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경이와 우주의 아름다움을 담은 도킨스의 책에 대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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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경이와 우주의 아름다움을 담은 도킨스의 책에 대한 책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11.2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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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 | 리처드 도킨스 지음 |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640쪽

 

‘과학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과학자이자 저술가 리처드 도킨스가 그동안 감탄하며 읽은 책들에 대해 쓴 서문과 후기, 에세이, 서평, 대화 등을 한데 모은 책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글을 썼을까? 우선 각 장의 서두는 닐 디그래스 타이슨, 스티븐 핑커, 로렌스 크라우스, 매트 리들리 등 세계적 석학들과의 대화로 시작된다. 자연에 대한 찬사, 인간에 대한 탐구, 신앙에 대한 질문 등 진화론·자연선택·과학철학·종교를 아우르는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이어서 도킨스의 ‘인생 책’들이 펼쳐진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부터 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프레드 호일의 《검은 구름》, 댄 바커의 《신은 없다》까지 과학책, 과학소설, 무신론자의 회고록까지 다채롭다. 

리처드 도킨스와 함께 대담을 나누는 상대는, 이름만으로도 어떤 대화가 펼쳐질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람들이다. 칼 세이건의 후계자라 불리는 천체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작가이자 언론인 크리스토퍼 히친스, 이론물리학자 로렌스 크라우스, 저널리스트 매트 리들리, 과학 해설자이자 방송인 애덤 하트-데이비스가 바로 그들이다.

뉴욕 자연사박물관의 헤이든 천체투영관 관장 닐 디그래스 타이슨과의 대담은 이 책의 전반적인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신비주의적·초월적 의식에서 벗어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생각하는 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의 대화를 통해 과학적 지성의 표본을 만날 수 있다. 데이비스와의 대담은 도킨스가 “내가 그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한 수백 개의 인터뷰 가운데 내 과학 인생을 가장 간결하게 요약한” 인터뷰라고 고백했을 만큼 특별하다. 이 글에서 우리는 도킨스의 학술적 성과를 대표하는 핵심 개념인 ‘이기적 유전자’와 ‘확장된 표현형’, 그리고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다윈과 DNA’에 관한 매트 리들리와의 대화도 흥미롭다. 이 책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대화로, 여기서 두 사람은 ‘유행이 진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지’, ‘다윈의 이론도 언젠가는 대체될 것인지’ 등 진화에 관한 다채로운 논의를 이어나간다.

이들 대담의 가장 큰 특징은 각 장의 주제를 성찰하고 그것을 우리 시대의 시급한 과제와 연결한다는 점이다. 과학은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음악을 감상하는 방식으로 과학을 감상할 수 있을까? 마음은 키워질 뿐만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기도 할까? 왜 우리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할까? 기독교가 서양에서 힘을 잃으면 이슬람교가 그 자리를 대체할까? 종교인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등의 문답이 심도 있게 펼쳐진다. 근본 주제에서 파생되어 끊임없이 이어지는 다양한 질문들이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풍성하게 채운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대화를 경청하고 나면, 본격적인 책의 세계로 들어선다. 도킨스에게 칼 세이건은 ‘현명하고 인간적이며, 재치 있고 박식한’ 우상과 같은 존재다. 세이건의 수많은 책들 가운데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가장 좋아한다고 고백한 그는 이 책에 대해 “나는 책을 읽을 때 특별히 마음에 드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 습관이 있는데, 이 책은 잉크가 아까워 밑줄 긋기를 그만두었다. 과학이 주는 선물 중 하나는, 세이건의 말을 빌리면 ‘헛소리 감지 장치’다. 그의 책은 이 장치의 사용설명서”라고 평하며 일독을 권한다. 또한 로렌스 크라우스의 《무로부터의 우주》에 대해서는 “《종의 기원》이 생물학이 초자연주의에 가한 최후의 일격이었다면, 이 책은 우주론이 가하는 최후의 일격”이라며 그 의미를 되짚는다.

도킨스가 오랫동안 사랑해온 과학소설도 등장한다. 바로 대니얼 갤루이의 《암흑 우주》와 프레드 호일의 《검은 구름》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한다고 밝히며 “과학을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게 해주는”, “과학을 가르쳐줄 수 있을 역량을 지닌 최고의 책”이라고 극찬한다. 제프 호킨스의 《천 개의 뇌》에 대해서는 “뇌가 민주주의를 한다고? 합의하고 심지어 논쟁도 한다고? 정말 놀라운 발상 아닌가! 포유류인 인간은 뇌 모델들 사이에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분쟁의 희생자다”라고 평하면서 이 책을 자기 전에 읽으면 “머릿속이 흥미진진하고 도발적인 아이디어로 소용돌이쳐” 잠들 수 없으니 주의하라고 위트 섞인 경고를 날리기까지 한다.

도킨스는 로버트 액설로드의 《협력의 진화》의 열렬한 전도사로도 불린다. 자신의 수업을 듣는 옥스퍼드의 모든 학생들에게 이 책에 대한 에세이를 필수적으로 쓰게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세계 지도자들을 이 책과 함께 가둬놓고 다 읽을 때까지 풀어주지 말아야 한다. 그들에게는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고, 나머지 우리에게는 구원이 될 것이다”라고 평한다. 그 외에도 이 책에는 존 듀랜트의 에세이 모음집 《인간의 기원》, 아트 울프의 야생동물 사진집 《살아 있는 야생》, 존 메이너드 스미스의 《진화란 무엇인가》, 베일리 해리스와 더글러스 해리스의 《내 이름은 별부스러기》 등 매혹적인 과학 안내서들로 가득하다.

물론 비판과 악평도 있다. 그러나 도킨스가 거는 ‘싸움’은 신랄하면서도 우아하고, 유머와 풍자로 빛난다. 예를 들어, 지구가 기원전 8000년 전에 갑자기 생겨났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작가에 대해서는 “이구아노돈을 훈련시켜 스톤헨지로 돌을 운반하게 했을까?”라고 비꼰다. 지적 설계 선전가인 마이클 비히의 책은 “포기한 사람의 책이다. 스스로 만든 지적이지 않은 설계를 따라가다가 그곳에 영영 갇혀버려 이제 탈출할 여지마저 잃었다”고 혹평한다. 그러면서 ‘변형을 동반한 계승, 자연선택, 그리고 변이’라는 다윈주의 이론을 들어 그들의 주장을 낱낱이 논파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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