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김대중도서관, 1983년 2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과의 편지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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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김대중도서관, 1983년 2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과의 편지 공개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12.0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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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24일 (키신저 방한)<br>
2005년 3월 24일 (키신저 방한)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은 지난 11월 29일 타계한 미국 외교의 거목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김대중 대통령이 1983년 2월에 주고받은 특별한 편지를 공개했다. 

헨리 키신저는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에서 미국 정부의 구명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 김대중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두 인물은 김대중의 2차 미국 망명 시절에 처음 만나 2007년 김대중의 미국방문까지 10여 차례 이상의 만남을 가졌으며, 2005년 3월 4일에 키신저가 방한했을 당시에는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해 김대중과 환담을 나눴다.

이번에 공개된 편지는 김대중과 키신저의 인연이 시작된 배경을 알려주는 매우 가치 있는 사료이다.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에서 망명 투쟁 중이던 김대중이 한국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됐다. 생사의 기로에 있던 김대중은 미국의 개입으로 목숨을 구한 후에 동교동 자택으로 생환할 수 있었다.

이때 키신저는 닉슨 대통령의 국가안보담당특별보좌관으로서 김대중의 구명활동에 관여했다. 김대중납치사건 당시 납치 범행 순간이 외부에 노출되면서 일본과 미국 정부는 사건 발생 약 1시간 뒤에 이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주한미국 대사 하비브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기민하게 행동했고, 미국 국무부의 도널드 레너드 한국과장 또한 움직였다. 

키신저는 사건 발생 소식을 미국정부 공식라인을 통해 확인했을 것이며, 하버드대학 재직 당시의 인연으로 알고 있던 김대중의 미국 내 후원자인 에드윈 라이샤워 하버드대 교수, 제롬 코헨 하버드대 교수 등이 직접 김대중 구명을 요청해 이 사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미국 정부는 8월 8일 12시 30분에 ‘미국은 김대중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으며, 김대중이 안전하게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미국의 빠른 대응 덕분에 큰 배에 실려 수장(水葬)의 공포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던 김대중은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1973년 8월 8일 납치사건 당시 김대중 구명에는 미국 정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으며, 키신저의 역할도 컸다. 김대중은 이 점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1980년 김대중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키신저는 민간인 신분이었음에도 외교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김대중 구명에 참여했다.

이는 키신저가 한반도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국제적 시각을 지닌 김대중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키신저의 지지는 김대중의 햇볕정책이 미국 내에서 지지를 받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번에 공개된 특별한 편지는 김대중의 미국과의 교류 및 외교활동에 대한 중요한 증거로, 한국의 국익 증진을 위해서 노력한 김대중의 외교에 대한 자세와 능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서신1: 김대중 to 키신저 1983.02.15

【김대중이 키신저에게 보낸 편지 1】

1983년 2월 15일

존경하는 헨리 키신저 박사님께

박사님께서 아시는 것처럼, 저는 형집행정지 기간 중인 이번 크리스마스에 저희 가족과 함께 워싱턴 D.C에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상황에서 저희 가족의 생활이 안정되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제 삶의 가장 힘든 시기에 저를 대신해서 당신이 많은 노력을 해주신 것에 대해서 저는 지체없이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박사님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활동이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리며 이는 제게 큰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박사님께서 1973년 8월 주한 미국대사관에 제가 대사관으로 망명을 원한다면 저를 보호하라고 지시했다는 1974년 일본 언론 보도를 봤습니다. 당시에 이미 한미관계에 있어 긴장이 조성되어 있었지만 박사님께서 이러한 조치를 주도적으로 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다시 체포된 1980년 5월 이후, 특히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제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박사님께서 저의 안위에 대해서 깊은 우려를 하시고 저에 대해서 강력한 지지를 해주신 덕분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동안 박사님께서는 저를 강하게 지지해 주셨으며 저는 이것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박사님을 뵙고 직접 감사인사를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진심을 담아, 김대중

 

서신2: 키신저 to 김대중 1985.02.24

【김대중이 키신저에게 보낸 편지 2】

1983년 2월 24일

친애하는 김대중에게

1983년 2월 15일 당신이 저에게 사려깊은 말씀과 따뜻한 말씀을 해주신 것에 대해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이 나라에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생명을 구한 노력은 오직 저만의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 노력이 성공한 것이 기쁩니다. 

헨리 키신저

 

1989년 3월 19일<br>
1989년 3월 19일
1997년 5월 15일<br>
1997년 5월 15일
2005년 3월 24일 (키신저 방한)<br>
2005년 3월 24일 (키신저 방한)
1999년 6월 14일<br>
1999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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