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대학을 향한 발본적 구조조정, ‘지방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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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학을 향한 발본적 구조조정, ‘지방시대’
  •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 승인 2023.11.26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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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남 칼럼]

사람들은 여태 ‘대학의 구조조정’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이름짓기다. ‘사립대학의 구조조정’이 맞다. 더 정확하게는 ‘전문대학과 지방사립대학의 구조조정’이라고 불러야 맞겠다. 20여 년 넘게 이어진 이 용어를 새삼 문제 삼는 이유는 이제 그 종착역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적어도 이론으로는 희망을 걸어볼 만한 여지조차 거의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그 종착역이라 함은 사립대학에서의 공공성에 관한 국가의 책무성을 포기한다는 선언을 말한다. 다만 그런 선언의 포장지에 ‘지방시대’라는 형용모순이 그럴듯하게 채워지고 있다.

마침내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수립한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2023-2027)’을 확정하였다(2023.10.30.). 여기에는 지방시대 5대 전략 중 ‘인재를 기르는 담대한 교육개혁’이 들어 있으며, 고등교육과 관련하여 ‘대학과 지역의 동반성장 지원’이라는 핵심과제가 설정되어 있다. 고등교육의 ‘지방시대’는 지방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그 목적이 있다면서도 국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가 지역발전과 연계하여 지방대학을 지원하라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우선 지방대학이 지역발전의 허브가 될 수 있도록 지역혁신 관련 대학재정지원사업을 지자체 주도로 전환하여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를 2025년부터 전국에 구축하도록 한다(=라이즈 사업). 이에 따라 대학재정지원사업 관련 정부 예산의 50% 이상을 지역 주도의 예산으로 전환할 것이다. 그다음으로 지역사회와 산업계와 함께 지방대학 맞춤형 혁신을 통해 경쟁력 있는 지방대학 30개교를 집중적으로 지원한다(=글로컬대학 육성사업). 교육부는 최근 이 사업에 따라 10개 대학을 글로컬대학으로 선정하였다(2023.11.13.). 

이 ‘지방시대’의 실질적 표적은 결국 글로컬대학 육성사업에서 배제되는 사립대학들인데, 그 정책을 효율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정부가 숙고한 정치적 수단은 규제를 풀고 구조조정의 퇴로를 여는 것이었다. 먼저, 정부는 대학에 대한 규제 혁신과 구조개혁을 주문하여 지역과 대학을 살리는 자율적 혁신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는 최근 대통령령, 구체적으로 ‘사립학교법 시행령’과 ‘대학설립·운영 규정’을 개정하였다. 그다음으로, 정부는 부실 위험이 짙은 대학을 ‘경영위기대학’으로 지정하여 구조개선의 기회를 먼저 부여한 후 회생이 어려운 대학에 대해서는 퇴로를 마련하겠다며, 곧 ‘사립대학 구조개선법’을 제정하겠다고 한다. 이번 ‘지방시대의 종합계획(2023-2027)’에 나타난 고등교육의 지방시대에 관한 윤석열 정부의 요청은 표면상으로는 ‘자율화’이지만 그 본질은 ‘사립대학의 홀로서기’다. 이는 정부의 대학정책이 근본적으로 국립과 사립의 차별적 접근에 기초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집권 이후 지금까지의 행보에 따라 전망해보면, 국가의 재정은 오로지 국립대학에만 투입하겠다는 것, 그리고 사립대학의 경우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대학을 중심으로 고등교육의 판을 짜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더는 확대하지 않을 것이며, 대학의 자율화, 즉 홀로서기의 물적 토대에 필요한 약간의 제도를 정비하는 데 역점을 둘 뿐이라고 한다. 

