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이 왜 필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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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이 왜 필요하지?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3.11.2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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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명 교수의 〈생활에세이〉

 

                                                      사진 출처: College Reality Check

나는 외교학과 출신이다. 외교학이란 것이 공식적으로 있는 것은 아니고 학문적으로는 보통 국제정치학이라고 한다. 정치학의 한 분과인데 미국 정치학에서는 정치학의 하위 분과로 정치이론, 사상, 국제정치학, 비교정치학, 정치경제학, 한국(각국) 정치학 등으로 분류한다. 유럽에는 그런 분류가 없는 것 같고 한국에서는 대체로 미국의 분류를 따른다.

나는 외교학과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하였지만, 미국으로 유학 가서는 비교정치학 공부를 주로 하고 한국과 브라질, 페루, 이집트 군사 정권들의 흥망을 비교하는 박사 논문을 썼다. 당시 한국에서 그런 전공을 한 사람이 없었기에 귀국하자마자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이후에는 한국 정치를 알아야 한다면서 한국 현대 정치사를 정리하는 저술을 주로 하였다.  

그런데 은퇴한 지금에 와서는 정치학이 뭐 하는 학문인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정치학은 사회과학의 한 분야인데, 사회과학은 사회의 여러 현상들을 분석하고 예측하고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그래서 정치학은 정치의 여러 현상들을 분석하고 예측하고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을 한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기 위해 굳이 정치학이 필요할까?

언론에 나와서 한국 정치의 여러 현상들을 분석, 예측하고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치학을 전공하지 않은 변호사, 언론인들이 제일 많다. 그리고 그들이 한국 정치의 여러 현상들을 곧잘 분석하고 예측하고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내가 거기 나가서 그보다 더 잘 할 수 있을까? 가끔 정치학 교수들도 나와서 같은 일을 하는데, 정치학 교수 아닌 사람보다 그 일을 더 잘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건강 프로그램에는 의사가 나오고 운동 프로그램에는 운동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나오고 경제 프로그램에는 경제 전문가가 나오는데, 왜 정치 프로그램에는 비전문가가 나와도 아무 문제가 없을까? 정치학이란 학문이 과연 필요할까? 전문가들의 밥벌이나 호사가들의 취미 활동을 제외하고 말이다. 선거 분석 같은 것은 정치학자의 전문 분야 같은데, 이 또한 조사 전문가들도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래도 정치학자들은 그들보다는 더 “구체적인” 현상을 “더 깊이 있게” “더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런데 언론의 비정치학자들도 한국 정치의 매우 구체적인 부분들에 대해서 토론한다. 그리고 더 깊이 있다는 말은 무엇일까? 더 세밀하고 구체적이란 말과 과연 다를까? 더 체계적이란 것은 좀 더 학문적인 것 같다. 여러 현상들을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설명하지 않고 다른 여러 현상들에 빗대거나 분류하거나 개념을 만들거나 분석의 틀을 만들거나 하는 일이다. 이런 일이 그나마 정치학을 학문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정치 현상의 설명, 예측, 분석, 처방에 이런 “체계적”인 작업이 반드시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정치학이 존재하지 않았던 200년 전에는 (물론 당시에도 정치사상은 있었다) 정치에 대한 이해가 과연 지금보다 훨씬 더 열등했을까?

나는 박사 논문에서도, 이후의 한국 정치변동 연구에서도 내 나름대로의 분석틀을 만들어서 독창적이라 스스로 자부하는 연구를 하였지만, 사람들은 그 분야나 내용의 필요성에만 주목했을 뿐 아무도 그 “독창적”인 분석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실상 내 연구의 내용에 그  분석틀이 반드시 필요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긴 학자 아니고는 그 주제를 단행본 분량으로 정리할 사람이 없을 것이므로 그 부분이 학자의 몫이기는 하겠다. 

일흔이 된 지금에 와서 정치학이 왜 꼭 필요한지 의문스러운 것은 내게 병이 생겼다는 말일까? 언제 한번 큰 서점에 가서 정치학 개론서를 찾아보고 요새 정치학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다. 십중팔구 귀찮아서 안 하고 말 것이지만.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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