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전쟁에 대한 생물학적 고찰
상태바
인류의 전쟁에 대한 생물학적 고찰
  •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 승인 2023.12.16 15: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환규 교수의 〈과학에세이〉

 

인류는 서로 사랑하고 또 미워하는 종이다. 인류학자인 퍼거슨(R. B. Ferguson)의 주장에 따르면, 전쟁은 인류의 본성이 아니나 그것이 전쟁을 회피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인류가 벽화나 돌에 기록한 자료를 조사해보면 전쟁은 낯익은 이야기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이 인류의 본성적 부분이라는 생각에 익숙해 있다. 인류 본성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는가? 초기 인류의 수렵-채집사회 규모가 커지고 사회적 환경이 복잡해지고, 정착 농업이 일반화되면서 살상 집단이 출현하였다. 인류는 전쟁을 행하려는 호전적 매파도 있고, 평화를 지키려고 무장을 하기도 한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라는 동서양을 관통하는 금언이 있다.

인류는 다른 집단의 구성원들을 죽이려는 유전적 소인을 갖도록 진화되어 왔을까? 인류는 개인적인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나 살인은 전쟁이 아니다. 전쟁은 조직화된 집단이 다른 집단의 구성원들을 죽이는 사회적 행위이다. 전쟁은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유전적 소인에서 진화되었다는 관점과, 집단적 살해에 필요한 동기와 조직화 등 사회적 조건에 의해 출현한다는 관점이 있다. 전쟁의 기원에 관한 연구에서 고고학자들은 동굴의 벽화와 조각에서 최초의 흔적을 찾았다. 프랑스 해저동굴인 구석기 시대의 코스케 동굴은 기원전 약 27,000년의 것으로, 벽화에 인체를 관통하는 창 모양이 그려져 있어 인류가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 전쟁을 행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고고학자인 르블랑(S.A. LeBlanc)에 의하면, 고대인들 사망 원인의 25%가 전쟁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전쟁은 배우자와 자원을 얻기 위한 최적자 우세에서 자연선택의 기작으로 작용한다.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다. 전쟁이 인류의 본성이 아니라면 전쟁의 근원은 어디일까? 전쟁은 인류 집단이 치르는 약탈과 살육 행위이나, 인류의 본성은 집단이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 발현된다. 행동적 기제와 난폭한 지도자가 집단과 연관되어 있지 않는 한 대부분의 인류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전쟁 자체는 구성원 개체의 본성 때문이 아니라 집단적 전쟁 잠재력에 의해 일어난다. 다윈의 업적이 신기원을 이루었던 19세기 후반은 생존에 대한 투쟁이 강조된 시기로, 일부 인종은 다른 인종에 비해 우월하며 우월한 인종들이 하위의 인종들을 정복하려 한다는 편협한 사고가 있었으며, 초기 심리학자들 역시 인류의 본성 중의 하나가 호전성이라는 생각으로 전쟁의 발발 원인을 인류의 본성에서 찾았다. 

현재의 다수 견해는 인류가 선천적으로 폭력적이고 호전적이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소수의 비인류 영장류 종에서 관찰된 행동으로부터 인류의 폭력적 본성을 논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동아프리카 사바나의 바분은 예측할 수 없이 공격적이고 폭력적으로 변신한다. 구달(J. Goodall)은 침팬지에 대한 연구를 통해, 침팬지 역시 인류의 전쟁 같은 습격 활동을 포함한 집단 간의 폭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에는 호모 사피엔스가 바분 또는 침팬지 종으로부터 진화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더구나, 산고릴라와 서부고릴라를 포함한 일부 비인류 영장류는 비폭력적이다. 인류 종은 특정 환경에서 폭력을 선호하는 자연선택으로 장착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식량, 배우자, 거주 영역 같은 자원에 대한 경쟁이 포함된다.

