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까지 현대미술의 사기를 참아야 하는 걸까?
상태바
우리는 언제까지 현대미술의 사기를 참아야 하는 걸까?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11.25 19: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또 다른 현대미술: 진짜 예술가와 가짜 가치들 | 뱅자맹 올리벤느 지음 | 김정인 옮김 | 크루 | 184쪽

 

이 책은 주류 현대미술(예술) 담론에 대한 저항의 안내서다.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신격화에 기초한 현대미술의 ‘공식적인’ 담론은 이렇게 요약된다: 20세기는 아방가르드의 세기, 즉 서사, 재현, 찬미, 아름다움과 같은 고전적인 예술 개념들을 비롯하여 작품 자체, 예술가 자체를 해체하고 넘어서려는 계속된 시도였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모든 현대미술은 사람들에게 낯설고, 이상하고, 간단히 말해 ‘예술처럼 보이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예술’이란 말에서 자연스레 떠올리는 이 개념들, 관찰을 통해 솜씨를 갈고닦는 예술가란 역사의 흐름에 따라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까?

저자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고전적인 예술 개념은 20세기 내내 소위 마이너 예술로서 계속 존재해 왔으며, 그 전통을 여전히 따랐던 위대한 예술가들의 목록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에 저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현대미술계와 미술 시장의 공식적인 담론을 반박하는 ‘대안적인’ 20세기 미술사를 제시한다. 주류 미술계에서 외면받으면서도 세계의 재현과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위대한 예술가들의 역사, 그런 예술가들이 서로를 알아보며 일궈 온 진정한 미술사의 궤적을 탐색해 나간다.

사실 사람들은 현대미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건 우리에게 현대미술을 이해할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진짜 이유는 현대미술에 있다. 고전 예술,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흔쾌히 즐기는 이른바 대중예술을 보라. 이들은 현실을 하나의 작품으로 재창조함으로써 세계의 숨은 일면과 아름다움을 전달하려 한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반대로 세계와 무관한 개념적이고 형식적인 것(예컨대 커다란 사각형이나 줄무늬), 아름답지 않은 것(소변기, 잘린 성기), 예술과 무관해 보이는 것(통조림, 벽에 붙인 바나나)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대미술을 싫어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저자는 자신에게 솔직해지자고, 미술계와 미술 시장의 ‘사기’에 더 이상 속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이 책에서 저자가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은 무척이나 고전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재현)을 끌어들이고, 서사나 운율, 찬미, 아름다움이란 전통 미학 개념을 통해 예술적 가치를 판단한다. 동시에 그는 현재 미술계와 미술 시장을 지배하는 담론, 즉 이들이 벌이는 사기의 핵심을 ‘미술의 진보에 대한 신화’ 혹은 ‘20세기 공식적인 미술사’라 부른다. 이에 따르면, 예술이 19세기 말 인상주의부터 20세기 개념미술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이전 세대의 해체와 전복의 연속이며, 재현이나 아름다움과 같은 고전 개념은 물론 작품이나 예술가란 개념 자체도 모조리 파괴해 나가는 여정이었다. 아방가르드의 물결로 표현되는 이 과정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었고, 인류 사회와 지적 능력의 발전에 발맞춰 예술 역시 새로운 지평선에 도달하는 과정이었다. 이전 세대의 죽음과 폐허로부터 태어난 현대미술(예술)은 예술을 세계로부터, 작품으로부터, 예술 자신으로부터 해방했으며, (비로소) 예술가는 창조주요 연설가, 새로운 영적 지도자로서 한순간 번뜩인 아이디어 혹은 층층이 덮인 해석과 수만 장의 비평으로 무지한 사람들을 일깨우는 이가 되었다.

