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한 언리얼로 언리얼한 리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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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한 언리얼로 언리얼한 리얼을”
  • 유원준 영남대·예술학
  • 승인 2023.11.19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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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예술과 메타버스의 만남』 (유원준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136쪽, 2023.10)

 

미국의 게임회사 에픽게임즈(Epic Games)는 자사의 실시간 3D 제작 도구인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 / UDK : Unreal Development Kit)’의 한국어 버전을 공개하며 위와 같은 홍보문구를 내세웠다. 흡사 말장난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문구는 일차적으로 언리얼 엔진이 지닌 기능들을 광고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지만 좀 더 진지하게 성찰해보자면, 앞으로 다가올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적 미래가 매우 현실적인 모습으로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움을 지시하는 동시에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정작 현실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말이기도 하다. 

최근 인터넷과 컴퓨터, 모바일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기업들의 주요한 관심사는 이와 같은 메타버스를 구현하는 기술적 장치 및 그와 연동되는 프로그램에 있다. 지난 2022년 사명을 ‘메타(Meta Platforms Inc.)’로 바꾼 ‘페이스북(facebook)’을 시작으로 ‘애플 비전 프로(Apple Vison Pro)’라는 일종의 ‘혼합현실(MR)’ 기기를 발표한 ‘애플(Apple Inc.)’ 그리고 최근 인공지능 및 가상현실/증강현실 기술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의 기업들까지. 기술 시장의 이러한 동향은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 세계에서 메타버스라 불리는 사이버 공간의 중요성이 더욱 증대되고 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특히, 지난 2019년 창궐한 ‘코로나(COVID-19)’로 인한 팬데믹(Pandemic) 사태 이후, 전 세계인들은 직접 얼굴을 맞대지 않고도 현실의 다양한 활동들이 대체될 수 있음을 경험하였다. 온라인에 기반을 둔 비대면 환경은 단순한 현실의 대체재를 넘어 그 자체로 우리의 활동이 가능한 세계로 인식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메타버스 개념은 전 세계에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잘 알려진 것처럼 메타버스의 개념은 1992년 발표된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소설 『스노 크래시 SNOW CRASH』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사이에, 뒤에, 다음에, 넘어서’ 등의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μετά’에서 유래한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지칭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인 메타버스는 말 그대로 ‘현실세계를 넘어선 세계’, ‘현실을 초월한 세계’ 정도의 의미로 풀이된다. 메타버스로 상징되는 ‘다른’ 세계로의 이동은 과거로부터 인간의 근본적 욕망으로 발현되는 매우 익숙한 개념이기도 하다. 현실이 전제하는 기본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는 현실을 초월한 세계는 그 자체로 유토피아적 이상향으로 그려졌다. 

때로는 현실에 대한 불안감과 불만으로부터, 또 다른 경우에는 현실의 대안적 세계로서의 메타버스는 이러한 까닭에 고대 철학자인 플라톤(Plato)이 유비적으로 서술한 ‘이데아(Idea)’ 개념과 닮아있다. 플라톤은 이데아 개념을 통해 우리의 세계가 실재(實在)가 아닌 그것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이미지의 세계일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의 유명한 ‘동굴의 비유’는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동굴 속 세계의 모습이 다름 아닌 우리의 현실이며 따라서 진정한 세계는 동굴 밖의 세계, 즉 이데아로 명명되는 ‘다른’ 장소임을 설명하는 것인데, 진정한 현실 세계와 그것을 모방한 세계라는 원본과 복제의 유비적 구도는 현실과 다른 세계로서의 메타버스에 관한 은유로 작동한다. 

최근 메타버스에 관한 일반적인 이해는 일종의 ‘가상현실(VR : Virtual Reality)’로서의 현실, 우리가 마주하는 실제 세계의 대체재로서의 의미로 집약된다. 가상현실은 가상과 현실이라는 두 개의 단어로 조합된 합성어이다. 가상은 한자어로 거짓 ‘가(假)’와 형상을 의미하는 ‘상(象)’으로 구성된다. 풀이하자면 ‘거짓된 상’ 정도가 되는 것인데, 이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 이해해 보자면, 가상현실이란 말은 그 자체로 모순적 상황을 지시한다. 

기술 매체에 의해 파생되는 가상현실은 그 본질이 비물질적 정보로 환원되기에 물질적 대상으로 현실 존재를 한정시킬 경우, 현실 및 실재의 범주 속에 포함되기 어렵다. 그러나 기술 매체가 지닌 가상성은 우리의 생활환경 속에서 다양한 현상으로 실재한다. 이제 우리는 가상적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를 마주하며 소통하고 일하는 동시에 유희한다. 따라서 이러한 활동을 매개하는 기술 매체의 속성이 아무리 가상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만들어내는 현상은 부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메타버스는 가상성에 근거하여 현실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로서 실존한다. 

