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성들은 스크린을 넘어 스토리가 되었나?
상태바
왜 여성들은 스크린을 넘어 스토리가 되었나?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11.19 01: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여성, 스크린을 넘어 스토리가 되다: 대중문화 속의 달라진 여성들 | 허은·이은숙·정영희 지음 | 조윤커뮤니케이션 | 240쪽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변화의 바로미터인 대중문화가 여성을 인식하고 담아내는 내용과 방식 역시 크게 달라졌다. 그동안 대중문화 속에 그려진 여성은 작품 내 보조자 역할이거나, 주인공이라 하더라도 남성의 대립항으로서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힘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 응시의 대상, 보여지는 역할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곤 했다. 

하지만 최근 남성을 조연으로 두고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끌어가는 이야기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약하고 희생적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강하고 당당하며 주체적인 여성이 환영받고 있다. 이제 여성들은 수동적인 스크린 속 인물에서 능동적으로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 변신하는 중이다.

 

이 새로운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중문화가 여성들의 변화를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지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일은 꼭 필요한 작업이다. 대중문화는 그 사회를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드라마, 영화, 예능, 팟캐스트, 웹툰 등의 주요 작품 분석을 통해 달라진 여성의 모습을 살펴본 대중문화 비평서다. 

사회의 다양한 민낯을 보여주는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여성들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오랫동안 반복해온 가부장제 서사의 관습에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법조계, 의료계, 정치계, 문화·예술 등 전문분야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현실의 여성들을 대중문화는 어떻게 담아내고 있을까? 상업화된 여성의 섹슈얼리티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 변화와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가치를 확인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여성의 캐릭터, 몸, 연대, 모성 4개의 장으로 나누어 해당 작품을 분석했다.

1장은 새롭고 개혁적인 ‘여성 캐릭터’에 관한 내용이다. 달라진 여성 캐릭터는 대중문화 속 여성의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분야이기도 하다. 현모양처, 신데렐라 캐릭터가 인기를 끌었던 게 불과 2, 30년 전이다. 드라마 속 여성들은 달라졌다. 자식보다 자신의 야망을 선택한 엄마,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로비스트, 연하남을 사랑하는 유부녀, 왕의 사랑을 거부하는 궁녀, 사춘기 딸을 둔 유능한 킬러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여성 캐릭터에 대한 관념은 변화했고, 캐릭터가 담아내는 영역은 확장되었다.

2장은 대중매체가 상업화했던 ‘여성의 몸’에 대한 논의를 담았다. 오랫동안 여성의 젊고 아름다운 몸은 강력한 사회적 자본으로 기능해왔다. 여성들의 외모가 실력보다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더 나은 사회적 자원을 갖기 위해 평생 다이어트와 외모 가꾸기에 시달려야 했다. 여전히 여성의 몸을 대상화, 상품화하는 강력한 시선이 존재하지만 이제 여성들은 스스로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자신의 몸을 표현하고 있다. 강하고 힘센 몸이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증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3장은 ‘여성 연대’를 주제로 했다. 대중문화 속 여성들의 관계는 남성이라는 로맨스 자원을 두고 다투는 경쟁자로 더 많이 묘사되었다. 최근 여성주의 서사가 유행하면서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여성 간의 관계를 조명하는 이야기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여성들은 우정의 주체로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투쟁을 위한 전략적 동지로서 다른 여성과 연대를 쌓아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대중문화 콘텐츠가 여성 집단, 여성공동체에 관해 새롭게 써 내려간 이야기도 흥미롭다.

4장은 오랫동안 여성 서사를 대표해왔던 ‘모성’을 다루었다. 가부장제의 역사는 전통적으로 여성을 모성의 틀에 가두고 희생과 헌신을 강요했으며, 대중문화는 이러한 모성을 확대 재생산해왔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혈연이나 모성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모성은 본능이 아니라 사회적 산물이라는 견해가 확산되면서 모성 신화는 무너져 내렸으며, 대중문화는 자유 의지로 모성을 실천하는 여성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