 

선사시대부터 고대까지 인류에게 폭력과 전쟁은 영역과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을 넘어 일상과 같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일부 전체주의 국가와 전쟁이 진행되는 지역에서 또 다른 폭력인 고문이 흔히 자행된다. 현대 문명사회의 윤리 규범이나 국제법은 고문을 비열한 행위로 간주한다. 1971년에 스탠퍼드 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인 짐바르도(P.G. Zimbardo) 그룹은 인간성 말살에 관한 연구(스탠퍼드 교도소 실험)를 진행하였는데, 자원자인 피시험자를 모의 교도소에 수감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조사하였다. 

연구진은 모의 교도소에서 피시험자와 교도관의 자아를 박탈하는 행위를 지속하였다. 이 실험에서 교도관들은 이라크 전쟁 중 고문이 일상적으로 행해진 아부 그라이브(Abu Ghraib) 교도소의 군사경찰과 유사하게 행동했는데, 반복적으로 수감자에 대해 알몸 검사를 했고, 머리에 후드를 씌우고 사슬로 묶었으며, 음식 제공을 중단하거나 잠을 재우지 않고 독방에 감금하였고, 수감자 상호간의 성적학대를 강요하였다. 

실험 진행에 따라 공적 권력인 교도관과 수감자 사이에 말투, 감정과 행동의 변화가 나타났는데, 교도관은 폭력적이고 가학적으로, 수감자는 수동적으로 변하였다. 짐바르도 자신도 애초 실험 목적을 망각하고 자신이 진짜 교도소장이 되어 있었다고 후에 고백했다. 이 실험은 선을 유지할 수 없는 환경에서는 평범한 인류도 악에 빠질 수 있으며, 그 악을 통제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쾨슬러(A. Koestler)의 견해에 따르면, 인류의 잔인한 파괴성은 자기-확신에서가 아니라 종들의 통합적 전쟁 잠재력에서 유래하고, 전쟁 동안의 잔학행위는 집단 충성심과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행해진다. 그에 의하면, 살인은 자아-확신으로 전쟁은 자아-초월 동기로 발발한다. 전쟁이 인류 본성에 스며있다는 어떠한 과학적 증거도 없다. 퍼거슨에 의하면 인류는 개인적인 이유로 싸우고 살인도 하나, 살인 행위는 전쟁이 아니다. 일부 학자는 인류가 공격적이고 잔인하며 피에 굶주린 종으로, 이런 본성은 DNA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나,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서 인류가 전쟁을 좋아한다는 실체적 진실 또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개인 사이의 폭력은 뇌의 변연계 부위에서의 출력과 특이적 호르몬 분비를 포함한 신경생물학적 지표와 연관되어 있지만, 전쟁은 정교한 인식 과정, 세밀한 계획과 사회적 협동을 필요로 한다. 자연선택이 개인의 폭력을 유도하는 기작을 장착시켰다는 상당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적 유산이 전쟁의 원인이라는 증거는 없다. 그와 반대로, 전쟁은 최소 10,000년부터 인류의 목록에 등장하는 문화적 축적 또는 농업의 시작을 포함한 여러 요인의 결과이다. 정착 농업으로 인해 자원의 축적이 일어나 사회적 계층 구조가 형성되었고, 집단 내에서 자원을 훔치거나 지키려는 일들이 일어났으며, 그로 인해 효과적인 교신, 조정과 살해 기술이 증가하였다. 그러나 인류의 폭력 행위가 증가할 때조차도 이타주의, 연민과 학습에 필요한 많은 사회적 공조, 도구 제작, 집짓기, 동물 사육과 식량 저장 시스템을 포함한 건설적인 사회활동이 촉진되었다.

