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으로서의 ‘정의’뿐만 아니라 좋은 삶에 대한 통찰로서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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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으로서의 ‘정의’뿐만 아니라 좋은 삶에 대한 통찰로서의 ‘정의’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12.16 2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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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라는 감정에 대하여: 일상에서 마주하는 내 안의 정의감 발견하기 | 로버트 C. 솔로몬 지음 | 김영미 옮김 | 오도스 | 592쪽

 

이 책은 정의에 관한 책으로 주제는 정의가 익명의 제도들, 시스템들, 정부들의 특징이 아니라, 무엇보다 개인적 관심의 문제이자 개인적 덕목이고, 또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의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나 감수성이라고 말한다. 정의는 우리의 느낌, 의도, 시도의 문제이지, 결과의 문제가 아니다. 저자에 의하면, 정의는 배양되어야 할 감정이지 사회에 부과된 추상적인 원칙이 아니라고 한다. 

흔히 정의라고 하면 추상적이고 멀리 있고, 거대하고, 비인격적인 어떤 이상, 익명의 제도, 시스템, 정부가 갖춰야 하는 원칙, 기준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자는 정의는 개인적 관심의 문제이자 덕목의 문제이고 매일의 일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정의 개념을 추상적인 이상의 개념으로 고양시키고 정의의 실행을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로만 생각하면, 개인의 책임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기존 철학에서 왜곡되고 폄하되어 온 감정을 재평가하면서, 감정에 인식 능력과 판단력, 통찰력이 있으며, 감정은 삶과 이성을 와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삶, 정신의 삶에 있어 중심 요소라고 본다. 그리고 정의는 소크라테스의 통찰과 더불어 시작된 것이 아니라, 기본적 감정의 촉발과 더불어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의를 촉발시키는 기본 감정에 단순히 연민, 공감, 나눔, 관대함, 돌봄의 감정뿐 아니라, 시기, 질투, 분개, 앙갚음 등 소위 부정적인 감정도 포함시킨다.

저자의 정의 논의는 정의를 감정으로 본다는 점 외에도, 인간성과 ‘좋은 삶’에 대한 통찰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그는 우리의 인간성을 이기적이고, 자기 생존에만 관심이 있다거나, 선천적으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공동체에서 떨어져서는 단순한 생존은 물론이고 자기 이익이나 자기만족이 불가능한 사회적 존재이다. 우리는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이라기보다, 애착과 애정, 사회적 정체성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정의하는 사회적 존재이다. 개인의 행복이나 효용은 우정과 공동체 없이는 의미가 없고 정의는 ‘함께하는 행복의 추구’이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좋은 삶을 추구한다고 생각하고 싶어 할지 모르나, 사실은 우리가 함께 그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삶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 정의라고 그는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이런 삶, 이런 정의를 방해하는 것이 우리의 추상적인 거대 이데올로기이고, 자신의 필요와 자격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는 ‘탐욕’이다. 그가 보기에 현대사회에서 탐욕이 문제적인 것은, 그것이 가진 추상성과 만족을 모르는 끝없는 욕망의 성격이다. 그것은 자신의 진정한 욕망, 진정한 필요, 진짜 기대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더 많은 것을 향한 만족을 모르는 의미 없는 욕망이라고 말한다. 탐욕은 목표가 없고, 자제나 만족을 모르기 때문에 영원히 좌절감을 주고, 그렇기 때문에 탐욕을 가진 사람들은 덜 가진 사람에 대해 공감하기 힘들고, 자신들은 냉소주의에 빠지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정의는 자신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와 더불어 시작되고 ‘추상적인 탐욕’을 제거하는 것이 그 첫 목표 중 하나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점에서 우리 대부분의 경우는, 정의의 반대는 불의라기보다 탐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불공평한 문제들이 산재해 있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정의에 따라 우리가 품고 기대하는 세상의 간극에서 오는 실망을 피하고자 과도하게 이론을 추상화하거나, 현실을 합리화하고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조금씩 작은 변화들을 추구하면서 작은 정의들을 추구해야 하며, 구체적인 잘못과 부정의를 바로잡거나, 혹은 적어도 조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우리가 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저자에 의하면 세계의 변화는 새로운 이론, 새로운 이데올로기, 새로운 합리화가 아니라, “관대함에서 나오는 한 작은 행동이 연이어 나와 수천만의 행동으로 쌓여 진정한 세계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일어나야 한다. 결국 이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정의를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정의를 단념하거나 외면하거나 합리화하면서 타인의 존재 상황과 고통에 대해 무감하고 자신의 성공, 명예, 칭찬만을 끝도 없이 축적하려고 하는 것은 결코 잘 사는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정의로운 것, 다른 사람의 행복을 염려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만큼이나 잘 사는 삶의 일부이다. 그리하여 정의는 우리 자아의 본질적인 일부이면서, 우리가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감수성이고 오직 행함으로써 키워지는 감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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