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적 이성의 한계와 경계를 냉철하게 직시한 철학자, 야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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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이성의 한계와 경계를 냉철하게 직시한 철학자, 야코비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11.13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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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코비와 독일 고전철학 | 남기호 지음 | 길 | 346쪽

 

현대 철학이 ‘현대적’이기 위해 자주하는 비판이 시기적으로 가장 가까운 근대 철학에 대한 비판이다. 대표적인 비판이 근대 계몽사상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그러나 이 비판마저도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어느 시대든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 늘 이를 견제하는 움직임도 함께 있어왔기 때문이다. 근대의 계몽 또한 이미 반(反)계몽이나 계몽 비판을 수반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반계몽은 그렇다 하더라도 계몽 시대의 계몽 비판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이가 주목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인물이 바로 이러한 비판 진영의 가장 대표적인 철학자라 할 수 있는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야코비(Friedrich Heinrich Jacobi, 1743~1819)이다.

이성이 지배하던 시대에 신앙철학을 주창한 반(反)이성주의자 또는 반계몽주의자로 오해받았던 야코비는 적어도 30여 년 전부터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철학사 서술에서 점점 더 큰 메아리가 되고 있다. 오늘날 야코비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제기한 계몽의 비판적 자기반성 때문이다. 이를 통해 계몽의 계몽, 즉 후기 계몽의 독일 고전철학이 시작된다는 것은 이미 정설로 자리 잡고 있다. 한마디로 독일 고전철학은 나름 치열하게 계몽의 자기비판을 거쳐온 사상인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이를 후기 계몽사상이라 부를지 몰라도 정작 셸링이나 헤겔 같은 철학자가 계몽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며, 자기 철학에 이런 말을 쓰는 것을 몹시 꺼렸다는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큰 틀에서 이 책은 야코비가 당대 계몽 이성의 대표 사상가들과 벌인 굵직한 대결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대결은 전통적으로 이성과 믿음, 지(知)와 신앙을 둘러싼 논쟁이라 할 수 있으며, 좀 더 작은 틀에서는 학문적인 철학에 대항해 야코비가 복원하고자 했던 비학문적인 앎의 영역으로서의 신앙의 복원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의 신앙철학은 결코 학문적 인식을 배제하는 반계몽이나 이성의 폭력으로부터 도주한 신앙주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학문적 이성의 한계와 경계를 냉철하게 직시한 철학자이지 결코 그 경계 밖에서 기도(祈禱)만 하던 비합리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적어도 이미 학문적 논증에서 패배한 근대 신학의 형이상학적인 폐허나 “공허에 대한 두려움”에서 내면의 종교 속에 갇혀 산 적이 없다.

책의 제1장에서는 야코비와 멘델스존이 편지를 통해 입장을 주고받은 무신론 논쟁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논쟁을 통해 스피노자 철학에서의 무한자와 유한자의 관계, 이성의 필연적 체계와 자유의 가능성 등을 놓고 펼치는 야코비와 레싱 또는 멘델스존과의 대화는 그 완성의 정점에 이른 이성적 학문마저도 신(神) 인식에 있어서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야코비의 기본 관점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야코비

제2장에서는 야코비의 칸트 비판을 다루고 있다. 야코비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접했을 때, 처음에는 사상가들 가운데의 ‘헤라클레스’요, ‘쾨니히스베르크의 세례자’라고 지칭할 정도로 환호했지만, 나중에 그에게 비판의 화살을 돌렸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인식의 실재성 결핍 때문이었다. 더 나아가 경험의 한계 내에 머물러야 할 이성 개념이 암암리에 오성(悟性) 개념의 결핍을 메우기 위해 사용되는 비일관성 때문이기도 했다. 이 장에서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알려진 칸트 철학의 결점들이 이미 야코비에 의해 거론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제3장에서는 ‘사변이성의 진정한 메시아’ 피히테에 대한 야코비의 비판을 다루고 있다. 원래 무신론 논쟁에 휘말린 피히테를 돕기 위해 시작된 이 논쟁을 통해 야코비는 전도된 스피노자주의자 피히테 철학의 결점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제4장에서는 야코비의 저서 『신적인 것들과 그 계시에 대하여』를 중심으로 주로 야코비의 인식론과 인식 능력의 구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제5장과 제6장에서는 셸링과의 논쟁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야코비는 동일성 철학을 전개하던 셸링의 자연 개념이 학문적 유신론을 담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제7장과 제8장에서는 헤겔과 주고받은 논쟁을 다루고 있는데, 야코비 철학에서 드러나는 절대적 유한성과 유한한 무한성의 문제에 대한 헤겔의 야코비 비판이 주목할 만하다. 이를 통해 헤겔은 야코비 신앙철학의 실천적 허약함을 부각하지만, 동시에 유한자 내 무한자와의 화해 가능성을 포착하고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더불어 야코비는 나름 헤겔 철학에서의 절대자 개념과 이성 개념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유한한 인간 지평을 넘어서는 자신의 이성 내지 정신 개념을 주창한다.

야코비 철학은 존재하는 직접적이고 단순한 것을 포착하려는 소박한 철학으로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단순한 것을 이해하려는 순간 문제는 복잡해진다. 이해를 위해 개념으로 이름 붙이거나 지칭하는 순간. 우리 머릿속의 단순한 것은 더 이상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머릿속에서 개념의 일차 폭력을 행한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심도 있는 이해를 위해 이 개념을 쪼개고 다른 개념과 비교하고 결합하는 등의 복잡한 지적 작업을 한다. 단순한 것은 더 이상 흔적조차 없는 잔해 속을 파헤치면서 개념들의 퍼즐 작업을 유희하는 것이다. 야코비는 이러한 지적 폭력의 상황을 누구보다 냉정하게 직시하고 있었다. 머리를 통해서든 마음을 통해서든 다시 회복해야 할 것은 지적 이해를 위해 해체하기 이전의 바로 저 존재자의 참모습이라 역설하면서 말이다. 이에 주목하려는 야코비의 철학은 그저 소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한없이 진지해지려는 철학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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