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졌던 불교문학, 그 실상과 미학을 찾아나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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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졌던 불교문학, 그 실상과 미학을 찾아나선 길
  • 김승호(金承鎬) 동국대 명예교수      
  • 승인 2023.12.03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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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한국 불교서사의 세계』 (김승호 지음, 소명출판, 840쪽, 2023.10)


  

불교문학을 대할 때 피상적인 시선을 앞세운다면 종교담론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 보통은 언어미학적 대상으로 삼기를 꺼리고 교리 전교를 위한 기능적 담론으로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불교문학이 문학사에서 소외된 데에는 이 같은 인식이 한몫했다고 하겠다.
   
필자도 한때는 불교문학을 주변부에 위치한 대상으로 여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정확히 말한다면 박사논문 주제로 승전(僧傳)을 접하고서부터이다. 예상과 달리 그것은 유가의 일대기와는 매우 다른, 높은 서사성과 인물 창조의 특이성을 간직한 서사체였다. 이후 불교문학이 달리 보였고 힘이 닿는 대로 이쪽을 천착해보자 다짐하게 되었다.

돌아보건대, 지난 30년의 연구생활 동안 자료발굴과 불교문학의 미학성의 발견이란 화두를 놓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불교문학에 대한 혜안과 통찰력을 갖추었는가. 그건 아니다. 여전히 살펴볼 자료와 작품은 산적해 있고 갈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그럼에도 책 간행을 기획한 데는 까닭이 있다. 우선, 옛 선인들이 칩거에 들어간 노년기를 대비하여 와유록(臥遊錄)을 써 놓았듯 필자도 훗날 학문적 궤적을 돌아볼 거리 하나쯤은 장만하자는 생각이 있었다. 또 하나, 이 분야에 관심이 있거나 연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길잡이 노릇을 해야지 않나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원래 목표는 시가영역을 포함한 한국 불교문학사의 집필이었으나 여러 사정상 다음 과제로 미루고 본서에서는 서사영역의 논고만을 모았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영역별로 중심 내용을 간추려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다.

<한국 불교문학의 갈래와 흐름>은 한국 불교문학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자리이다. 역사적 맥락에서 불교문학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살핀 다음 장르적 관점에서 각 양식들의 형식, 담당층, 주제 지향성 등을 소개하고 있다. 불교문학도 장르 분류상 서정, 서사, 극으로의 3갈래를 적용하더라도 무리가 없으나 장르 종에서는 일반 문학과 변별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승전, 자전, 어록, 금석문을 불교문학의 범주에 귀속시키고 있는 점이 색다르다. 아울러 신라, 고려시대가 불교문학의 흥성 시기인 것은 분명하나 억불의 시기라 할 조선시대에도 불교문학의 담당층은 방향성을 모색하면서 숱한 작품들을 생산해 냈음을 확인하고 있다. 거시적으로 나마 불교문학의 세계를 확인하려는 입문자들에게 특히 이 장은 도움이 되리라 본다.

<불교전기>는 승려의 일대기인 僧傳과 自傳을 다루고 있다. 전하지는 않지만 金大問의 『高僧傳』은 신라시대 승전 찬술의 열기를 말해준다. 이후 崔致遠, 赫連挺, 覺訓, 一然 등이 승전 찬술의 전통을 이어갔다. 승전은 춘추필법이나 편년철사식의 찬술을 지향하는 유가의 입전방식과 현격한 차이가 있다. 사실의 기록이란 강박감에서 벗어나 있음은 승전찬술에 나타나는 첫 번째 특징이다. 괴력난신적 요소, 초월적인 시공간의 개입 등을 기피하기는커녕 생애의 복원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자전이 제 삼자에 의해 입전된 것이라면 자전은 찬자 스스로 자신의 생애를 기술한 것이다. 서양에서 일찍부터 자서전을 문학의 한 영역으로 수용해 논의한 것과 달리 우리의 경우, 이에 대한 연구가 소홀했다. 특히 불가의 자전은 방치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고려 말 불가에서는 현대적 의미의 자서전적 인식을 갖춘 것으로 나타난다. 찬술자는 왜 속가를 벗어나 불문에 귀의했는지, 출가 이후 인성의 변화는 어떠했는지 등 본인의 입을 통해 생애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을 익명으로 처리하고 생의 궤적을 모호하게 처리하는 유가에서는 볼 수 없는 작법인 바, 불가에서 자아표출에 보다 적극성을 보였다 하겠다. 필자가 시급한대로 불가 자전의 정체와 서사적 특성을 밝혔으나 불가의 전기문학에 대한 보다 심화된 연구가 요청된다.

<불교설화>에서는 불가에서 발원한 것으로 여겨지는 문헌, 구전설화 가운데 높은 서사성에도 불구하고 눈여겨보지 않았던 대상들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삼국유사』 중심의 설화연구의 한계를 직시, 여기서는 中, 日의 문헌자료, 금석문까지 논의 대상으로 포함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유가 문집에 수록된 불교설화도 논의에 포함시키고자 하였다.