하버드 대학교의 랭엄(R. Wrangham)은 인류 진화 과정에서 공격적인 남성이 권력을 차지하고, 궁극적으로 생식성공을 성취한다고 주장하였다. 랭엄에 의하면, 소규모 집단에서 수컷 침팬지들의 살의적 공격은 이웃 사회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권을 증가시켜 식량 및 암컷 배우자에 대한 접근 능력을 향상시킨다. 조상 인류는 다른 집단 경쟁자들을 살해함으로써 지배권을 세웠으며 결국 더욱 큰 생식성공을 확보하였는데, 이것은 전쟁 행위가 본성이 아니라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사진 출처: pxhere.com

고고학 및 현대 기록에 의하면, 호주 마르트 지역의 70개 부족 사회에서는 전쟁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으며, 말레이시아의 세마이 지역에서는 구성원들이 싸움에 직면하면 숲으로 도망치면 되기 때문에 싸움, 또는 전쟁이라는 단어가 없다. 랭엄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집단생활 하는 영장류가 얻는 주된 이익은 자원의 확보와 안정적인 서식 환경의 구축, 교미 기회의 확대와 포식자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이점 등으로 결국 생식성공의 향상이다. 행동생태학 차원에서 침략은 동물의 생식성공에 필수적인 자원의 획득과 방어 기작이다. 집단 사이에서의 우세는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생식성공을 제공하므로, 개체는 집단 간의 경쟁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려는 동기를 갖게 된다.

다윈은 종의 기원(1859)과 인류의 계보(1871)를 통해 자연선택이 진화의 기작이라는 논리를 세워 인류의 본성에 대한 논의를 철학적 공론 영역에서 경험적 연구 영역으로 변화시켰다. 다윈에 의하면, 전쟁은 인류 본성 진화의 중요 인자로 ‘야만의 끝없는 전쟁’이 협동 의지와 무기 개발에 선택압으로 작용한다. 진화인류학자들 역시 자연선택은 집단 또는 개체보다 유전자 수준에서 작용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진화에 대한 유전자의 눈 관점은 왜 생물은 노화하고 죽는가, 협력은 왜 주로 친족 간에 일어나는가, 대다수의 생물이 비용과 포식 위험에도 유성생식을 통해 생식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을 이끌었다. 

이 새로운 생물학에서 핵심적인 이론적 도구는, 동물이 물리적 폭력보다는 과시를 포함한 경연 같은 공격성을 이용한다는 것으로 윌슨(E.O. Wilson)의 사회생물학과 도킨스(R. Dawkins)의 이기적인 유전자의 출판을 계기로 관심을 끌었다. 행동생태학과 진화심리학적 접근은 현대 인류의 심리가 진화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가정을 공유하나, 인류의 행동은 유전적 적응뿐만 아니라 문화적 적응에도 의존한다.

비인류 영장류는 대부분 안정적인 집단생활을 영위한다. 많은 영장류 종은 큰 소리를 질러 영역 지배권을 주장하여 경쟁자들을 배척한다. 집단 간 살해는 수컷이 교미 상대를 탐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영아살해와, 다른 집단의 암컷을 차지하려 할 경우에만 일어난다.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전쟁은 유별난 행동으로 소수의 동물은 자신 종의 구성원을 의도적으로 살해한다. 공통의 진화적 조상을 갖는 침팬지와 인류는, 드물지만 끔찍하게 이웃 집단을 공격하는 성향이 있다. 

인류 집단의 전쟁은 정치, 종교와 환경적 요인을 갖고 있다. 전쟁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오래된 신념에 반하여, 체계적 학살이 따르는 행동은 집단공격이라는 행동적 성향의 진화에 근원이 있다. 집단에 대한 충성심 및 적들에 대한 공감 상실과 적대감에 의해 집단공격이 일어나며, 이것이 전쟁과 테러의 핵심이다. 이러한 소인은 약 700만 년 전의 인류의 원숭이 조상 초기의 생존 싸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의 인류도 다른 해결책이 있을 때조차도 치명적인 전쟁을 치르는 행동과 성향에 이 유산의 기호가 씌워져 있다. 현재의 인류는 자원, 영역과 배우자를 차지하려는 자연선택을 통한 권력투쟁 승자의 후손이다.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전북대 생명과학과 교수. 전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교환교수, 전북대 자연과학대 학장과 교양교육원장, 자연사박물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생물학 오디세이』, 『생명과학의 연금술』, 『산업미생물학』(공저), 『Starr 생명과학: 생명의 통일성과 다양성』(역서)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