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특별한 잔인함’과 ‘희소한 이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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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본성의 ‘특별한 잔인함’과 ‘희소한 이타성’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12.09 2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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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동: 인간의 최선의 행동과 최악의 행동에 관한 모든 것 |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1,040쪽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질문은 “왜 인간은 서로에게 때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게 굴고, 또 때로는 더할 나위 없이 너그러워지는가?”라는 것이다. 우리 본성의 ‘특별한 잔인함’과 ‘희소한 이타성’, 그 양면성에 대한 답을 추적하고자 하는 저자는 신경생물학부터 뇌과학, 유전학은 물론 사회생물학과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 분야를 넘나들며 최첨단 연구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종합해 살펴본다. 그리고 그 이해를 기반으로 삼아, 인간사회의 부족주의와 외국인 혐오, 위계와 경쟁, 도덕성과 자유의지, 전쟁과 평화에 관한 가장 심오하고도 모순적인 질문들에 답한다. 

우리는 대체 왜 ‘그 행동’을 할까? 저자는 이 질문을 다각도로 살펴보며, 모든 학문의 영역을 허물고 흥미로울 뿐 아니라 설득력 있는 내적 논리에 따르는 구성을 선보인다. 우선 누군가의 어떤 행동이 벌어진 그 순간에 그 사람의 반응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을 알아본 뒤, 그 시점으로부터 조금씩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1초 전, 몇 시간 전, 며칠 전을 거쳐 수정란이던 시기까지) 끝내 우리 종의 오랜 진화 역사가 남긴 유산까지 살펴보는 구성이다.

총 17장 중 1~10장에 해당하는 책의 전반부는 기존 연구의 학제 간 경계를 뛰어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뉴런과 호르몬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감정이 의사결정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이유는 무엇인가’ ‘청소년이 성인보다 더 폭력적이기 쉬운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유전자와 문화는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가’ 등 뇌, 유전자, 호르몬, 유년기, 문화적 환경, 진화, 생태계 등이 우리의 공격성과 폭력성, 경쟁심, 협력, 이타심, 공감, 소속감 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본다.

11~17장에 이르는 책의 후반부는 전반부에서 살펴본 내용을 종합하여, 그 내용이 가장 중요하게 적용되는 인간 행동의 영역들을 살펴보는 단계다. 먼저 저자는 ‘우리 대 그들의 이분법은 어떤 현상인가’를 속속들이 살핀다.

책에 따르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리고 세상에는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 더 많다. 우리는 누구나 부족적인 ‘우리’ 집단을 형성하여 외부인을 그보다 못한 ‘그들’로 취급하는 성향을 품고 있다. 이에 저자 새폴스키는 묻는다. 우리/그들 이분법을 형성한 뒤 그중 전자를 선호하는 성향은 보편적일까? 인간의 파벌성과 이방인 혐오에 과연 이를 넘어설 희망이 있을까?

저자에 따르면, 이런 우리/그들 가르기의 악영향을 줄이기 위해서 우리가 살펴야 할 목록은 다음과 같다. 개체화와 공통 특징을 강조할 것, 관점 취하기, 좀더 무해한 이분법으로 전환하기, 위계 차이를 줄이기, 모두에게 동등한 조건에서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는 작업에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그리고 그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맥락이다. 저자는 말한다. “유전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묻는 것은 적절치 않고, 그 유전자가 조사된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물을 수 있을 뿐이다”라고.

나아가 책은 증오의 행동에서 사랑의 행동까지, 타인을 비인간화하려는 충동에서 재인간화할 줄 아는 능력까지 조명하고, 내처 제1차 세계대전의 ‘공존공영’ 정전 사건과 미라이학살까지 이야기를 이어간다. 특히 미라이학살과 관련된 이야기는 우리가 그 무수한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선의’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적 증거를 보여준다.

베트남전이 진행 중이던 1968년 3월 16일, 한 미군 중대가 윌리엄 캘리 주니어 소위의 명령에 따라 미라이라는 마을에서 비무장 민간인을 공격했다. 그들은 아기와 노인도 포함하여 비무장 민간인 350~500명을 죽였으며, 시체를 훼손하고 우물에 처박았다. 그리고 이 끔찍한 학살을 멈춘 사람이 있었다. 앞장선 사람은 25세의 휴 톰프슨 주니어 준위였다. 베트콩과 싸우는 보병을 도울 생각으로 미라이 마을로 날아간 톰프슨은 한 벙커에 옹송그리며 모여 있는 여자들, 아이들, 남자 노인들에게 미군들이 공격 태세로 다가가는 걸 보았다.

그 순간, 그는 어질어질할 만큼 강인하고 용감한 행동을 했다. 우리/그들 범주화의 이야기를 한순간에 몽땅 바꿔놓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 휴 톰프슨은 마을 사람들과 군인들 사이에 헬리콥터를 착륙시키고, 기관총을 제 동료 미국인들에게로 향했다. 그로부터 20년이 더 지난 뒤 톰프슨은 그 미군 병사들에 대한 감정을 “그건, 그러니까 그 순간에는 그들이 내게 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그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그들은 적이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저자 새폴스키는 말한다.

“우리는 한 개인이 충동적 행동으로 20개국의 역사를 바꿔놓는 걸 보았다. 한 개인이 수십 년 묵은 미움을 극복하여 화해의 촉매가 되는 걸 보았다. 옳은 일을 해내기 위해서, 그동안 훈련으로 습득한 반사반응을 철저히 억누른 사람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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