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처에 존재하는 폭력, 당신도 그 예외일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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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 존재하는 폭력, 당신도 그 예외일 수 없기에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12.09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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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 변광배 지음 | 세창출판사 | 424쪽

 

폭력은 도처에 있다. ‘남의 신체를 물리적으로 훼손하는 힘.’ 사전이 정의하는 폭력의 의미 너머로 그 외연이 확장되고 있는 오늘날을 감안하면 폭력이 자리하지 않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 둘만이 존재하는 은밀한 곳에서 벌어지는 데이트 폭력이나 은연하고 비밀하게 상대의 의식을 잠식해 가는 가스라이팅까지. 폭력의 부피가 커진 만큼 우리의 문제의식이 가닿는 곳도 넓어져야 한다.

폭력은 차이로부터 시작되고, 차이란 공포이자 어김없는 불안의 요소이다. 괄시와 수군거림. 물리적 힘만이 폭력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므로 폭력을 흔하디흔한 기삿거리 하나쯤으로 치부하고 말기에는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당신이 둔감한 축에 속한다면 은폐된 형태를 띤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도 멋모른 채 가해자들 틈바구니에서 거짓행복을 누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가 되어 누군가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었는데도 마냥 껄껄거리고 있다거나. 폭력은 도처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게 자리한 곳이 내가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11명의 현대 사상가를 선정하여, 저마다의 폭력론을 이들 주요 저작을 중심으로 살핀다. 벤야민을 한 축으로 하여 아감벤, 데리다, 지젝을 다루고, 사르트르와 파농, 사르트르와 아렌트를 다루는 등 그 맥락이 닿는 것끼리 묶어 낯선 개념들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상에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 이론’에 따르면 주체는 중개자를 통해 대상을 욕망한다. 유명세를 지닌 연예인이 상품 가치에 영향을 주는 경우로 보자면 연예인이 중개자가, 상품이 대상이 되는 식이다. 그러니까 주체는 연예인을 통해 상품을 욕망한다. 그런데 중개자와 주체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차이(질서)에 소멸이 생긴다. 서로의 사이가 두터울수록 동일한 목표를 놓고 벌이는 경쟁은 다툼으로 변모하기 십상이다. 둘은 짝패 관계가 되고 이 대목에서 폭력이 발생한다. 폭력에 깃든 모방 특성 때문에 여기저기서 폭력이 들끓자 공동체는 위험에 빠지고 희생양(scapegoat)이 필요해진다. 

여기에는 공동체에 속하면서도 완전히 속하지는 않은 경계적, 주변적 존재, 복수나 발설의 위험이 없는 약자가 마침맞다. 약자는 희생되고 집단 내 긴장은 완화되며 희생된 약자는 성화(聖化)된다. 그리고 이것은 반복된다. 이는 여러 신화 텍스트에서 드러나는 희생양 메커니즘이다. 이와 비슷한 듯 보이면서도 명확히 구분되고, 폭력의 해결책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 성경이며 예수의 수난이다. 이 책 1강에서 만나볼 수 있다.

1강 르네 지라르의 폭력론에서는 모방 욕망과 욕망의 삼각형 개념을 비롯해 차이의 소멸이 어떻게 희생양 매커니즘와 연결되는지, 신화 속 희생양 메커니즘이 성경 속 예수의 희생과 어떻게 다른지를 규명한다. 2강 사르트르의 폭력론에서는 『존재와 무』를 통해 서로를 객체화시키는 시선 투쟁을, 『변증법적 이성비판』으로 실천적-타성태가 집렬체, 융화집단을 거쳐 어떻게 서약집단,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지를 밝힌다. 3강 파농의 폭력론에서는 파농이 제시한 기존폭력의 세 가지 층위를 비롯해 대항폭력에 의해 이루어질 탈식민지화된 세계를 짚어 보고, 파농의 폭력론과 사르트르의 폭력론의 공통점 및 차이점을 살펴 본다. 

4강 한나 아렌트의 폭력론에서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바탕으로 총체적 지배, 잉여존재, 폭민 개념 및 권력의 대립항으로서의 폭력 개념을 알아본 뒤 폭력을 긍정한 파농, 소렐, 사르트르 등을 향한 아렌트의 비판을 짚어 본다. 5강 소렐의 폭력론에서는 소렐이 생각한 폭력의 의미와 총파업의 신화를, 6강 벤야민의 폭력론에서는 신적 폭력과 신화적 폭력, 법정립적 폭력과 법보존적 폭력의 특징을 살펴본다. 7강 데리다의 폭력론에서는 그의 저작 『법의 힘』을 살펴보고, 벤야민의 신적 폭력 개념을 해체하는 데리다의 비판에 주목한다. 

8강 아감벤의 폭력론에서는 예외 상태와 호모사케르 개념을 알아본다, 9강 지젝의 폭력론에서는 주관적 폭력과 객관적 폭력, 객관적 폭력 내 시스템적 폭력과 상징적 폭력을 살피고 폭력에 대한 지젝 나름의 대안을 밝힌다. 10강 갈퉁의 폭력론에서는 갈퉁의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에 대해 짚어 보고, 직접적 폭력, 구조적 폭력, 문화적 폭력을 살핀다. 마지막으로 11강 한병철의 폭력론에서는 그의 긍정성의 폭력과 시스템적 폭력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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