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종연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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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룡 논설위원/부산대학교·철학
  • 승인 2023.11.1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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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룡 칼럼]

조선 후기의 인구는 약 천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당시의 조선은 남북으로 분단된 나라가 아니니, 지금의 5천만 남한 인구는 실로 엄청난 숫자다. 분명 지금의 인구는 너무 많고, 그래서 어떤 이는 작금의 저출생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의 저출생은 젊은 층이 급격하게 감소한다는 말이고, 이는 곧 노령 인구의 증가를 의미한다. 내년이면 노인 인구만으로도 천만 명이니, 지금의 사회 시스템은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망했다는 말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한국의 시스템은 유지되지 못할 것인데, 동남아 역시 저출생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 아프리카에서 노동자들이 와야 할 것이고, 조선시대 때 여진족을 백정으로 삼았듯이 이들은 천민 취급을 받을 것이고, 인종차별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정부는 지역소멸과 노동자 부족을 외국인 노동자 유입으로 대응한다고 하지만, 일등 국민과 이등 국민 간의 갈등이 심화할 것이다.

저출생은 곧 학령인구 감소를 의미하는데, 정부와 대학의 대책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대학과 학과의 통폐합, 그리고 해외 유학생 유치뿐이다. 교육부는 외국인 유학생을 늘려 지방 소멸과 지역 대학의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해외 유학생들은 혐한파가 되어 돌아간다. 유럽과 미국으로 유학 간 한국인 유학생들은 친미파가 되고 프랑스와 독일을 열심히 찬양했는데, 한국은 안팎으로 망하고 있다. 안으로는 학술생태계 붕괴로, 밖으로는 반한 감정의 증가로.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도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으니, 이는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고, 지역의 대학은 '지잡대'로 간주되니, 대학 진학을 기점으로 지역을 버리고 젊은 층들이 모여든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59가 되었다. 한국 사회가 지속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차별 철폐가 될 것이고, 그 우선적인 과제는 지역 대학과 수도권 대학의 균형 발전이다.

지역의 대학을 살리자는 것은 지역의 교육과 연구를 살리자는 것이고, 교육과 연구는 사람이 하는 것이니 교육과 연구를 하는 사람을 살리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데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 살아남는답시고 당장의 성과를 위해 사람을 갈아 넣고 있다. 대학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의 교원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 교원확보율은 놀랍게도 학생 수로 결정된다. 학생들이 들어오지 않는 학과는 교원을 임용하지 않는다. 대학의 학과를, 한 나라의 학문을 담당할 학자와 연구자를 결정하는 기준이 다른 무엇도 아닌 그 학과에 들어온 학생 수다. 학생이 없으면 그 학문도 필요 없는가? 취업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학생 수로 연구자의 수를 결정함으로써 학술생태계는 파괴되었다. 

학문의 필요에 따라, 사회의 요구에 따라 학자와 연구자가 있어야 하고, 정부와 대학은 그러한 필요와 요구에 따라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할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시급한 일이 대학의 강사들에게 국가에서 기본급을 지급하는 일이다. 이들이 안정적으로 교육과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학술생태계가 겨우 유지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체 대학의 80%가 사립대학인데, ‘대학의 자율성’ 운운하면서 사립대학에 맡겨버린 결과가 학술생태계 붕괴였다. 대학의 강사들만이라도 우선적으로 국가에서 책임지고 그 고용과 임금을 보장하여 대학원을 살려야 한다.

교육과 연구가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점을 정부는 자꾸 잊는다. 국가에서 연구비를 지원하는 방식은 사람이 아니라 사업이 주체가 되는 방식이다. 연구자들은 어느 직종보다 자율성을 중시하는 자들인데, 그것이 학문의 자유인데, 자신을 사업의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데 동의하지 못한다. 사업에 돈을 주는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 정부의 연구지원사업은 일회성 사업이란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이 사업이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추진하는 라이즈의 성공 여부도 여기에 달려 있을 것이다. 교육부의 권한을 지자체에 넘기겠다고 하지만, 라이즈가 성공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자체로 갈수록 학술연구는 눈앞의 가시적인 성과를 우선시하는 이벤트성 사업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문은 국가적인 차원의 일인데, 이를 지자체로 넘기겠다는 것은 결국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 회피가 될 것이다.

교육부는 글로컬 사업을 지방대 살리기의 핵심 사업이라 말하지만, 오히려 지방대 위기를 가속할 것이다. 글로컬 사업에 선정된 대학을 통해 교육부는 자신들이 거점국립대만 남기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제 지역의 국립대들은 거점국립대와의 통폐합에 내몰리게 되었고, 지역의 사립대는 학과 통폐합에 목을 매달 것이다. 지역의 대학들은 교육부의 정책을 바꾸기 위해 연대하여 함께 싸우는 길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라는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하였다.

중국의 전국시대에 소진의 합종책을 따라 6국이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자, 진나라는 장의의 연횡책으로 6국의 각 나라와 개별적으로 동맹을 맺어 6국의 연합을 무력화시켰다. 6국의 군주들은 다른 나라들과 함께 힘을 합쳐 진나라와 싸우기보다 비록 멸망하더라도 마지막에 멸망해야 한다는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역의 대학들은 글로컬 대학에 선정되기 위해 명운을 건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합종책으로 정부에 저항했어야 했다. 그들은 정부의 연횡책에 의해 모두 죽을 것이다. 벚꽃 피는 순서를 따라 죽지 않고, 한꺼번에 죽을 것이다. 벚꽃이 한꺼번에 떨어지듯이.

 

이상룡 논설위원/부산대학교·철학

부산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사. 부산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대학 개혁, 특히 비정규교수의 노동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비정규교수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다. 「의사소통과 일치」, 「해명·치료·언어투쟁」, 「비트겐슈타인 삶의 방식의 변경」, 「대학 구조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벼랑 끝 비정규교수」, 「대학의 신자유주의적 고용구조」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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