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 〈2023년도 장서각 고문서 학술대회〉 개최…’군포 속달마을과 동래정씨가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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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2023년도 장서각 고문서 학술대회〉 개최…’군포 속달마을과 동래정씨가 고문서’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11.16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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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동래정씨 종가에서 기증한 4,000여 점 고문서를 활용한 종합 연구 성과
- 조선후기 관복, 보존처리 실제, 서예사적 가치, 건축 특징 등 총 12편 연구 발표

 

경기도 군포시 수리산 줄기가 이어지는 곳, 서쪽편 마을 중심부에 남향으로 자리 잡은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가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기증한 4천여 점의 고문서를 활용한 종합 연구성과가 발표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군포 속달마을과 동래정씨가 고문서’를 주제로 한 <2023년도 장서각 고문헌 학술대회>를 17일(금)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전국에 산재한 고문헌을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는 경기도 군포시에서 5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동래정씨 종가에서 2015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기증한 4,000여 점의 고문헌을 연구한 12편의 연구 성과가 발표되는 자리다.

동래정씨는 조선초기의 이름난 학자이자 관료인 정난종(1433∼1489)의 종가로 조선시대 명가 중 하나였다. 장서각은 2003년부터 해당 종가의 자료를 수집했으며, 7년 후  『고문서집성』 97로 학계에 자료를 공개했다. 이후 장서각에서는 학계의 연구를 촉구하고 연구 방법론을 개발하기 위해 종합 연구를 기획했다. 『고문서집성』의 자료를 알기 쉬운 정자체로 옮겨 써 연구 접근성을 높였고 인류학, 민속학, 건축학, 보존과학, 복식사 등과 관련한 주제를 개발하는 성과도 냈다. 이번 학술대회는 2022년 착수한 12편의 연구 성과를 공개하는 자리다.


【제1부】 ‘군포 속달 동래정씨가의 전적과 유물’에서는 기증자료의 구성과 의미를 학술적으로 평가했다. 동래정씨 가문이 오랫동안 살아온 마을과 자료의 성격을 소개하고 중요 고서와 관복의 가치를 발견했다. 이들 고문헌과 유물에 대한 과학적 보존 성과도 함께 공개해 보존과학을 학술영역으로까지 확장했다. 특히, 전주대 유지복 연구교수가 분석한 <동래군필적>의 연구는 조선초기 서예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제2부】 ‘동래정씨의 인물과 공간’에서는 조선시대 역사 속에 족적을 남긴 인물의 업적을 사료로 재평가하고, 그들이 살았던 속달마을이라는 공간을 살펴보았다. 동래정씨의 위상과 인물들의 활동이 갖는 정치적 의미와 함께 철학적 사유의 가치를 추적했다. 속달마을에 살았었고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과 종가의 건축적 의미도 함께 살펴본다. 특히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은진 연구원이 연구한 덕원부사 정학묵의 관직생활에 대한 추적은 조선시대 관료의 일상을 다채롭게 하는 성과이기도 하다. 

장서각은 그간 수집해온 고문헌을 연구해 다수의 학술대회와 학술서를 통해 그 성과를 계속 공개 해왔다. 충청도 고문헌을 연구한 『17세기 충청도 선비의 생활기록』(2018), 강원도 지역 자료를 연구한 『선교장과 관동 사대부가의 삶』(2019), 호남지역을 사례로 한 『호남 고문서 연구』(2020), 그리고 경상도 진주의 재령이씨 고문서를 연구한 『진주 마진 지령이씨 고문서연구』(2023)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수집한 고문헌의 연구 성과를 학술서를 통해 공개하기 전 학계를 통해 먼저 소개하는 자리로 볼 수 있다.

◇ 군포 동래정씨 동래부원군 자료

조선전기 명신으로 서예에도 일가를 이루었던 동래부원군 익혜공(翼惠公) 정난종(鄭蘭宗, 1433~1489)을 불천위로 모시는 종가이다. 

정난종이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 일대를 사패지(賜牌地)로 받고 부인과 함께 이곳에 묻혔고, 그 장자 정광보(鄭光輔, 1457~1524)가 이곳에 거처를 마련하여 세거한 것이 오늘날까지 500년을 넘어선다. 동래정씨 가문은 조선 전 시기에 걸쳐 정승만 17명, 문과급제자는 무려 198명을 배출한 명가이다. 질곡의 근현대사 속에서도 위당 정인보와 같은 걸출한 인물을 배출하였다.

종가는 소중한 가전 자료를 지역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90년대 말 군포시 등에 위탁을 결정하였다. 그렇지만 당시까지 자료 연구와 보존의 환경이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2003년 종가는 군포시를 통하여 장서각에 연구를 의뢰하였다. 장서각은 이들 자료를 연구하여 학계에 공개하고 중요 자료에 대한 보존과학적 접근을 달성했다. 동래부원군 종가는 2011년 5월 종택과 전답을 문화유산국민신탁에 무상 증여하였다. 그리고 2015년에는 집안에서 전수하던 고문서와 유물 4천여 점을 장서각에 기증하였다. 단지 집안의 가보와 재산이 아닌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잘 보존하고 함께 공유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루어진 500년 명문가의 고귀한 결정이었다.

▶ 정학묵(鄭學黙, 1829~1903)이 착용한 조복이다. 조복은 양관(梁冠)·의(衣)·상(裳)·중단(中單)·대대(大帶)·혁대(革帶)·후수(後綬)·패옥(佩玉)·홀(笏)·화(靴)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진에는 확인할 수 없지만 폐슬(蔽膝)도 존재한다. 조복은 붉은색의 조복과 금색의 양관 등으로 이루어져 금관조복(金冠朝服)이라 일컬어지며, 국가적인 경사나 명절 등에 거행한 축하 의식의 예복이다. 정학묵은 1860년(철종 11) 문과에 급제하여 당상관인 삼사의 승지와 이조참의를 지냈으며, 1902년(고종 39)에는 종2품 가선대부의 품계에 오르게 된다. 이 금관조복은 운학문(雲鶴紋)과 금환(金環)으로 장식된 후수와 육량관, 상아홀, 서대(犀帶) 등 대한제국기 고위 관직자의 실제 복제 사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 세종대 문신 이보정(李補丁, 1393~1456)의 신도비(神道碑) 탁본으로 정난종의 필적이다. 이보정은 1420년(세종 2) 문과에 급제하였고, 관직이 예조판서에 올랐다. 이보정 신도비는 이숙함(李淑瑊, ?~?)이 지었고 정난종이 썼다. 1481년(성종 12) 건립된 이 비의 탁본은 원나라의 명필 조맹부의 송설체(松雪體)를 바탕으로 일가를 이룬 정난종의 원숙한 필체를 보여준다. 이보정의 묘소는 현재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에 그 아들 이숭원(李崇元, 1428~1491)의 묘소와 함께 남아 있으나 신도비의 글씨는 확인할 수 없다. 탁본 또한 이 『동래군필적(東萊君筆跡)』을 제외하고는 알려진 바가 없어, 조선전기 명필 정난종의 글씨는 물론 우리나라 서예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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