금동(金同)전승은 본서에서 발굴한 한 사례이다. 유자들의 문집에 올라있는 금동(金同)전승은 신심 깊은 불자인양 행세하지만 사이비 승에 불과했던 금동의 비참한 말로를 전한다. 즉 금강산에서 개성의 권력층에 아부하면서 신임을 얻지만 지공(나옹)에 의해 금강산을 자신의 세력권으로 삼으려던 야망이 들통나고 끝내 천벌을 받아 죽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동전승의 발생 시점, 시대적 변이양상, 경쟁담으로서의 특성 등을 근거로 본서에서는 금동이 가공의 인물이라기보다는 고려 말 대중 선동에 능했던 어떤 사이비 교주를 대유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금강산 사찰연기를 예로 성(聖)의 인입과 속(俗)의 배척 현상이 강하게 반영하는 현상을 중교담론의 본질이란 측면에서 해명했다. 불교설화의 담당층은 사찰, 불상, 금강산 등이 성현의 응집체로 보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즉, 논의 대상으로 삼은 금강산 사찰연기들은 신성한 절, 불상, 산이 속성(俗性)으로 오염되어질 수 없는 공간임에도 직분을 망각한 일탈승(逸脫僧), 밖에서 반입된 불상 등으로 말미암아 그 본성과 신성이 훼손될 위기 상황이 제시된다. 하지만 천상, 혹은 신적 존재에 의해 곧바로 오염원이 확인되고 그에 대한 응징과 단죄가 내려진다. 특히 금강산, 유점사를 서사공간으로 삼고 있는 설화들에 나타나는 성의 인입과 속의 배척이란 구조를 적시하여 이들이 종교서사의 전형에 해당된다고 진단하였다.

《해인사유진팔만대장경개간인유(海印寺留鎭八萬大藏經開刊因由)》로 신라말 고려초에 이미 불교소설이 출현했음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자료다. <br>
《해인사유진팔만대장경개간인유(海印寺留鎭八萬大藏經開刊因由)》로 신라말 고려초에 이미 불교소설이 출현했음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자료다. 

이밖에 삼국 이래 고승설화의 변모 양상, 발화 시점, 전파 양상, 담당층에 따른 승상(僧像)을 살폈다. 이 중에서 ‘야담에 나타난 승의 형상’을 잠깐 소개하기로 한다. 불교세가 강했던 삼국, 고려시대의 문헌에 등장하는 승려의 모습은 한결같이 성자적 면모를 간직하고 있다. 즉,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주체로 경외의 대상이라 할 성승(聖僧), 고승(高僧)의 모습만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이는 숭불적 분위기에 편승한 인물형상이라 본다. 한데 억불책이 시행되던 조선시대의 야담에는 성승이나 고승의 자취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대신 이승(異僧), 속승(俗僧), 악승(惡僧)이 그 자리를 메운다. 이 변화를 두고 필자는 야담 담당층이라 할 사대부의 반불의식을 주목하였다. 

고려 이전까지는 유자라 할지라도 호불적 성향이 강했던 탓에 고승, 성승으로의 안치가 흔했으나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이를 거부하였다. 도리어 성승, 고승 대신 이승, 속승, 악승 등의 예를 찾아 야담에 올리기에 급급했다. 언제나 문제적인 승려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야담에서 유독 승려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앞세웠던 까닭을 문학 사회학적 시각에서 검증하고 있는 것이 이 논고의 특징이다. 사실 불교설화는 일별해 보기에도 벅찰 만큼 편폭이 넓다. 논의 범주를 발굴 작품으로 좁힐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앞으로 불교설화에 대한 논의가 폭넓게 전개되기를 소망한다.

<불교소설>은 불교소설의 자료 발굴과 함께 시대적 흐름에 따른 발생, 흥성, 쇠퇴, 그리고 시대적 변화에 따른 주제적 특징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자료 발굴 사례로는 해인사창건연기(海印寺創建緣起), 진허가허(眞許假許), 주왕전(周王傳) 등이 있다. 해인사창건연기담은 단순한 창사설화를 넘어 불교전기소설적 서사조건을 충족한 작품으로 파악하였다. 특히 출현시기가 『수이전』과 근접한 만큼 불교전기소설의 남상으로 볼 수 있으며 『삼국유사』 소재 불교전기소설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구체적으로는 소설사적 시각에서 불교소설의 전개 양상에 주목하여 羅末麗初를 불교전기의 발흥기, 고려시대를 불교전기의 출현기, 조선초를 불교소설의 발흥기, 조선중기 이후를 불교전기소설의 쇠퇴기로 규정하였다. 작품에 즉하여 서사미학적 측면을 살피는 작업도 병행하였으니 캐릭터, 독자층을 분석 요소로 지정하여 불교소설이 지닌 서사미학적 개별성과 시대성을 읽어내고자 했다. 예컨대 『수이전』, 『금동전승』, 『옹고집전』의 등장인물인 호귀(狐鬼), 금동(金同), 상좌(上座), 옹고집 등에서 外道型 인물의 기능과 성격이 무엇인지를 규명했다. 또 수용층에 주목하여 불교소설에서의 배경이나 사건 설정이 여성 독자층을 의식한 선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개론, 각론적 논의를 통해 얻은 결론은 불교문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종교담론으로만 치부했던 불교문학이 실로 문학성 높은 유산임을 자각하고 그 조명에 나서야 할 때이다. 이 책이 연구자들은 물론 대중들에게 불교문학의 실상을 알리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재가 되길 기대해 본다.

 

김승호(金承鎬) 동국대 명예교수

동국대 국어교육과 교수, 사범대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동국대 명예교수이다. 고전산문을 전공했으며 특히 불교 서사문학의 의의를 밝히는 데 남다른 열의를 보였다. 단독저서로 『한국승전문학의 연구』, 『한국서사문학사론』, 『고전의 문학교육적 이해』, 『한국 사찰연기설화의 연구』, 『경일의 삶과 문학세계의 이해』, 『삼국유사 서사담론 연구』, 『중세 불교인물의 해외전승』, 『동계집(번역서)』, 『절따라 전설따라』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달문가, 광문자전, 달문각편의 서사유형적 고찰」, 「사명당 설화의 발생환경과 수용양상」 등 100여 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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