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와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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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와 뇌
  •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 승인 2023.11.18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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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환규 교수의 〈과학에세이〉

 

인간은 바쁜 삶 속에서 항상 스트레스 요인에 직면하고 있다. 학업, 친구 사귀기, 취직, 결혼, 출산, 이혼, 환경오염, 전쟁 등은 인간의 삶에서 모두 스트레스 요인이다. 스트레스는 실제 또는 가상의 자극에 반응하여 뇌에서 형성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스트레스란 단어는 일상의 힘든 일 속에서 녹초가 되었다는 느낌의 반영이기도 하다. 스트레스에 대한 정의는 ‘격투-도주 반응’에서와 같은 긴급한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호르몬이 매개자로 여겨진다. 스트레스는 불면증과 불안한 감정을 초래하고 우울증과 조현병을 포함한 신경질환을 일으킬 수 있으며, 호르몬 불균형, 면역계 및 심혈관계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격투-도주 반응과 항상성 개념은 1929년에 하버드대학교의 생리학자인 캐넌(W.B. Cannon)이 도입하였다. 그 후, 스트레스의 병리적 효과에 관해 광범위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1936년에 캐나다의 생리학자인 셀리에(H. Selye)는 해로운 인자에 대한 생물의 비특이적 반응을 스트레스라 설명하였다. 그는 생쥐에 과도한 운동 부여, 기아와 극단적 온도를 포함한 다양한 물리적 요인, 항원 주입 및 환경 스트레스 요인을 적용하여 스트레스 효과를 연구하였다. 셀리에는 스트레스 유형과 관계없이 생쥐는 갑상샘 악화와 출혈성 위궤양 등을 발현하였는데 이런 현상이 스트레스에 의한 것으로 추측했다. 그는 스트레스란 ‘한 생명체의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반응 상태’라 정의했으며, 스트레스성 자극이 뇌하수체-부신 축을 자극하여 생리적 효과가 유발된다고 설명하였다. 실제로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뇌하수체 전엽에서 부신피질자극호르몬(ACTH)의 분비 및 부신피질의 당류 코르티코이드 분비가 증가한다. 이를 토대로 셀리에는 동물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비특이적으로 적절한 대응을 한다고 설명하였으며, 이러한 비특이적 반응을 전신적응 증후군(GAS)이라 하였다. 그는, 인간이 만성 스트레스에 노출될 때 호르몬 시스템이 교란되고, 결과적으로 심장질환을 포함한 다양한 질환을 일으킨다고 설명하였다. 

스트레스는 좋은 스트레스, 허용적 스트레스와 독성 스트레스로 나눌 수 있다. 좋은 스트레스란 긍정적인 보상을 받는 느낌을 향상시키거나 특정한 일에 대한 도전 정신 향상의 경험을 의미한다. 자부심과 적절한 충격 조절 능력은 뇌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허용적 스트레스란 가족, 친구 또는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스트레스에 대처해 나갈 수 있는 범주를 이르는데, 긍정적이고 적응적 특성을 가진 사람에게 회복력을 강화한다.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뇌와 신체는 적응하기 위해 생리 및 행동적으로 반응하는데, 최초의 생리적 반응은 스트레스를 유발한 위험 요소로부터 신체와 뇌를 보호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부신피질로부터 스테로이드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를 유도한다. 코르티솔은 혈류를 통해 뇌에 전달되어 여러 신경세포의 세포질에 존재하는 수용체와 결합하여 세포핵으로 들어가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유도한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의 신경과학 교수인 새플스키(Robert Sapolsky)는 케냐에서 야생의 개코원숭이를 대상으로 행한 연구를 통해 만성 스트레스의 영향을 밝혔다. 개코원숭이는 계급사회를 유지하는데, 하위 계급의 수컷은 되도록 대장 수컷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다. 어느 해에 개코원숭이 개체 수가 증가하자 지역 주민들이 농작물 피해를 줄이려고 개코원숭이들을 생포하여 우리에 가두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장 수컷과 같이 수용된 하위 계급 수컷들이 점차 죽었는데, 원인은 영양 부족이나 상처 때문이 아니라 대장 수컷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생겨난 지속적인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사진 출처: Pixabay

죽은 하위 계급 수컷 원숭이들을 조사한 결과, 위궤양과 대장염 및 부신 비대가 초래되었고 해마의 신경세포가 심하게 퇴화되었다. 후속 연구를 통해 코르티솔이 해마를 손상한 직접적인 원인으로 밝혀졌다. 스트레스와 코르티솔의 이런 효과는 노화가 뇌에 미치는 영향과 유사하다. 말단소립은 세포분열이 일어날 때마다 단축되어 임계치에 이르면 세포분열이 멈추는 노화의 분자시계로, 만성 스트레스는 말단소립의 단축을 증가시킨다. 인간은 전쟁 공포와 성적 학대 같은 극단적인 폭력에 노출되면 과도한 불안과 기억 교란 등을 나타내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 유발된다. 뇌 영상 자료에 의하면 피해자들의 뇌, 특히 해마에서 퇴행적 변화가 관찰되었다. 

