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문화에 혁신을 가져온 위대한 도구, 색인(index)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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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문화에 혁신을 가져온 위대한 도구, 색인(index)의 역사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11.19 0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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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덱스: 지성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색인의 역사 | 데니스 덩컨 지음 | 배동근 옮김 | arte(아르테) | 488쪽

 

오늘날 색인(index)은 일상에서 당연하게 사용되고 있다. 흔히 책 뒤편에 자리한, 책의 특정 개념을 일정한 순서에 따라 배열한 목록만이 색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인터넷 검색을 할 때조차 우리는 구글의 웹 색인을 이용하고 있다. 색인은 인류의 지식을 분류하고 목록화하여 언제든 접근 가능한 정보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발췌 독서’라는 새로운 독서법을 낳았고, 정보에 대한 접근 속도를 기하급수적으로 높임으로써 검색 시대를 열었다. 또한 사전순 배열과 코덱스(페이지를 책등으로 그러모아 책장을 넘길 수 있도록 제본하는 방식)의 등장, 목차와 쪽 번호, 인쇄술과 디지털의 발달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저자 데니스 덩컨은 고대 이집트에서 중세의 수도원, 현대의 실리콘밸리에 이르기까지 읽기 문화의 혁명을 가져온 엄청난 발명품, 색인의 역사를 추적한다. 파피루스, 종교 서적, 전 세계 도서관이 보유한 고서, 최신 연구와 소셜미디어 게시글 등 방대하고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는 인류 역사에 색인 개념이 어떻게 처음 등장했으며 기술 발전에 따라 어떻게 그 형태가 변화되어왔는지, 각 시대에서 색인이 어떤 평가를 받아 왔으며 작가와 학자들이 이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발전시켜 왔는지를 유쾌하게 풀어놓는다. 이는 지식의 구성사이자 정보과학의 역사이며 정보에 접근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창조성의 역사, 그리고 신기술을 둘러싼 정치의 역사이자 독서와 교육의 역사이기도 하다.

색인은 그냥 등장하지 않았다. 우선 알파벳순 배열(사전순 배열)이 정착되어야 했다. 우주의 조화와 이성의 질서를 중시하는 고대·중세인들에게, 읽는 이의 편의를 위해 텍스트를 내용과 의미가 아닌 철자순으로 임의적으로 배치하는 알파벳순 배열은 그들의 논리에 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편리성으로 인해 알파벳순 배열은 점차 정착되었다. 지금 우리가 읽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24권인 것도 권으로 분할했던 당시의 희랍어 알파벳이 24개였기 때문이다.

12세기 전후로 유럽 전역에서 도시로의 인구 유입이 가속화되면서 새로운 선교 방식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대학의 융성과 함께 새로운 능력, 즉 논리 정연한 설교와 강연에 대한 요청도 생겼다. 권위 있는 문서를 인용하며 설교와 토론을 하는 문화가 싹텄다. 그런 세상에서는 책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에서 인용하고 싶은 부분을 바로 꺼내 보기 위한, 즉 ‘발췌 독서’를 위한 도구가 필요했다. 그 요청에 화답하여 주제 색인 격인 ‘디스팅티오(distinctio)’와 용어 색인 격인 성경 성구 사전이 거의 동시에 등장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색인이 사용되기 위해서는 정확한 위치 표시자(locator)가 필요했다. 필경실에서 제작된 필사본들은 필사자의 필체나 판형에 따라 제각기 다른 쪽 번호를 가졌다. 필사본의 색인이 인도하는 쪽 번호로 갔는데도 해당하는 내용이 없는 오류가 흔했다. 15세기 무렵, 이 문제를 해결해 줄 또 다른 기술적 혁신이 등장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었다. 모든 인쇄물의 페이지를 동일하게 고정하는 대량 인쇄의 등장으로 쪽 번호는 알파벳순에 버금가는 기본 요소로서, 색인의 보편적인 참고 사항이 되었다. 그리고 영국의 토리당과 휘그당 사이에서 색인을 통해 이루어진 당파 싸움에서 알 수 있듯, 사람들은 색인을 통해 풍자나 비방을 쏟아 내는 것뿐 아니라 재치를 발휘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색인의 세상이 왔다.

그러나 모든 기술적 혁신이 그렇듯 색인도 사회적 곡절을 겪었다. 색인은 17세기 이래로 계속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실험 정신을 죽이는 주범이라고 비방받아 왔다. ‘젊은것들이 쉬운 것만 찾느라 더 이상 진득하게 책을 읽지 않는다.’ ‘원하는 부분만 홀랑 골라 읽는 게 대세가 되고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이 모든 비난을 사람들은 “지옥 유황불에 쓸어 넣어도 시원치 않을” 색인의 탓이라고 치부했다.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뱀장어 같은 학문을 꼬리만 잡으려는 노릇”이라는 시구로 그런 걱정을 피력했다.

그럼에도 포프는 자신이 번역한 『일리아스』 번역본에 유례없이 방대한 색인을 달았다. 명망 높은 지식인들이 색인에 대해 의혹을 버리지 못하는 와중에도 색인의 대세를 막을 수가 없음을 자인한 꼴이었다. 이제 색인은 책의 내용에 신속하게 진입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정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하는 세상에서 색인 없이 정보를 구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런 시대적 필요를 입증이라도 하듯, 1850년경에 윌리엄 풀이라는 예일 대학교 2학년생이 동기들의 과제를 돕기 위해 만든 색인이 대서양 너머 유럽에까지 수출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마침내 대서양 양쪽이 힘을 합쳐 불완전하나마 보편 색인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다. 사람들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고 색인도 사라지지 않았으며 독자도 학자도 발명가도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현재, 거대한 웹 색인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인터넷의 출현으로 색인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보편화된 해시태그로 사실상 21세기의 우리는 #모두가_색인_작성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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