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사상과 몸 사상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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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사상과 몸 사상의 만남
  • 이재복 한양대·국문학
  • 승인 2023.12.03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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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말하다_ 『김지하가 생명이다』 (이재복 지음, 도서출판b, 327쪽, 2023.11)

 

김지하 선생이 그렇게 떠나시고 난 후, 나는 어떤 중압감 내지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선생과의 인연 때문만이 아닌 우리 문명사 전반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도 선생처럼 우리 문명사의 전회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 몸 사상도 선생이 추구한 생명 사상과 그 지향점이 다르지 않습니다. 몸은 생명을 구현하는 실질적인 통로이자 매개입니다. 몸이 있기에 우리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은 추상적인 개념이고 그것을 생생하게 살아 있는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몸입니다. 몸이 없는 생명은 허깨비 혹은 유령에 불과합니다. 이런 점에서 몸 혹은 몸 사상은 생명 혹은 생명 사상의 존재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생명의 위기를 몸의 존재 형태를 통해 느끼고 인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인간의 몸을 그것도 눈에 보이는 것만 볼 뿐 전체로서의 몸인 지구 혹은 우주의 몸을 보지 못합니다. 그 결과 지구는 고통받고 있지만 우리 인간은 그 지구의 몸이 죽으면 우리의 몸도 죽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구 혹은 우주는 전체로서의 신(神, 서양의 God이 아님)입니다. 스스로 그러한 존재(자연)라는 뜻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시작은 그러한 전체로서의 신, 전체로서의 몸이 어디 따로 지구나 우주를 초월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나 우주 내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 병든 몸을 치유할 수 있는 존재는 어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지구 혹은 우주 내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 전체로서의 지구나 우주의 몸(자연)을 법(法) 받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만이 희망입니다. 인간 스스로 정성(誠)을 다해 그 우주의 몸을 향해 나아갈 때만이 희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나는 『김지하가 생명이다』를 통해 밝히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되어 있습니다. 1부는 ‘김지하의 생명 사상과 미학 사상’이 지니는 세계 문명사적 의미를 밝힌 글이고, 2부는 그러한 지하의 생명 사상과 미학 사상이 어떻게 나의 몸 사상을 통해 창발적으로 해석되고 또 계승되는 지를 밝힌 글입니다. 그리고 3부는 2006년 선생이 ‘생명과 평화의 길 이사장’으로 있을 때 일산 자택에서 생명론의 발생과 그것이 지니는 ‘지금, 여기’에서의 의미와 전망에 대해 나눈 대담입니다. 이 각각의 글과 대담은 지하의 생명 사상과 미학 사상을 이해하는 데 일정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2부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하 사상의 생명력과 깊이 관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김지하(金芝河, 1941년 2월 4일~2022년 5월 8일)

지하의 사상은 지하에게서 멈추어서는 안 되며, 그것은 우주 생명이 변화를 통해 순환하듯 끊임없이 후대인들의 몸을 통해 새롭게 창발적으로 되살아나야 합니다. 나는 지하의 사상을 나의 몸 사상의 관점에서 해석하면서 그가 미처 다루지 않은 bit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digital) 문명(「에코토피아와 디지털 토피아」), 생명학의 계보( 「‘그늘’의 발생론적 기원과 동아시아적 사유의 탄생), 신명(「놀이, 신명, 몸」, 「욕, 카타르시스를 넘어 신명으로」) 등을 해석의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지하의 생명론에 통시성과 공시성을 제공함으로써 그의 사상의 외연을 넓히고 심화하는 계기를 제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bit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digital) 문명에 대한 성찰은 그의 생명 사상과 나의 몸 사상이 수렴하고 포괄해야 할,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인류는 자연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망각의 정도가 깊어지면 우리는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잃게 됩니다. 최근에 나는 지하의 『중심의 괴로움』에 실린 시를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여러 번 읽은 시들이지만 느낌이 달랐습니다. 시 중에 「빗소리」가 있는데, “내 마음속 파초잎에/귀 열리어/모든 생명들/신음소리 듣네/신음소리들 모여/하늘로 비 솟는 소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예전에는 이 구절이 시인의 상상력으로만 느껴졌는데 최근에 그것은 시인의 상상력이 아닌 실존의 소리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면 그것이 지구(우주)의 몸 아픈 소리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든 이 소리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 고통을 덜어주어야 합니다. 

요즘 내 몸 공부는 우리 문명사의 전회(轉回)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일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신, 자연, 우주, 생명, 공능, 기, 몸, 감정(정서), 이성, 실재, 과정, 진화, 실체, 이데아, 변증법, 음양, 귀신 등의 존재들과 열심히 대화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목표는 21세기의 새로운 윤리를 정립하는 것입니다. 그 이름은 ‘몸의 에티가’가 될 것입니다. 몸의 에티카는 나의 윤리이면서 우리 모두의 윤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하의 생명 사상은 나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사상은 단순한 존재(being)를 너머 살아 있는 생명(life) 혹은 삶(living)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하가 추구한 생명의 윤리가 곧 나의 몸의 윤리이고, 나의 몸의 윤리가 곧 지하의 생명의 윤리입니다.  

지하는 시대의 중심에 서서 치열하게 그 힘을 느끼고 예감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늘 앞서 갔고 우리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둔감함이 그를 다시 감옥에 가두었고, 그 속에서 그는 외로움의 면벽증(面壁症)을 앓다 갔습니다. 그는 갔지만 그의 혼령은 천지에 가득합니다. 지구가 아프고 우주가 짙은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날이면 그의 혼령은 시퍼렇게 되살아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숨결로만 느낄 수 있는 그 귀신이 바로 생명입니다. 우리는 이 생명의 존재를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망각은 곧 죽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김지하가 생명인 이유입니다. 

 

이재복 한양대·국문학

한양대학교 한국언어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현재 한양대학교 국제문화대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몸』, 『비만한 이성』, 『한국문학과 몸의 시학』, 『현대문학의 흐름과 전망』, 『한국 현대시의 미와 숭고』, 『우리 시대 43인의 시인에 대한 헌사』, 『몸과 그늘의 미학』, 『내면의 주름과 상징의 질감』, 『벌거벗은 생명과 몸의 정치』, 『정체공능과 해체의 시론』 등이 있다. 김준오시학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젊은평론가상, 애지문학상(비평), 편운문학상, 시와표현평론상, 시와시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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