인간이 스트레스 요인에 노출되면 코르티솔은 스트레스의 정도에 비례하여 기본 수준의 약 6배까지 증가한다. 동물이 스트레스 요인에 지속해서 노출되면 코르티코스테로이드의 분비가 증가하고, 교감신경부신계가 활성화되어 에피네프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이 방출된다. 동물이 위협을 느낄 때 나타내는 격투-도주 반응은 교감신경부신계가 에피네프린을 분비하여 소화기관 및 피부로의 혈류를 차단하여 혈액을 골격근으로 돌리고, 심박수를 증가시켜 생존을 위해 격투하거나 도주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골격근으로 집중시킨다.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뇌하수체-부신 축과 교감신경부신계의 또 다른 반응은 전전두엽피질, 편도와 해마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들 뇌 영역은 부신피질자극호르몬 방출호르몬(CRH)을 분비하는 시상하부의 신경세포를 활성화함으로써 스트레스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 CRH 분비 결과, 뇌하수체 전엽에서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을 분비되고 차례로 당류 코르티코이드의 분비를 증가시키는 이 경로는 스트레스가 만성적이고, 인간이 더 수동적 태도로 자기통제 능력을 상실할 때 활성화된다.

설치류에서 쾌적한 환경과 긍정적 스트레스는 건강을 지켜주지만, 부정적 스트레스는 면역계의 당류 코르티코이드 분비 억제로 인해 종양의 성장이 촉진되는데 유사한 사례가 인간에게서도 보고되었다. 인간의 기억과 연관된 뇌 영역, 즉 전전두엽피질, 해마와 편도체는 당류 코르티코이드, 에피네프린과 CRH 같은 스트레스호르몬 수용체를 갖고 있으며, 이 호르몬들은 장기상승작용과 장기억제작용을 촉진하고 억제한다. 당류 코르티코이드는 단기기억의 장기기억으로의 강화를 촉진하는데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은 스트레스호르몬의 분비를 일으키는 격한 사건들이 뚜렷하지 않은 사건들보다 더 잘 기억되도록 하는 기작이다. 또한 스트레스호르몬은 편도체와 다른 뇌 영역에 작용해 부정적 스트레스와 연관된 불안과 우울증을 일으킨다. 

 

                                                            사진 출처: steemit

만성 스트레스에 따른 당류 코르티코이드의 지속적인 과다 분비는 인슐린 저항성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제2형 당뇨병과 연관된 여러 증상을 일으키며, 우울증과 정신질환 발병에도 관여한다. 또한 만성 스트레스는 신경전달에 관여하는 뉴런보다 수초 형성 세포를 더 많이 생성하여 교신의 적절한 타이밍 및 균형을 방해하며, 단기기억의 장기기억으로의 전환에 관여하는 해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해마는 기억, 감정과 학습과 고도로 연관된 뇌 부위로, 만성 스트레스에 의해 학습과 기억 형성 기작인 해마에서의 새로운 뉴런의 생성을 제한 또는 차단한다. 스트레스는 뇌의 발달 방해뿐만 아니라 뇌 용적의 축소가 일으킬 수 있다. 고농도의 코르티솔에 지속해서 노출되면, 해마와 전전두엽피질 부위가 축소되어 기억과 사고 능력에 장해를 일으킨다. 

만성 스트레스는 뇌의 구조와 기능에 영구적인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뇌의 회색질 영역은 결정과 문제 해결 같은 고등 사고 능력과 관련 있으며, 축삭으로 이루어진 백질은 뇌의 다른 부위와 정보를 교신하는 영역으로, 만성 스트레스는 수초의 과다 생성을 일으켜 뇌의 구조에 영구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외상 후 장애를 갖는 사람은 회색질과 백질의 불균형을 포함한 뇌 구조 변화에 더하여 감정과 무드에 관여하는 세로토닌과 도파민 시스템을 교란하기도 한다. 만성 스트레스는 우리의 마음을 애태우게 하고 피곤하며,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수면 패턴, 식욕과 리비도를 방해하고, 당뇨병, 심장과 위장관 질환을 포함한 다양한 범주에서 건강을 악화시킨다. 

뇌가 적절하게 기능을 발휘하려면 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코르티솔은 세포의 주요 에너지원인 혈액의 포도당 농도를 증가시켜 스트레스를 받을 때 활성적인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한다. 알츠하이머 협회의 과학 및 확산 프로그램 책임자인 파고(Keith Fargo)의 표현을 빌리면, 뇌는 매우 허기진 기관으로 뇌가 건강하고 적절하게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다량의 영양소와 산소가 필요하다. 따라서 신체가 에너지 자원을 스트레스로 소비하면 뇌가 활용할 자원이 부족해진다. 모든 스트레스가 동일한 방식으로 뇌와 신경 네트워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선한 스트레스 또는 일을 잘하도록 돕는 스트레스는 뇌가 긍정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하여 더 강한 네트워크와 큰 회복력을 부여한다.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전북대 생명과학과 교수. 전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교환교수, 전북대 자연과학대 학장과 교양교육원장, 자연사박물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생물학 오디세이』, 『생명과학의 연금술』, 『산업미생물학』(공저), 『Starr 생명과학: 생명의 통일성과 다양성』(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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