‘지방시대’ 담론이 은폐하고 있는 고등교육의 여러 쟁점, 즉 무상교육의 요청이라든지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하라는 주장이라든지, 학교법인의 민주적 체제를 강화하라는 주장이나 강력한 고등교육의 분권을 실시하라는 요구 등을 제쳐두더라도 ‘사립대학 홀로서기’를 강행하고 있는 최근의 폭거들의 특징을 간단하게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글로컬대학 육성사업의 첫 선정이 최근 종료되었는데, 한국의 고등교육 중 85%를 담당하는 사립대학은 세 학교가 최종 선정되는 데 그쳤다. 예비 선정되었던 15개 학교(국립 8팀, 사립 7팀) 가운데 국립대학은 1개교가 탈락하고 7개교가 최종 선정되었지만, 사립대학은 4개교가 탈락하고 3개교가 최종 선정되었다. 이렇듯 이 사업만 보더라도 고등교육의 재정은 사립대학을 비켜서서 국립대학으로만 향한다. 물론 국립대학으로 편향된 그 재정 역시 작은 국립대학을 통합하는 비용에 불과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둘째로 지적되어야 할 것은 사립대학을 둘러싼 규제를 철저하게 해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등교육에 필요한 공간과 재산의 규모를 법정화한 ‘대학설립·운영 규정’이 ‘5.31 교육개혁방안’(1995년)에 따라 점차 비대해진 대학과 학생의 수에 대하여 최소한의 경계선을 긋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도, 그 규정이 현재 변화한 교육 및 연구 활동과는 어울리지 않거나 오히려 자유롭고 혁신적인 교육활동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된다는 명분으로 윤석열 정부는 그 규정에서 정한 이른바 4대 요건을 전면적으로 흔들고 있다. 대학이 설립되던 당시의 요건이 항상 유지되어야 한다는 기존 고등교육 규범을 해체한 것이다. 즉, 대학의 ‘설립 기준’과 그 ‘운영 기준’을 분리하여 대학의 설립에 필요했던 요건은 대학을 설립할 때만 필요한 규정이라며, 이미 운영하는 대학에 관해서는 교지(校地) 기준을 폐지하여 4대 요건을 교사(校舍), 교원(敎員), 수익용 기본재산에 관한 3대 요건으로 전환하여 크게 완화하였다. 하지만 그 속셈은 자명하다. 즉, 학생 수 급감 상황에서 유휴재산을 활용해 대학 스스로 재정을 확보하도록 길을 열어주기 위하여 대학의 운영 기준을 대폭 완화한 것이었다. 

셋째, 이처럼 대학을 운영하는 필요한 최소기준을 낮췄다면 향후 과제는 남아도는 시설과 토지를 자본화하는 처분의 자유를 학교법인에 부여해주는 것이다. 최근 ‘사립학교법 시행령’의 개정(2023.6.13.)과 이에 근거하여 제정한 ‘교육용 기본재산 처분에 관한 기준 고시’(2023.9.1.)에 따라 교사와 교지 가운데 일부를 합법적으로 처분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사립학교법과 그 시행령의 ‘원칙’에 따르면 교지, 강당을 포함하는 교사, 실내체육장을 포함하는 체육장, 실습 또는 연구시설 등에 대해서는 학교법인이 매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학생 수의 감소 등 교육여건의 변화를 고려하여 매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해도 교육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경우라면 교육부 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재산’에 대해서는 학교법인이 매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에 처음 제정된 위 ‘고시’에 따르면 ‘대학설립·운영 규정’ 제4조(교사)와 제5조(교지)에 따른 기준은 최근 감소한 학생 수에 연동하여 교사와 교지의 확보 기준이 넘는 경우 이를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교육제도와 그 운영 그리고 교육재정에 관한 기본적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대한민국헌법’ 제31조의 취지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마치 교육하는 데 필요한 기본재산이 사립대학에 넘친다고 전제해버린 이런 배임적 구조조정은 결국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국가가 이제 포기하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국가는 자신이 할 일은 하지 않은 채 그 책무성을 대학과 그 구성원, 그리고 지역사회에 ‘지방시대’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떠넘기고 있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구조조정의 끝자락은 뭘까? 그것은 교원의 확보 기준을 삭제하는 데 있을 것이다. 대면수업과 비대면 수업이 혼재되어 굳이 전임교원이, 정년보장이, 또는 사회적 대우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논리와 사고가 허용되는 ‘대학의 종말’을 확실히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마저 사립대학에는 차별적 방식으로 다가올 것이다. 오랫동안 이어진 일방적 구조조정에 이어, 고등교육의 주요 담지자인 사립대학에 대한 매우 차별적인 구조조정을 수반하는 정의롭지 않은 전환은 이름값 높은 몇몇 대학만 고등교육의 뼈대를 유지한 채, 사회를 널리 이롭게 하려던 다양한 대학의 참된 목적을 마침내 집어삼킬 것이다. 이것이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고등교육 지방시대’의 종막이다.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인제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민주법학』 편집위원이며, 전공은 계약법인데 교육법, 인권법, 법여성학, 사회철학, 사회과학방법론, 법인류학 등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경남 근현대사: 사건, 공간, 운동』(공저, 2023),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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