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베르나노스와 가톨릭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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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베르나노스와 가톨릭의 위기
  •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문학
  • 승인 2023.12.1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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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프랑스의 역사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엠마뉴엘 토드는 프랑스를 가톨릭 프랑스와 비종교적인 프랑스, 둘로 나누었다. 첫 번째 프랑스는 18세기 중엽부터 이미 교회를 버렸고 두 번째 프랑스는 1960년경까지 교회에 충실했지만 서로 분리되어 무신앙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성모 마리아의 프랑스와 공화국의 상징인 마리안의 프랑스가 위태롭게 그리고 이상한 동거를 계속하다가 마침내 결별을 넘어 무신앙으로 빠져들었고, 이는 종교적, 정치적 위기로 이어지고 나아가 인종주의로 나타났다고 진단한다. 

무신앙과 종교적, 인종적 혐오가 극단화된 오늘날의 프랑스에서 작가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작품활동을 한 20세기 초의 종교적 위기는 무엇이었고 무엇이 신앙의 붕괴를 촉발했으며 그러한 위기 속에서 작가가 ‘불신앙’과 ‘악’에 맞서기 위해 어떤 신앙적 노력을 했는지 소설을 통해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베르나노스가 태어나 활동하고 작품을 쓴 시기인 20세기 초중반은 가톨릭 프랑스의 위기가 1960년대를 거처 붕괴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Journal d'un curé de campagne』(민음사, 2009)는 프랑스 최북단 파 드 칼레 지방의 소도시 앙브리쿠르 본당의 신부가 기술하는 ‘일기’와 동료 신부와의 대화, 성관(城館) 사람들인 백작과 그의 부인, 딸과 가정교사 사이의 악의 문제에 대한 천착, 절망과 상실, 파탄의 위기에 몰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사제의 ‘우주적 싸움’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이다. 

베르나노스가 소설에서 ‘일기’라는 기술 방식을 쓴 것은 젊고 순수한 사제를 통해 “모든 것이 은총”이라는 신앙고백을 끌어내기에 고백의 형식이 가장 적합한 시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배경인 앙브리쿠르 지역은 특별한 개성을 지닌 지리적 공간이 아니며, 사제에게는 “마을의 고독과 나의 고독이” 만나는 폐쇄된 섬과 같은 장소로 기술되는데 사제가 절망과 권태, 신앙의 위기를 경험하고 나아가 종교적 소명 의식을 완성하기 위해 주어진 하나의 실험실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Georges Bernanos (born Feb. 20, 1888, Paris—died July 5, 1948, Neuilly-sur-Seine, Fr.)

시골 마을에 부임한 사제는 주민들의 신앙적 태도에 대해 “그들에게 있어 교회란 실현에 가야 할 어떤 이상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이며 그들은 그 안에 안주해 있는 것이다”라고 파악한다. 파리 분지 지역에 비해 가톨릭 신앙에 충성심이 높았던 파 드 칼레 지방의 시골에서조차 20세기 초에 이르러 신앙은 관습적 믿음에 불과하다는 진단을 신부 스스로 내리고 있다. 이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교회의 영향력은 이미 붕괴하기 시작했고 프랑스는 “신앙과 풍속에 있어서 불신의 나라가 되었다”라는 토드의 진단과도 다르지 않다. 

베르나노스는 불신앙과 방탕, 불신, 가톨릭 가정의 해체라는 당대의 종교적 상황을 성관 사람들로 대표되는 한 가정에 집중하여 보여주려 한다. 본당 신부가 세상의 불신앙과 비기독교화, 교만과 신에 대한 부정에 맞서 최후의 영적 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신을 부정하는 백작 부인과의 대화에 집약되어 나타난다. 본당 신부의 이와 같은 ‘영적 투쟁’은 선한 목자로서 길 잃은 양을 구하기 위한 종교적 소명 의식의 발현이지만 교회와 종교의 위기가 가속화되는 시대에 세상의 악과 불신앙에 맞서기 위한 투쟁이기도 했다. 반교권주의와 무신론, 무신앙에 맞서 성서적 이상을 구현하려는 신부가 죄악에 빠져있고 고통 속에 놓여 있는 영혼의 구원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대속(代贖)에 다름 아닌 죽음밖에 없을 것이다.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는 대혁명 이후 가톨릭교회의 위기와 불신앙을 넘어 무신앙이 심화되고 나아가 가정의 소멸로 이어지는 ‘종교의 위기’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태어났다. 종교의 위기는 프랑스에서 비단 가톨릭교회 내부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위기와 사회적 구심점의 상실로 이어졌다. 엠마뉴엘 토드는 가톨릭의 마지막 위기는 1960년대 이후 서구 세계 전체에 큰 타격을 입혔는데, 이는 테러리즘과 외국인 혐오증, 극우적 민족주의의 성장, 극단적인 종교적 갈등의 심화로 나타났다고 진단한다. 마리안과 성모 마리아의 위태로운 동거가 끝나고 유일신에서 단일 통화인 유로가 주인이 된 오늘날의 프랑스에서 베르나노스의 작품과 앙브리쿠르 신부의 헌신은 어떤 의미를 지닐지 생각해보게 된다. 

다만 독자가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를 읽으며 ‘비가시적인 세계’에만 집중하여 신앙과 종교적 이상의 구현만을 찾으려 한다면 작가가 소설을 통해 보여주는 상징적인 묘사와 그 깊이, 정신의 깊이를 드러내는 성찰, 밀도 있고 긴박한 대화 등으로 나타나는 그의 문학적 재능과 자산을 놓치게 될 것이다.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문학

건양대학교 휴머니티칼리지 교수. 서울대 대학원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양대 휴머니티칼리지 브리꼴레르 학부 학부장과 박범신 문학콘텐츠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란 무엇인가』, 『투르니에 소설의 사실과 신화』가 있고, 번역한 책으로 『살로메』, 『춤추는 휠체어』, 『까미유의 동물 블로그』,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 『칸트 교수의 정신없는 하루-칸트 편』, 『데카르트의 사악한 정령-데카르트 편』, 『녹색 광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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