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투쟁의 한계와 진정한 승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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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투쟁의 한계와 진정한 승리의 길
  • 김일규 강원대학교 글로벌인재학부 교수
  • 승인 2023.11.23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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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교수들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이 법으로 보장된 이후 전국의 교수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급격히 열악해지는 처우를 개선하고 교권을 지키기 위해 분투 중이다. 물론 노동조합이 없을 때보다 나아진 측면이 없지 않으나 그 성과는 미미한 것이 현실이다. 수많은 대학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한 교수에 대한 부당한 억압과 차별을 서슴지 않고 있으며, 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을 대놓고 거부하거나 해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사유화 정도가 심한 대학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하다. 대학의 사용자가 노동조합을 이토록 우습게 여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일반 노동자와는 달리 교수들에게는 단체행동권이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 제도적 한계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근본적이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반 교수들은 물론이고 노동조합에 가입한 교수들조차 대부분 학교의 부당함에 법적 대응으로만 일관한다는 것이다. 다른 방식은 접어둔 채 법적 대응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교수들의 ‘순진함’과 ‘온순함’이다. 학교의 부당한 대우에 법적으로 대응을 하면 승소할 것이고 승소만 하면 학교가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할 것이라는 ‘순진함’과 법적 대응을 넘어서는 보다 실천적인 투쟁을 부담스러워하고 두려워하는 ‘온순함’이 교수들을 법에만 의존하게 만들고, 그것이 학교가 교수들의 노동조합을 마음껏 탄압할 수 있는 근본 원인이다. 

교수들의 순진함과 온순함은 ‘해고’라는 최악의 탄압 상황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부당한 이유로 재임용을 거부당하거나 해직된 교수들이 가장 많이 하는 선택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청구를 하는 것이다. 다행히 학교 측의 잘못이 명백하면 소청위는 대개의 경우 교수의 손을 들어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한가. 대부분의 학교는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고 피해 당사자에게 진정으로 사과하기는커녕 불복 상소를 통해 시간을 끌며 계속해서 피해자를 괴롭히거나 대놓고 다시 해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청심사뿐만 아니라 학교를 상대로 한 민사, 형사 소송 등에서 교수가 이기더라도 학교 측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다. 돈과 권력을 거머쥔 사용자 측은 법적으로 불리한 판결을 충분히 무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심지어 돈과 인맥을 사용하여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항고심에서 뒤엎어버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따라서 법적인 소송에만 의지하는 교수들을 학교는 전혀 겁내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교수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노동조합이 강해지는 것이다. 노동자 개인은 돈과 권력 모두를 가진 사용자에 비하면 한없이 약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최고 규범인 헌법에서 노동3권, 즉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노동자는 혼자서는 자본가와 상대가 되지 않으니 함께 모여 조직을 만들고, 한꺼번에 같이 요구하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함께 투쟁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학교의 부당함에 맞서는 방법이 개인의 법적 대응뿐이라면 사실 노동조합은 전혀 필요가 없다. 법적 대응에 필요한 것은 오로지 소송비용뿐이다. 변호사를 선임할 돈만 있으면 노동조합은, 그리고 피해 당사자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변호사가 나를 대신해 학교와 싸워주며 싸움의 승패는 제3자인 판사의 결정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합원들이 법적 투쟁만을 고집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를 없애버리는 것이며 결국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학교에서 가장 바라는 바이다. 조합원들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자신들의 뜻대로 마음껏 학교를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의 판결은 부수적인 것일 뿐 노동조합 활동의 본질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렇다면 학교가 두려워할 정도로 강한 노동조합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노동조합의 힘은 개별 조합원이 가진 힘의 합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합원 수가 많을수록, 그리고 조합원 한 명 한 명의 힘이 강할수록 노동조합의 힘도 강해진다. 조합원 수와 개별 조합원의 힘 중 더욱 중요한 것은 후자이다. 순진하고 온순한 조합원은 아무리 많아도 큰 힘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개별 조합원의 힘은 법적 소송에서 이긴 횟수로 결정되지 않는다. 법과 제도에만 의지하는 얌전한 조합원이 아닌, 필요하다면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학교에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와 동지의 희생과 고통을 기꺼이 함께 짊어지려는 의지를 가진 조합원이야말로 진정으로 강한 조합원이고 그런 조합원이 많을수록 노동조합이 강해지는 것이다. 학교는 바로 그런 노동조합을 불편해하고 두려워한다. ‘단결’과 ‘연대’는 형식적으로 외치는 낡아빠진 구호가 아니라 학교의 탄압에 맞서 교수들의 교권과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이면서 동시에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11월은 전태일 열사 정신을 계승하는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는 달이다. 전태일 열사가 더 이상 자본의 노예로 살지 않기로 결심한 순간 느꼈을 해방감을 우리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전태일 열사가 물질적인 안락함을 포기함으로써 누렸을 진정한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우리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두려움과 비겁함을 극복하고 주체적인 자유인으로서 나의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부당한 억압과 차별에 당당히 맞설 수 있게 된다. 법 뒤에 숨어 변호사와 판사가 내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길 바라는 나약함 대신 정의로운 투쟁을 막기 위해 권력이 그어놓은 법이라는 선쯤은 가볍게 넘을 수 있는 용기로 무장한 교수 노동자가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김일규 강원대학교 글로벌인재학부 영어전공

• (현) 위원장/강원대학교
• (전) 전국교수노동조합 강원지부장
• (전) 민교협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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