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시간만 소정근로시간으로 인정?”…교원 지위에 맞는 근로조건과 처우 보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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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시간만 소정근로시간으로 인정?”…교원 지위에 맞는 근로조건과 처우 보장해야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11.2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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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토론회]

 

                  23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학 강사의 근로 시간과 소정근로시간’ 토론회

대학 강사가 수업 외 업무에 대한 노동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기존 법원 판례는 대학 강사의 근로 시간 외에 수강생 평가, 강의 연구 등 행정업무 등을 인정해 왔으나, 지난 1월 이를 뒤집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퇴행적 판결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23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2간담회실에서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은주 정의당 의원,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 공동주최한 ‘대학 강사의 근로 시간과 소정근로시간’ 토론회가 열렸다.

대학 강사의 소정근로시간(所定勤勞時間)은 대학 내 각종 차별에 신음하는 강사들에게 퇴직금, 주휴수당, 연차수당, 직장건강보험 적용 등 각종 사회보장 혜택 적용 여부를 가름하는 중요한 변수이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제18조제3항에는 소정근로시간이 1주 평균 15시간 이상인 노동자만 주휴수당과 연차수당을 설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근로자퇴직금여보장법 제4조제1항에는 소정근로시간이 1주 평균 15시간 이상인 노동자만 퇴직금을 적용받을 수 있다. 또한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제9조제1항에서는 1개월간 소정근로시간이 60시간 이상인 노동자만 직장건강보험 가입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소정근로시간은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서 정해진 노동 시간을 말한다. 대학 강사가 대학과 맺는 임용계약에서도 원칙적으로는 소정근로시간을 정해야 하는데, 계약서에는 통상 강의시간만을 지정해왔다. 강의시간이 아닌 시간에 강사는 강의준비와 학생평가 및 상담을 수행해야 하며, 강의의 질적 하락을 막기 위해 연구자로서의 임무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강의시간이 아닌 시간에 수행하는 노동을 측정할 적당한 방법을 찾지 못해 강사의 임금을 강의시간 기준으로 계산하는 방편이 정착된 것일 뿐, 강의시간이 소정근로시간인 것은 아니다. 

기존 법원의 판례는 대학 강사의 경우 강의 외 업무시간을 포함하여 소정근로시간을 산정해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강의시간의 3배를 소정근로시간으로 평가해야 한다거나 강의 외 업무시간을 함께 고려하는 전임교원과 시간강사를 달리 볼 이유가 없다는 등의 판단). 

의정부지방법원은 2012년 10월5일 판결에서 “시간강사의 근로 시간을 반드시 강의시간에 한정할 수 없고 한 주당 강의 시간의 3배로 봐야 한다”라고 판결한 바 있으며, 교육부에서도 기존 법원 판결을 근거로 대학에 안내하는 매뉴얼에서 강사의 퇴직금 지급 기준을 주 5시간 이상으로 정하고, 강사의 퇴직금 지원예산을 책정하여 각 대학교에 지원한 바가 있다.

그런데 2023년 1월 27일 서울고등법원은 기존 판례 법리와 달리 대학 강사의 소정근로시간을 임용계약서에 기재된 ‘강의시간’으로 한정하는 퇴행적 판결을 내려(2022나2011720) 대학 현장에 상당한 혼선과 파장을 야기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대학은 기존 판례 법리에 따라 퇴직금을 지급한 상황에서 위 고등법원 판결이 선고되자 지급한 퇴직금을 부당이득이라며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하는 상황이다. 

현재 서울고등법원 판결 사건은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기간이 도과하여 심층적인 법리 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이처럼 대학 강사의 근로시간과 소정근로시간은 이들의 초단시간근로자 여부 나아가 이들의 노동조건을 결정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이번 토론회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현행법상 강사의 근로시간과 소정근로시간을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다각도의 논의를 통해 위 판결에 대한 합리적 반박과 법률적 대안을 모색하고 강사의 노동조건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자 기획됐다. 

 

□ 노동법 전문 학자와 현장 전문 변호사 및 당사자인 비정규교수들이 참여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대학 강사의 근로 시간을 계약서에 표기된 강의 시간만 인정한 지난 1월27일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제기됐다. 대학 강사의 강의 시간 외 준비 시간 등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온 기존 판례를 퇴행시켰다는 것이다. 

대학 강사는 강의 시간 외에도 수업 준비, 학생 면담, 평가 등 시간이 필요하다. 정영훈 부경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한 대학의 강사임용계약서를 보면 ‘을에게 지급되는 시간당 강의료는 담당 교과목의 수업계획서 작성 및 공지, 수강생에 대한 평가와 성적 제출, 담당 교육 분야에 대한 학습 상담 및 지도 등 강의에 부수되는 시간에 대한 대가’를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학 규정에 따라서 하는 업무는 강의 시간에 할 수 없고, 강의 시간 외에 이뤄져야 하기에 이는 ‘소정근로시간’에 해당한다”며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강의 외 근로를 소정근로시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이라 비판했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도 “대학 시간강사의 근로는 강의 시간 외에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라며 “근로계약서에 추가 근로 시간에 대해 명시돼 있지 않은 것은 대학 강사가 도급제 임금을 받는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대학과 강사 간의 소정근로시간에 대한 묵시적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봐야 한다”라며 “소정근로시간이 몇 시간인지 판단하는 것은 법원의 역할”이라 꼬집었다.

강사표준계약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재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대학 강사 소정근로시간에 강의 시간과 강의 외 준비 시간, 행정 업무 등을 포함하는 것이 타당하며 강의 시간의 3배 이상을 근로 시간으로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강사의 소정근로시간을 명확하게 규정한 뒤 강사표준계약서를 마련해 각 대학에서 공통으로 사용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 강사 지위에 맞는 처우 개선도 필요하다. 김 교수는 “강사는 고등교육법상 교원의 지위를 인정받았지만,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 적용에 있어서는 교원으로 보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형식적인 교원의 지위만 법 문구로 인정받았을 뿐 지위에 부합하는 내용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교원 지위에 맞는 근로조건과 처우를 보장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학 강사의 근로 시간과 소정근로시간’ 토론회<br>
                  23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학 강사의 근로 시간과 소정근로시간’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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