전체제의 성립과 DMZ의 탄생 순간에서부터 1960년대 DMZ 무장화의 과정과 냉전 경관의 형성, DMZ에서의 화해와 체제 경쟁 등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변화를 종합적으로 살핀다.

한반도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멈춘 지는 70년이 되었지만, 정전협정(문서), 비무장지대(공간), 유엔군사령부(행위자)는 3개의 핵심 축으로 기능하며 정전체제를 존속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굳어진 상태에서 어떻게 벗어나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생산적인 남북 간의 논의를 통해 평화(그것이 어떤 형태든)로 향할 수 있을까?

정전체제의 변화 가능성, 즉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이행 가능성은 비무장지대라는 공간과 이 공간을 탄생시킨 정전협정, 또 유엔군사령부의 역사적 변화로부터 찾을 수 있다. 이 셋 모두는 처음의 모습이 아니다. 정전협정문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사문화했다. 비무장지대는 역설적이게도 무장지대화했다. 유엔사의 임무 또한 미묘하게, 하지만 크게 달라져왔다. 이 책은 비무장지대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정전협정이라는 제도와 유엔사라는 행위자의 역사적 변화를 추적하고 실상을 파악하려는 최초의 작업이다. 

1953년 7월 27일 국제연합군 총사령관과 북한군 최고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 사령원이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서명하고 70년이 흘렀다. 정전 이후 70년간, 한반도의 긴장감은 높아졌다 완화되었다 하는 일을 반복해왔다. 국내 정치와 국제 정세의 물결에 따라 DMZ도 성격을 달리해왔다. 이곳은 무장화와 군사충돌의 전장(戰場)이 되었다가도, 남북 사이에 훈풍이 불면 교류와 접촉이 일어나는 만남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평화로 향하는 발걸음은 앞을 향하다 어느 순간 멈추어 퇴보하곤 했다. 지금 우리는 또 다시 반환점에 섰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DMZ라는 공간 또한, 역사의 산물이자 정전협정이라는 제도의 산물이다. 이곳은 멈추어 있거나 고정된 공간이 아니며, 제도를 만든/제도가 낳은 행위자들의 인식에 따라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일 수 있다. 우리가 앞날의 행위자로서 DMZ의 역사를 알고 다음에 올 무언가를 상상해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제1장에서는 비무장지대의 탄생을 살핀다. 시기적으로는 1950년 10월 38선 북진 이후 1950년대 후반까지다. 비무장지대에 관한 첫 발상과 확산, 정전회담에서의 논의와 정전협정 조항 등을 살피고, 정전 이후 제도의 이행과 균열 등을 살핀다.

제2장은 1960년대 비무장지대 무장화의 핵심 내용과 과정, 사건, 그로 인한 경관의 변화 등을 살핀다. 가시화된 철책과 경계초소(Guard Post, GP), 불모지, 비가시화된 땅굴 등을 비무장지대의 핵심적인 냉전 경관으로 주목하고, 형성 과정을 분석한다. ‘경이로운’ 생태의 모습도 ‘군사 생태’(military ecology)의 측면에서 살핀다. 무장화와 사건, 경관의 변화는 남북관계의 차원이 아니라, 베트남전쟁, 한.미 관계, 북.중.소 관계의 변화, 군사와 과학의 결합 등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는 비무장지대 경관 원형의 형성이라 할 수 있다.

제3장에서는 비무장지대의 화해와 체제 경쟁을 살핀다. 시기적으로는 정전 이후부터 1970년대초까지다. 북한, 유엔사, 남한, 중립국감독위원회 등이 처음으로 제안한 평화적 이용 방안들, ‘자유’와 ‘평화’의 경쟁과 실상 등을 다룬다.

생산적인 남북관계 논의는, 평화를 향한 발걸음을 떼는 듯했다가도 어느새 정치 차원의 쟁투와 사회적 거부감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히곤 했다. 남북 사이에 훈풍이 불면 DMZ는 교류와 평화의 장이 되었고, 그러다 북쪽에서 과격한 움직임을 보이면 한반도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군사분계선(MDL)의 경비는 삼엄해지곤 했다.

이런 상황에 종전 논의는 시작하기조차 어려우니 평화로의 이행은 동면하듯 멈춰 있다. 정전체제 다음에 와야 할 것이 평화체제라면, 우리는 어떻게 그러한 미래에 이를 수 있을까? 이럴 때 과거의 역사에서 새로운 미래로 향하는 길을 찾지 않던가. 그렇다면 비무장지대라는 다층적이고 역설적인 공간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한다. 비무장지대(공간), 정전협정(문서/법체계), 유엔군사령부(행위자)는 한반도 정전체제 존속의 핵심 축이며, 정전체제의 변화도 세 가지 축 모두의 변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공간의 경계에서 중심으로, 협정의 객체에서 주체로, 논의의 대상에서 행위자로―이러한 변화는 가능할까?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정전회담이 진행되기 전부터 서방 강대국을 중심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DMZ의 모습은 처음의 구상과 매우 다르다. 정전협정이 ‘규정한’ 모습과도 다르다. DMZ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지만, 행위자들의 인식과 정책이 달라짐에 따라 경관(景觀)은 끊임없이 변화했다. DMZ는 계속 변화해왔다.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다. 미래는 DMZ를 둘러싼 남한, 북한 그리고 유엔사라는 행위자가 어떠한 인식과 정책, 의지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