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회윤리론의 방향을 제시한 다산 정약용의 국가개혁론
상태바
새로운 사회윤리론의 방향을 제시한 다산 정약용의 국가개혁론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11.19 00: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다산 정약용의 국가개혁론 | 김태영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592쪽

 

40여 년을 한국 사회경제사와 사상사 연구에 헌신한 사학자 고 김태영 교수. 1주기를 맞아 후학과 제자들이 그 가르침을 되새기고 기리기 위해 저자가 생전에 여러 지면에 발표하였으나 미처 책으로 엮지 못한 글들을 모아 발간한 [김태영 논문선집]이다. 이 책은 [김태영 논문선집] 4권으로,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의 사상과 국가개혁론을 조명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통치체제의 근본적 개혁을 통해 국가와 민생의 현실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한 다산 경세론의 각론을 세밀히 분석하고, 이를 종합함으로써 정약용이 구상한 국가개혁론의 특징과 역사적 의미를 조망한다. 

무릇 지배와 복속이라는 오랜 인습을 근간으로 하는 국가조직과 사회윤리와는 그 성격을 달리하는, 인간의 상호 이해를 통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국가조직의 원리와 사회관계를 고안한 것은 조선 후기의 실학이 처음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이와 같은 문제를 체계화하고 비로소 새로운 사회윤리의 바탕이 되는 가치 관념으로 제시하였다. 그것은 실학 왕정론의 한 분야로서, 역사적 변혁의 의미를 지닌 새로운 사유 체계의 출현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성호학과 서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경세치용의 학풍을 개방적으로 확립하고, 이용후생학까지 아울러 점검하고 개발하였다. 특히 다산 실학의 경세론은 우리 역사상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으로 가다듬어진 통치론으로, 고전으로서의 학술적 의미와 가치가 있다. 정약용의 『경세유표』는 우리나라 전근대 역사에서 국가체제의 구성과 운용에 관한 제도적 원형을 전반적·종합적으로 정리하였다. 국가라는 공동체를 운용하면서 그 주민들 각자가 저마다의 실질을 살려 성취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을 곡진히 모색하여 제시하되, 이상적인 면에서부터 현실적인 면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사례를 탐구함으로써 전근대 국가체제의 최후의 원형을 집대성했다.

다산이 구상한 경세론의 객관적 기준과 확고한 기초를 이루는 것은 정전제론이다. 다산의 정전제론은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의 선진적 국가 경제론을 두루 검토한 후, 정전제의 기초 위에 부공제를 실시하고 만민을 9직으로 편성 배치한다는 균직론을 제시한다. 모든 주민을 분업적 협업으로 연계한다는 최선의 사회경제론을 성립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비록 현실적 실현을 보지는 못했으나 다산은 전근대의 다양한 토지 개혁론과 그에 기초하여 운용할 왕정론에 관한 모든 이론을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가장 이상적이라고 판단한 최후의 원형을 모색하여 정립해놓았다.

다산의 산업행정체계 개혁론은 산업경제의 개발과 진흥이라는 독자적인 과제로 추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왕권과 정치라고 하는 통치의 문제로 귀결된다. 다산의 왕권은 강력 무비하고도 지공무사(至公無私)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의 왕권론이 삼대의 통치체제를 회복하고자 하는 간절한 시도로 일관한 것은 현 실태 호강자(豪强者)들의 극단적 농단과 비리의 행태를 지양하기 위한 객관적이고 명명백백한 근본 표준을 정립하기 위함이었다.

경학과 경세론 양면에서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이 구상한 ‘왕정’은 조선왕조 사회 고유의 봉건적 속성을 왕권론·소유론·생산론에 걸쳐 적극적 방향으로 궁극적으로 추구하였다. 그리고 개별 생산 주체의 자립적 자영성, 소유의 공공성, 그리고 통치권의 중립성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고안하였다는 데 그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그 같은 개혁론의 극단적 추구는 봉건적인 것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상호 작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산의 국가개혁론은 다분히 이상론적 구상에 속했다. 그는 ‘선왕’의 ‘왕정’을 준거로 삼고 고경(古經)의 원뜻을 추찰함으로써 자신의 철학적 인식체계를 실학적 국가개혁론으로까지 일관하였지만,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은 처음부터 적었다. 실학의 왕정론과 마찬가지로 다산의 사회윤리론도 현실에서 수용되기에는 어려운 형세였다. 그러나 왕정론의 실현 여부와 관계없이 그것은 장차 새로운 사회를 조성함에 있어서 상하종횡의 모든 인간관계를 관통하는 새로운 사회윤리론의 보편적 통로를 추구하고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은 이러한 다산 정약용 사상과 경세론을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한 통찰과 대안을 제시한다. 고 김태영 저자가 혼신의 열의를 다해 추구한 궁극의 목표가 국가와 사회의 개혁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제대로 된 나라’, ‘제대로 된 사회’. 고금을 막론하고 궁리하였던, 그러나 쉬이 해결하지 못했던 지난한 문제가 다시 초미의 현실적 과제로 다가온 이 시대,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