저자는 이 ‘공식적인 역사’가 오늘날 예술에 대한 불쾌감을 사소하게 만들고, 그에 대한 대중의 거부를 오히려 자기 존재의 정당성으로 삼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중이 현대미술을 싫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현대미술은 언제나 과거를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가지만, 사람들은 익숙한 걸 좋아하는 법이니까. 이런 건 예술이 아니란 반발도 마찬가지다. 반 고흐조차 당대에는 외면받았으며, 우리는 그의 명작을 알아보지 못했던 19세기 사람들을 동정한다. 현대미술의 세례를 받지 못한 채 과거에 사로잡혀 인류의 새로운 예술적 도약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여, 무엇이 진정한 예술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심판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묻는다. 19세기를 기점으로 고전 예술은 정말 낡은 것이 되었나? 요컨대 예술이 세계를 재현하고, 예술가가 엉덩이가 닳도록 대상을 관찰하거나 작업장에 처박혀 그림을 연습해야 한다는 건 고리타분하고 시대착오적인 생각일 뿐인가?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를 싫어하는 것이 반 고흐를 싫어하는 것과 똑같은가? 예술 작품은 역사적 흐름 속에서 온전한 의미와 가치를 획득하는가? 오늘날 모든 예술가는 해방된 존재로서 자유를, 최소한 이전보다 더 누리는가? 예술의 진보는 되돌릴 수 없고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으며, 모든 예술가가 그에 동참했는가?

저자는 작품의 감상과 예술가의 가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가 아니라 역사의 흐름과 무관하게 나타난단 점을 논의하고, 고전 예술 양식은 마이너 예술을 피난처로 삼았으며 오늘날 이들이 누리는 성공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일 것임을 지적한다. 아울러 20세기 미술사의 신화를 이루는 핵심 ‘토템’인 뒤샹, 피카소, 개념미술 등의 의미를 다시 살피고, 이들이 생각만큼 견고하지도, 생각만큼 공식적인 역사를 지지하지도 않음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피카소나 모네처럼 자신들의 이름이 걸린 아방가르드 운동보다 훨씬 오래 예술계에 남아 계속 활동했던 이들, 아방가르드 운동에 참여했다가 다시 고전 예술 양식으로 되돌아온 이들, 어떠한 아방가르드나 역사적 과정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뛰어난 예술 작품을 남긴 이들을 하나씩 지적한다.

이 과정을 통해 저자는 공식적인 미술사가 거짓임을 선언하고, 새로운 20세기 미술사를 제시한다. 이는 세계의 재현과 아름다움의 추구란 예술의 본질을 잊지 않으며 끝없는 노력으로 솜씨를 갈고닦아 고전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여러 작품을 남긴 진정한 예술가들의 역사, 예술의 해방이란 최종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적 능력이 변모하며 나타나는 과정으로서의 미술사다. 그가 이 역사를 발견하여 재구성하는 데 있어 핵심 구호는 “진짜는 진짜를 알아본다”로 축약된다. 

요컨대 비평가나 역사학자가 아니라, 예술가들 스스로가 찬양하고 수집했던 선대 예술가들, 그리고 그 예술가들의 작품을 다시금 사랑하고 찬미했던 후대 예술가들로 이어지는 긴 사슬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 사슬은 보나르, 뷔야르, 모란디, 호퍼, 발튀스, 피카소와 마티스, 프로이트 등을 포함하며, 자코메티를 기점으로 현대로 이어진다. 물론 과거에도 뛰어난 관찰자와 감식가, 조예 깊은 수집가와 비평가 등 예술가가 아닌 소수의 이들 또한 이 역사를 알고 있었으며, 저자는 이들을 또 다른 현대미술의 증인으로 삼는다.

오늘날 사람들이 예술을 대하는 자세를 결정짓는 것은 작품과 감상자일까, 아니면 그를 둘러싼 비평과 시장 논리일까? 저자는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 결정하는 것은 이론이나 가격, 비평가, 무엇보다도 역사의 판단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 자신이 감동하고, 매일 즐기고 감상하고 싶은 작품이면 충분하니까. 물론 이 책에서 저자가 내세우는 전통 미학과 미적 기준이 AI마저 동참한 오늘날의 예술에 적절하리란 보장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지금 미술계가 추앙하는 작품들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으리란 점이다. 이 책은 그런 이들, 즉 제도와 사상, 관습, 시장 논리, 허영심과 유행을 넘어 보다 유연하고 진솔하게 작품을 감상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