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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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란 무엇인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11.25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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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 뒤르켕의 사회주의론: 생시몽 학설 | 에밀 뒤르켕 지음 | 정헌주 옮김 | 간디서원 | 356쪽

 

이 책 『사회주의론』(Le Socialisme)은 뒤르켕이 1895년 11월부터 1896년 5월까지 보르도대학에서 〈사회주의의 역사〉라는 강의를 하기 위해 노트 형식으로 작성한 것을 토대로 정리해 놓은 것이다. 『사회주의론』은 원래 『사회주의와 생시몽』(Socialism and Saint-Simon)이라는 제목으로 영어로 출간한 것을 Collier Books가 The Antioch Press와 함께 정리하여 출간한 것이다. 

사회주의를 정의하기 위해서 뒤르켕은 사회주의가 발생한 사회적 환경과 그 역사를 깊이 통찰하고 사회주의를 하나의 사실(a thing)로 간주하여 이해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는 사회주의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보고 사회주의는 무엇인가? 언제 시작되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리고 사회주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등 질문을 던진다.

18세기 산업혁명 후 대공업의 발달에 따라 전개된 사상적 흐름에 따라 탄생된 사회주의는, 19세기 이르러 프랑스의 생시몽과 푸리에, 영국의 로버트 오웬 등 대표적인 사상가들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실제 ‘사회주의자’와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835년 로버트 오웬(Robert Owen)의 후원하에 「만국계급협회」에서 열린 토론회로 알려져 있다.

당시 고전경제학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는 산업활동을 중시하고 산업주의에 기초하고 있는데, 고전 경제학자들이 개인의 이기심으로 발동된 경제활동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가 조화를 이루게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반해 사회주의자들은 경제활동은 당연히 사회적이고, 집합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어 경제적 부는 사회적으로 통제해야만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사회는 가능한 최대의 생산을 확보하여 모든 사람에게 생산물을 충분히 분배하는 것을 사회주의의 목표로 생각하였다.

또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적 이익에 초점을 두고 있으므로 노동자의 문제나 임금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이런 노동자의 문제나 임금 및 분배문제 등 경제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 유기체 전반에 걸쳐 산업 구성을 재배치하려는 열망의 산물이었다. 그래서 뒤르켕은 “모든 경제 기능 또는 그중 특정 기능을 (비록 널리 확산되더라도) 이를 지시·감독하는 사회 기관과 완전한 연계를 요구하는 이론”을 사회주의라 정의하고 있다.

이 책은 주로 생시몽의 사회주의 사상에 집중되어 있다. 그는 푸리에, 오웬과 함께 공상적 사회주의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그중에서 생시몽은 시기적으로 약간 앞서는 선구자다. 생시몽을 공상적(Utopian) 사회주의자라고 칭한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이다. 마르크스(1818~1883)보다 약 60년 일찍 태어난 생시몽(1760~1825)은 절대왕정의 귀족 출신으로 미국 독립전쟁(1775~1776)에 참가했고, 프랑스혁명 때는 자코뱅파에 섰다. 그는 유물론에 찬성하고 관념론에 반대했으며, 사회 발전에도 일정한 법칙이 지배한다고 주장하는 등 급진적 사상을 피력했다. 그러나 역사의 추진력이 도덕과 종교에 있다는 관념론적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해 운동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또한 계급인식이 결여되어 단지 노동자계급의 생활 수준의 개선을 주장하는 데 그쳐 후대로 따지면 개량주의적 성격을 띠었다.

뒤르켕이 사회주의에 관한 강의를 준비하면서 생시몽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물론 뒤르켕은 자신이 사회주의는 물론 개량주의 또는 수정주의를 지지한다고 표명한 적은 없다. 구조주의 사회학의 대표자로서 뒤르켕은 자신의 인식론적 입장에 맞게 사회주의를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하나의 사회적 사실(social fact)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뒤르켕에게 사회주의는 이데올로기로서 설명하는 문제다. 이 책이 사회주의에 대한 정의에서 시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시몽 사상은 후대의 바자르(A. Bazard, 1791~1832)와 앙팡탱(B. P. Enfantin, 1796~1864) 등 제자들이 생시몽 학교를 설립하여 지속적으로 강의를 하면서 체계화되었다.

19세기에 전개된 지적 흐름을 보면 오귀스탱 티에리의 역사학, 콩트의 실증주의 철학, 종교의 부흥에 대한 열망 및 사회주의 운동과 사상 등을 들 수 있다. 산업활동에 기인한 이런 경향들을 생시몽은 산업주의(industrialism)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주의란 “개인에게 경제적 이익 곧 산업적 이익만이 유일하게 유용한 기능이다.”(생시몽) 사회에 경제적 이익만 있다면, 경제생활은 반드시 사회적이고, 이 경우 집단생활은 집단이나 조직의 통제를 받게 된다. 이것이 사회주의경제 원리이다. 여기서 조직은 산업적 이익을 대표하는 곧 업무 관리 능력이 있는 자에게 사회를 지휘하는 권한을 부여해야 하는데, 이들은 사회의 이익을 강요하거나 권위 행사를 할 필요가 없으므로 정부는 억압기능을 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사회주의 정치 원리이자 무정부주의 교리다.)

또한 세상에는 산업적 이익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집단적 관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가능한 많은 부를 생산하여 모든 사람이 최대한 많이 갖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사회주의 도덕) 그리고 산업적 이익은 모든 민족들에 동일하고, 국경이 있음에도 자연스럽게 융합되는 경향이 있어서 산업주의는 논리적으로 국제주의로 귀결된다. 또 산업주의에서 인간의 유일한 목적인 세속적 이익은 그 나름의 가치와 존엄성을 가진다. 따라서 신은 바로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 내재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생시몽은 범신론을 지지하고 있다.

1830년대 생시몽 학교의 성공은 절정에 달했다. 1831년 생시몽 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학술지 『지구』(Globe)와 『생산자』(Producteur)가 연달아 창간되고, 식자층 집단에만 국한되지 않고 프랑스에서 모든 계층에 걸쳐 수천 명에 달할 정도로 생시몽 사상은 유행했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외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냉정하고 온건한 지성인인 바자르와 뜨거운 가슴에 거칠고 열정적인 천재인 앙팡탱은 여성문제와 결혼문제를 두고 불화가 불거졌다. 바자르는 다른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결혼 생활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대우를 주장했으나 앙팡탱은 거의 신성한 매춘이라 할 수 있는 자유연애를 주장했다. 앙팡탱은 성실하고 충실한 남녀의 결혼을 인정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인정하지 않으며 부부 사회―앙팡탱의 표현대로 하면 사랑의 종교―를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하여 집단의 필요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앙팡탱의 과감한 구상은 큰 소동으로 번지고 바자르는 앙팡탱과 결별하였다.

하지만 생시몽 사상은 곧바로 사라지지 않았다. 생시몽 사상은 당대에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오랫동안 계속해서 사람들의 정신에 도전했다. 생시몽 사상의 신봉자 가운데 식별력 있고 저명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종사하는 직업에 생시몽 사상을 도입했으며, 한참 지나서 불신하게 되었다. 앙팡탱 일파가 조롱하지 않고 운동 전체를 불신하지 않았다면 생시몽 사상의 영향은 훨씬 오래 지속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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