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본질을 소통하는 동아시아의 연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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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본질을 소통하는 동아시아의 연대로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11.19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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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제국'의 동아시아: 담론·표상·기억 | 현무암 지음 | 김경옥·김남은·김현아·김혜숙 외 6명 옮김 | 소명출판 | 542쪽

 

이 책은 해방 후 한일관계사에 있어 밑으로부터 형성된 초국경적 공공영역이라 할 수 있는 ‘한일연대’를 둘러싼 담론과 표상, 기억에 관한 분석을 통해 ‘포스트제국’의 동아시아를 논한다. 여기서 말하는 ‘포스트제국’은 동아시아의 역사적 관점이라는 포지셔널리티의 문제이며, 문제 발견을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전개된 ‘한일연대’에 대해서는 그 사례를 소개하거나 그 정치사회학적 의의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아닌, 그보다는 ‘한일연대’를 재생하기 위하여 그 역사적 경험과 담론을 통해 한일 시민사회의 공조를 재구축하는 조건에 대해서 고찰한다. 특히 피해국/가해국으로 단순화된 도식에서 배제된 피해자 개인들의 보편적 인권을 기반으로 하는 연대의 필요성을 제시함에 있어서, 초국가적인 시민사회의 연대는 국가-국민이라는 연결고리의 밖 경계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개념으로 ‘친밀성’에 주목한다.

사실 이러한 ‘친밀성’은 전후보상운동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원고와 일본 시민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구축되어왔다. 일본에서 제기한 재판에는 일본 시민단체의 ‘지원’과 ‘협력’이 불가결했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일본 시민사회의 역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경우 일본 시민사회의 역할을 가해국의 당연한 ‘업보’로 치부하고, 일본 시민사회 또한 가해자로서의 ‘의무’로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한일연대’의 역사적 경험과 현재적 의미를 한일관계 속에 위치 지우지 못한 채 남아있다는 지점에 착목한다.

여기에는 한일 간의 역사문제에 있어서 시민사회가 ‘국가’를 짊어지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한일 간의 역사문제가 정치적 ‘공공성’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친밀성’은 비가시적인 영역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하지만 ‘한일연대’로 발현되는 집합행동의 내적이고 문화적인 역동성에 주목하면 양국 시민사회가 가꿔온 신뢰와 연대, 규범과 가치를 포착할 수 있다. 사회운동론에서의 문화론적 접근법을 활용하면 전후보상운동 등 한일 시민사회의 초국경적 연대가 ‘공공성’만이 아니라 ‘친밀성’에도 기반하고 있으며, 나아가 ‘친밀성’이 ‘공공성’을 활성화시키는 점도 부각될 것이다.

이처럼 ‘친밀성을 이론화’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 책은 사회의 지배적 담론 편성에 있어서 이것이 ‘공공성의 서사’와 더불어 ‘친밀성의 서사’라는 틀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후보상재판에서 승소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공공성의 서사’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원고 및 피해자들과 지원자들이 함께 싸워가는 가운데 신뢰를 쌓고 함께 성장해 간 것은 ‘한일연대’의 중요한 장면으로 꼽힌다. 저자는 이러한 신뢰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연대’의 가능성은 제한되고, 한국에서 보면 일본의 활동가에게 ‘양심적 일본인’으로서의 윤리적 책무를 지우는 것에 그치고 만다고 지적한다.

동아시아에서 ‘전후(戰後)’의 탈식민지화는 예나 지금이나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제국주의에 냉전 구조가 중첩되는 형태로 폭력의 연쇄 속에 휘말려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냉전 해체라는 세계사적 전환을 통해 어떻게 국가폭력의 시대를 극복하고 정의를 회복하며 화해할 것인가라는 과제와 마주해 왔다. 

이 책은 이러한 논의를 통해, 패전으로 인해 일본이 상실한 것은 식민지가 아니라 제국이라는 점을 전제로 하는 ‘포스트제국’의 시점을 제시하고, 이 시점에 입각하여 일본 제국의 판도에 있었던 구 식민지와 피지배국이 새로운 관계성을 발견하기 위한 연대의 길을 제시한다. 나아가 이 책은 아시아·태평양전쟁 이후의 동아시아가 나라와 지역을 초월하며 트랜스내셔널하게 전개해 온 ‘기억과 화해’의 폴리틱스(politics)를, ‘과거의 극복’을 향한 ‘포스트제국’의 연대로 규정하고 그 실천적 의미를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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