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와 포스트분단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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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와 포스트분단체제
  • 신철하 강원대(前)·영화서사/비평이론   
  • 승인 2023.11.26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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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테제_ 『무위: 한국 정치의 미적 구성을 위한 세론 - 지금 동학이란 무엇인가』 (신철하 지음, 울력, 255쪽, 2023.11)

 

무위 

오늘의 남한 사회를 규정하는 단 하나의 주제어는 알레고리로서의 ‘콜걸’이다. 이 함의가 내포한 핵심 주제는 지식의 콜걸화라고 말할 수 있다. 자본에 거의 완전히 종속된 대학의 지식행위는 그 자체로 피폐하고 마침내 자기기만의 쳇바퀴 속에 감금돼 있다. 이 상황에 기름을 부은 것은 신자유주의의 극단적 형태로 기입된 무능하고 부패한 현실정치다. 남한에서 정치의 위력은 강력하다. 거의 제왕적 대통령 권력행태가 말기적 증세로 표현될 때 파생되고 있는 소음과 그 고통은 임계치를 넘어선 지 오래다. 위기와 경고 사이렌이 시도 때도 없이 사방에서 울리고 그 소음의 고통으로 또 절규하지만(가령, 세월호와 이태원참사), 대학의 경우 교수는 자신의 밀실로 도피하고 학생은 코인과 ‘영끌’에 올인하는 것으로 진리를 대체한다. 미래는 가망 없는 희망이 돼버렸다.

19세기 조선유학의 부패와 무능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향할 때, 최제우는 그것을 직시한 유일한 지식인이다. 이황도 (조선유학이 도달한 최고의 성취로 평가되는 ‘성학십도’의 저자 이황이 기록한 가계부에는 그가 치밀하게 축재한 땅 3095두락[35만평], 야비한 방법까지 동원해 불린 노비 367인을 그의 자식에 분배한 것을 엿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그와 조선유학이 설정한 높은 이상과 성인 됨의 진리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자기기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모순이 사대부의 내면분열을 낳고 외세의존을 보약처럼 신봉하게 한 핵심가치가 되게 했다) 정약용도 최한기와 황매천도 그리고 조선의 어떤 지식인도 조선유학이 본원적으로 안고 있던 인간차별과 자기기만의 이데올로기를 냉철하게 응시하고 그 근본문제를 기록하지 않았으며, 그렇다는 점에서 그들과 그 지식은 기껏해야 체제 내 아류(노예) 지식으로만 유효(용)하다. 

최제우는 자신이 처한 환경과 신분을 정확하게 통찰하고 체제 내 유약한 지식인임을 처절하게 자기화한 위인이다. 그가 노자의 무위를 노자보다 더 높은 단계로 올려놓은 것은 이 때문이다. 동학으로 호명된 『동경대전』에서 그가 무위를 발화할 때 대부분 세속적 아류들은 그것을 말 그대로 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기적의) 어떤 것이거나, 최제우(동학)의 신묘한 능력으로 성취 가능한 무엇이거나, (거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자연 상태의 것을 말하는 것처럼 이해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최제우가 체제 내에서 체제의 모순과 자신의 한계를 처절하게 고민한 바로 그 깊은 좌절의 포인트에서 자신도 잘 알 수 없는 미지의 좌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 변곡점이 무위의 리비도였음을 응시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무위는 그 실체를 헤아리기 어려운 잠재태다. 최제우를 ‘오직’ ‘몸으로’ ‘체득하고’ 더 나아간 최시형이 무위의 능동형, 나아가 일촉즉발의 반시대와 반생명이 압도하는 19세기 조선 현실에 ‘현묘무위(玄妙無爲)’로 생명정치를 관철시켰다. 그러므로 19세기의 이 위대한 사건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은 어떻게 동학의 ‘무위’가 현재진행형일 수 있는지를 증거하고 궁리한다. 가망 없는 현실에 일말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면, 무위의 덕성을 삶의 실제에 퍼포먼스 함으로써 가능할지 모른다. 최제우는 무위의 진리를(‘曰吾道 無爲而化矣’) 통해 부패하고 무능한 19세기 조선에 동학을 기입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부패하고 부조리하며, 무능으로 점철된 19세기 지식인(사대부)들에게 결정적 타격을 가했다. 최시형을 통해 대세를 장악한 동학은 마침내 인민봉기를 주도함으로써, 조선의 지식인에게 기회주의와 외세의존을 집착하게 하는 계기를 촉발했다. 그 결과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국제전으로 비화하는 과정을 거쳐 조선의 완전한 파국을 낳았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또 다른 형태의 외세에 의한 해방과 잔여적 식민지의 일상을 내면화하는 분열증으로 귀착되었다. 분단체제의 지속과 그 분열증으로 파생된 포스트분단체제는 영끌과 코인에 올인하고 있는 20대에게 영구분단을 의식화된 세대의식으로 고착화하는 현실이 되게 하고 있다. 이 자기기만과 모순의 분열증을 한국문학의 전위는 예리하게 포착한다. 


