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사회의 지속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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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사회의 지속을 위해
  • 남상욱 인천대·비교문화
  • 승인 2023.11.19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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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에게 듣는다_ 『현대 일본의 소비 사회: 일본인들은 어떻게 소비 사회를 살고 있는가』 (사다카네 히데유키 지음, 남상욱 옮김, 연두, 296쪽, 2023.09)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어떻게 볼 것인가 

버블이 붕괴된 90년대 이후의 일본은 종종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린다. 세계화로 인해 전방위적인 경쟁 속에서 일본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약화되었고, 장기 지속된 저성장과 인구 고령화로 인해 이전 시대와 비교해 전반적인 사회적 활기가 없어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도 위축되었으리라는 생각도 일반화되었다. 

이 책은 일차적으로 그러한 사회적 통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길 요청한다. 그러니까 디플레이션이 과연 소비를 위축시키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소비 금액의 총량은 줄었을지 모르지만, 개인당 소비 지출 비율은 크게 줄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디플레이션 시대의 소비의 스펙트럼이 넓어졌음을 강조한다. 

디플레이션 시대는 일본 소비자들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똑똑한 소비’를 하도록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가성비를 중시하는 유니클로와 H&M, ZARA 같은 SPA 샵만이 아니라 다이소 같은 백엔샵이 크게 성장한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이제 ‘일제’를 대표하는 브랜드는 소니 같은 전자제품이 아니라, 유니클로와 무인양품, 다이소가 되었다. 한편 이 시기에 ‘똑똑한 소비’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합리성을 중시하는 소비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탕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소비도 동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아이돌의 굿즈를 소비하는 것으로,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이것이 새로운 소비문화로서 주목받으며 관련 산업도 크게 성장하고 있다.

이 책은 일본인에게 디플레이션이 단순히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는 경험으로 그치지 않고, 이러한 경제 상황에 부합하는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상품들을 개발하고 소비하는 경험과 이를 공유하는 문화를 낳았음을 보여준다. 현대인은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소비 활동을 계속하고 싶어 하는데, 그 이면에는 소비를 통해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구성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현대인의 욕망과 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게임을 당연시하는 인식이 깔려 있고, 이러한 다양한 소비 경험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유의 폭을 넓히는 데 기여해 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물론 소비가 진정으로 인간의 자유를 넓힐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진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소비를 통한 자유를 위해 ‘소비자 금융’의 먹잇감이 되는 예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면을 포함해 디플레이션 시대 일본에서 만들어진 소비 양식은, 일본 안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생활양식으로서 인접 국가로 점차 확대되고 있음은 부정하기 힘들다. 

 

소비 사회의 한계와 그 대안

물론 저자가 소비가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 되는 사회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소비 사회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소비의 문제점을 정면에서 다룬다.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소비가 개인의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에 놓인다면 충분히 소비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이른바 경제적 격차의 문제이다. 즉 경제적 격차는 소비의 격차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결국 개인의 자유와 정체성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소비 사회의 두 번째 문제는 지구 환경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대에 따른 기후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오늘날, 소비를 지금처럼 계속해도 괜찮을까. 이는 지구 환경과 관련해 개인의 책임을 넘어, 소비를 둘러싼 저개발국가와 선진국 사이의 격차의 문제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에 눈을 감은 채로 소비 사회의 지속성을 주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인식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하면 될까. 한국에서는 이와 관련해서 공유 경제에 대한 논의가 이미 활성화되었고, 이에 대한 실천도 이미 이루어져 이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공유 경제가 생산-이동 수단의 공유화를 통해 소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이 책의 저자는 어디까지나 소비의 권리를 확대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즉, 기본소득(베이직 인컴)의 제도화를 통해서 경제적 불공평 문제를 해소하고, 공공재를 결정하는 국가의 힘에 제한을 가하며, 노동 시간을 줄여 환경 문제에 참여할 기회를 넓힐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물론 이러한 저자의 해법은 저자도 인정하듯이 이상주의적 측면이 강하다. 특히 기본소득이 기후 변화에 관련해서 어떤 효과를 거둘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증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기본소득의 이념을 소비를 둘러싼 불공정의 해소와 국가 권력의 제한으로 명시하는 점은 귀담아 둘 필요가 있겠다. 기본소득은 인구감소와 AI 발달로 인한 일자리 감소 등을 감안할 때 멀지 않은 장래에 가장 큰 정치적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그 이념을 명확히 하는 저자의 태도는 큰 참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자본주의, 그리고 ‘소비’

저자의 주장대로 소비 사회가 근대 자본주의 이후에 출현한 것이 아니라, 화폐가 존재하는 한 존재하는 사회의 한 양태이더라도, 오늘날 소비는 자본주의를 지속시키는 동력이자 이데올로기 장치로 기능하고 있음은 부정하기 힘들다. 

전시 제국일본의 무서움을 숙지하면서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해왔음을 봐왔던 저자는,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국가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는 자본주의 쪽을 신뢰한다. 이는 자본의 힘 앞에 개인의 무력함을 깨닫고 국가를 일종의 안전망으로 요청하고자 하는 오늘날 한국인의 인식과는 분명 거리가 있어 보인다. 

특히 적지 않은 지식인들은 여전히 자본의 축적만을 지상 명제로 삼는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이상을 버리지 않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의 외부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인식이 본의 아니게 국가의 힘을 강화하는 형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소비를 자본주의와 국가, 그 어느 한 쪽에도 온전히 귀속시키지 않을 하나의 방법이자 권리로서 전유할 가능성은 없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역자에게 구체적인 방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저자의 말대로 ‘우리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남상욱 인천대·비교문화

인천대학교 일본지역문화학과 교수. 경희대학교 일문과 졸업 후, 도쿄대학 총합문화연구과 비교문학비교문화코스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성균관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및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연구교수, 인천대학교 일본문화연구소 소장 및 한국일본학회 학술 및 편집총괄 이사를 역임했다. 현대 일본의 사회와 문화적 변동과 관련한 저·역서로 『전후의 탈각과 민주주의의 탈주』(공저), 다와다 요코의 『헌등사』, 그 외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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