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층을 착취하는 미국 부유층의 민낯
상태바
빈곤층을 착취하는 미국 부유층의 민낯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12.09 23: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미국이 만든 가난: 가장 부유한 국가에 존재하는 빈곤의 진실 | 매슈 데즈먼드 지음 | 조문영 해제 | 성원 옮김 | arte(아르테) | 416쪽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은 왜 다른 선진 민주주의국가보다 빈곤율이 더 높을까? 왜 미국인 중에는 기초 필수품도 없이 생활하는 사람이 그토록 많으며, 왜 그들을 빈곤의 고난에 살도록 계속 내버려두는 것일까? 이 책에서 저자는 풍요의 나라 미국이, 그 안에서 살아가는 미국인들이 고의로든(그들을 “착취”함으로써) 혹은 무의식적으로든(우리가 받는 “혜택을 외면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신랄하게 보여준다.

저자의 주장은 간결하고 명료하며 각종 데이터에 기반한다. 가난한 사람들 삶 속에 들어가 얻은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과학 연구들을 결합해 빈곤 문제의 민낯을 직시한다. 노동, 주택(주거), 금융, 복지 분야를 축으로 빈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를 입히는지, 부유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익을 안기는지, 이 두 갈래로 나뉜 시스템은 어떻게 공고히 발전되어 왔는지”를 정밀하게 탐사한다.

저자는 말한다. “빈곤은 의회와 기업이 취하는 조치의 결과이기만 한 게 아니라 우리가 각자의 일을 할 때 매일 내리는 결정들 수백만 가지가 누적된 결과”라고. 이에 조문영 해제자도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가난을 만들고 온존하는 책임이 우리 모두한테 있다면, 가난을 종식할 해법의 가짓수도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데즈먼드가 내놓는 해결책은 세세하고 다양하다.”

문화기술지 연구자로서 저자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 가까이에서 빈곤을 살핀다. 미국의 빈곤율은 지난 50년간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동안 빈곤은 왜 줄지 않았을까?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보수주의자들의 복지정책 때문일까? 아니다. 저자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정부 원조가 그들에게 가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최대 규모의 정부 보조금은 가난에서 헤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가족들에게 가는 게 아니라, “잘사는 가족들을 계속 잘살게 만드는 쪽으로” 흘러들어 간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자원은 적어진다. 저자는 “그것이 우리의 설계이고 우리의 사회계약이라면 최소한 그렇다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며, “가난한 이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당신들을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럴 여력이 없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건 거짓말이니까”라며 분노한다.

저자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요인을 크게 세 가지, 노동, 주택, 금융 부문으로 나눠 지적한다. 첫째, 노동자를 싸게 부려 먹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짚는다. 둘째, 미국의 주택시장과 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비용을 치르도록 강요한다. 저자는 슬럼을 착취해 온 미국의 역사를 환기하며, 임대주택 시장의 모순을 지적한다. 셋째, 가난한 흑인 동네에 금융 착취가 일상화되었음을 지적한다. 

저자의 지적은 통렬하다. “우리가 이렇게 잘사는 데도 불구하고 이 땅에 그 많은 가난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잘살기 때문에 바로 가난이 사라지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아니다. 우리다.”

저자는 빈곤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손쉬운 방법으로 저소득층이 기존의 수급 자격이 있는 원조를 더욱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가난을 종식시키기 위한 재원으로 불량 납세자들에게 세금을 걷어 사회안전망의 균형을 바로잡는 것이다. 가난을 종식시키기 위해 부자들이 회피한 세금을 걷고, 이를 사회복지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저자는 요구한다. 더불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노동착취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증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노동자들이 노조 활동을 손쉽게 펼칠 수 있는 계약을 새롭게 맺어야 한다고 일갈한다.

가장 필요한 조치는 “담장”을 허무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동네에 적정가격 주택단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현대판 인종 분리주의자”를 막을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배타적인 용도지역 정책을 포용적인 조례로 바꿔서 담장을 허물고 그 잔해들로 다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조문영 해제자가 짚었듯 “젊은 여성이 실업급여로 샤넬 선글라스를 샀다고 담당 공무원이 걱정하고, 기초생활수급자 아동이 감히 돈가스를 사 먹었다고 손님이 민원을 넣고, 언론이 외국인의 ‘건강보험쇼핑’ 기사를 쏟아 내는 사회에서는 ‘내 세금을 뺏겼다’는 피해의식만 들끓는” 현 한국 사회에도 저자의 통렬한 주장은 매우 효과적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확대하는 건 사회주의와 독재로 이어지는 파멸 행위”인가? 이런 선동이 계속 되풀이되는 것은 설득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의 삶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서로 맞물려 있다는 뼈아픈 진실을 외면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데즈먼드의 지적은 비단 미국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부와 빈곤에 관한 논쟁에서도 생각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