해당 속성을 경유하여 메타버스를 관찰해보면 필연적으로 그것이 지닌 예술적 속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 출현하였고 이후 현실의 틈새를 통해 조금씩 그 영역을 확장해왔다. 현실 존재의 가상적-재현적 대상인 ‘아바타(avatar)’를 만들었으며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결합하여 가상적 환경 속에서 마치 생명체처럼 자기 스스로 증식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는 과거 예술이 주로 담당해왔던 영역이기도 하다. 예술은 우리 세계의 모방적 이미지로 출현했고 현실의 거울로서 때로는 감상자들에게 위안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만약 예술의 근본적 속성에서 가상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 예술 개념 속에서 메타버스의 의미가 도출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만약 메타버스가 현실을 재현하여 그와 유사한 경험을 제공하거나 혹은 현실과는 다른 장소로서의 의미를 동일한 전제로부터 만들어가고 있다면, 예술과 메타버스는 몰입적이고 포괄적인 이미지 공간을 기본 전제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긴밀하게 조우한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원시시대의 동굴벽화는 인류 최초의 메타버스이자 적절한 (메타버스) 예술의 사례로 예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디지털 기술이 활용된 메타버스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례는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등장하였다. 인터넷과 같은 네트워크 기술 및 컴퓨터를 이용한 그래픽 인터페이스의 개념이 보편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하였고 이와 더불어 앞서 언급했던 HMD를 활용하여 다른 세계로의 이동을 작품의 주요한 내용으로 제시하는 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로 ‘VRML(Virtual Reality Modeling Language : 가상현실 모델링 언어)’에 의해 제작되어 ‘월드 와이드 웹(WWW : World Wide Web)’ 기반의 상호작용적인 대화형 3차원 이미지에 토대를 두었는데, 관람객들은 이러한 작품을 통해 현실 세계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공간 및 장소성을 경험하게 된다. 이들 작품은 당시까지의 VR 기반의 시뮬레이션 모델들이 현실 세계를 답습하는 것과는 달리 가상현실 공간을 통해 현실 세계의 법칙을 초월한 메타버스 예술로의 발전 방향을 보여주었다.

본 서적은 메타버스 예술이 갖는 기본적 개념을 살펴보고 그것의 기원과 전개, 확장으로의 흐름에서 제기될 수 있는 예술과 (과학) 기술의 근원적 가상성을 분석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물론 현재의 메타버스는 치밀한 과학-기술적 논리 구조 속에서 작동하는 환경으로서 거듭나고 있으며 예술작품 자체의 메타버스화를 비롯하여 메타버스라는 환경 및 공간을 이용하여 다양한 예술적 실험이 시도되고 있다. 동시대 예술을 선도하는 다양한 아트센터 및 미술관들은 메타버스 공간 속에서 예술 작품들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현실의 ‘반영세계(Mirror World)’로서 현실을 대체하여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또 다른 예술의 영토가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견지하는 데에 있다. 

메타버스 환경은 예술 창작을 위한 잠재적인 영토로 인식되고 있으며 현실의 한계를 넘어 다양한 예술적 시도들을 수행할 수 있는 기술적 토양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메타버스 세계의 특성이 오히려 메타버스 예술의 속성을 제한시킬 수도 있다. 메타버스 예술이 현실과 유사하거나 혹은 현실과는 구분되어야 하는 메타버스 세계의 딜레마 및 이분법적 궤도 안에서만 작동한다면 그것이 지닐 수 있는 확장 가능성은 매우 협소해 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메타버스 예술은 이전까지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인식을 상회하여 전개되어야 한다. 

이미 우리의 현실은 과거와는 다른 형식으로 구축되고 있으며 새로운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현재의 메타버스가 과거 예술이 꿈꾸었던 현실을 초월한 세계상에 가깝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현재 시점에서 메타버스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매우 분명해진다. 메타버스 예술은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예술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는 동시에 과거 예술이 그러했듯,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이전 예술을 뛰어넘은 새로운 예술로서의 메타버스 예술이 지닌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유원준 영남대·예술학

영남대학교 트랜스아트/미학미술사학과 교수. 미술평론가이자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AliceOn)’의 설립자이다. 과학-기술 매체와 예술 융합의 다양한 지점에 관하여 연구하고 있으며, 영화와 게임, 만화와 공연 예술 등 전통적인 시각예술의 범주를 넘어 문화예술 콘텐츠 전반에 관심이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만화비평 대상(2019), 월간미술 학술비평 부분 대상(2022)을 수상했다.  저서로 『매체 미학: 예술과 기술 사이에서』,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뉴미디어 아트와 게임 예술』, 『인공지능시대의 예술』(공저), 『인공지능, 문학과 예술을 만나다』(공저), 『테코레이션』(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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