포스트분단체제

오늘의 남한 사회를 특징짓는 포스트분단체제의 3가지 미적 정동은 이데올로기의 해체, 국경의 해체, 국가주의의 해체로 집약가능하다. 『로기완을 만났다』를 정독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해체와 국경의 해체를 넘어 남한 사회를 강력하게 지배하는 병영국가주의를 심미적으로 균열 내는 징후를 목도한다. 이 소설의 ‘로기완’을 압박하는 것은 자본이다. 자본은 리건과 대처를 주축으로 시도된 퇴폐적 시장 자유주의가 위기에 봉착하자 이를 공격적으로 재설계하는 과정을 통해 이른바 ‘자본가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비호하고 나선 신자유주의가 지향하는 핵심 모토다.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가 미성숙 단계에서 인민통제와 불평등을 느슨하게 수행하던 어젠다를 더 강력하게 폭력화해 국가와 정부의 최우선 이념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세계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적어도 세계화의 예외일 것이라고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북한까지 은밀하게 스며들어 위력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로기완’의 경우가 방증한다.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자본이 어떻게 무자비하고 야만적인지를 알지 못하는 로기완은 마더 최영애가 아들을 위해 자신의 죽음을 담보로 남긴 시체를 팔아 그의 시간을 연명한다. 그렇다는 점에서 그의 생명은 이미 죽음과 삶을 동시에 취하고 있는 유령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함경북도 온성군 세선리 제7작업반에서 태어’난 그는 마더의 시신을 판 650유로를 가슴에 품고 국경을 탈출해 중국 여러 곳을 전전하다 브뤼셀에 도착, 천신만고 끝에 얻은 난민 지위를 포기하고 다시 영국행을 택한다. 그것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껏 체온을 나누는 그 순간의 충만함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국가의 밖에 있는 전혀 낯선 사람들과 연민과 연대의 사슬을 형성하는 놀라운 도약(탈영토화)을 보여주는데, 이때 국가주의의 해체는 ‘그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한’ 실존적 삶의 혁명이 된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로기완을 지배한 것은 ‘무희망의 희망’으로 행동한 무위적 덕성이다. 우리는 이 무의식적 리비도의 ‘충동/정동’이 스피노자가 말한 코나투스, 나아가 최시형의 ‘현묘무위’라고 예감할 수 있다.  


에코아나키

노자가 최초에 ‘무위의 정치’라고 발화한 그것은 최제우와 최시형의 ‘동학의 진리는 무위의 진리다’라는 계시를 통해 19세기 조선 최고의 생명운동이 된다. 인민봉기와 3·1운동의 주체로 거듭난 동학의 내면을 지배한 것은 무위다. 무위는 레비나스가 ‘아나키는 질서에 대립하는 무질서의 사실이 아니다, 무질서는 단지 하나의 다른 질서일 뿐이다’라고 언급한 아나키와 근친성을 띠고 있다. 최제우의 보국안민이 그러했던 것처럼 레비나스는 아나키를 통해 상투화된 국가 개념을 재정의하면서 다른 국가에 대한 기획으로 나아간다. 그것을 우리는 무위의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다. 무위의 공동체는 에코아나키의 다른 호명이다.

시장 자유주의를 대표하며 리건과 대처 이후 미·영과 일본 등을 포함하여 거대한 달러 자본에 편입돼 세계화(신자유주의)를 주도한 국가의 한결같은 특징 중 하나는 빠른 속도로 생태적 양극화와 불평등이 가속화돼, 위기를 넘어 파국을 향한 임계점까지 도달했다는 점이다. 이런 국가의 공통점은 국가가 자본에 종속되고 인민의 노동경직성이 극대화돼 사회의 위기신호가 주기적이며 만성적으로 재현된다. 시방 남한 자본은 이 메커니즘에 포획되어 정치, 경제적 위기에 만성적으로 노출돼 있다. 거의 짐승 상태의 각자도생에 내몰린 인민의 나날은 전쟁과 유사한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남한식 시장국가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우리의 경우 시장국가 극복은 분단체제 극복과 동시에 병행되어야 하는 이중과업이다. 현 단계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차선의 단초가 본래적 의미의 지역자치를 재구조화하는 과제와 맞물려있다. 심각한 자질의 한계, 부패, 부조리, 기회주의와 무능으로 누더기 상태인 현 지역자치를 재구조화하는 핵심에 자치장과 의원을 정당에서 분리하여 주민추천제로 명문화하고, 윤리적 자질을 검증할 복안이 기입될 필요가 있다. 이는 교육과 공동체의 윤리가 완전히 무너진 남한의 제도 메커니즘을 복원하는 가능한 대안이 된다. 나는 이 정치적 실천이 무위의 공동체-에코아나키를 위한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이 과업을 위한 내면의 주제어를 무위로 호명했다. 

 

신철하 강원대(前)·영화서사/비평이론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에코아나키』(2021), 『봉인된 시간』(2020), 『노자와 에로스』(2016), 『사랑의 파문』(2016), 『이미지와 욕망』(2012), 『미완의 시대와 문학』(2007), 『역사의 천사』(2001), 『한국 근대문학의 이상과 현실』(2000), 『문학과 디스토피아』(199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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