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문자의 오래된 관계 이야기 중국문자 발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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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문자의 오래된 관계 이야기 중국문자 발전의 역사
  • 오제중(吳濟仲) 건국대·중국어학
  • 승인 2023.11.1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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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중국문자 발전의 역사』 (오제중 지음, 한국문화사, 240쪽, 2023.10)

 

인류가 언어 구사 능력을 갖추게 된 이후 탄생한 문자는 인간이 지닌 무한한 지적 능력의 결정체이다. 따라서 문자는 사상과 감정을 교류하기 위한 기본적인 수단이라는 기능적인 측면 이외에도 해당 민족의 사유 체계와 문화적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인류 유산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중국문자 역시 갑골문(甲骨文)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의 세월을 거치며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다. 더욱이 중국문자는 한반도를 비롯한 주변 지역에 자연스럽게 유입되며 ‘한자문화권’이라는 문자를 통한 문화적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중국문자는 단순히 언어의 보조적 기록수단이라는 문자의 기능적인 측면을 넘어서 각 나라와 지역 고유의 서사적(書寫的)인 언어 기록과 문화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정보를 담아내고 있다. 따라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어져 내려온 중국문자의 발전 과정을 엮어내는 것은 고대 중국인들의 사고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과정이자 문자가 가지고 있는 언어학적인 기능 파악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문자(中國文字) 발전의 역사를 살피기 위해서는 먼저 문자의 개념 및 이것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 영역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문자학(文字學)이란 문자에 관한 기본적인 이론과 개념 그리고 유관 학문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중국문자를 연구하는 학문을 현재는 일반적으로 문자학이라고 하지만 고대에는 이것을 소학(小學)이라 지칭했다. 중국문자의 구성은 자형(字形), 자음(字音), 자의(字義)의 세 가지 요소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 따라서 고대에는 이러한 세 가지 방면의 내용을 수록하고 있는 서적들을 모두 소학의 영역에 편입하였다. 이후 청대 건륭(乾隆)과 가경(嘉慶) 시기 이래로 소학 연구자들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각 영역의 내용을 형음의(形音義)로 나누어 분명히 하였으며 이와 관련된 연구를 각기 문자학(文字學), 성운학(聲韻學), 훈고학(訓詁學)으로 분류하였다.

언어는 부호 체계로서의 보편적 특징뿐만 아니라 기타 부호 체계와 대비되는 특수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언어부호를 구성하는 물질적 형식이 바로 언어이다. 따라서 언어는 본질적으로 일종의 청각적(聽覺的) 부호 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청각적 부호 체계인 언어를 시각적(視覺的) 부호 체계로 변환하여 담아내는 것이 바로 문자이다. 또한 언어와 문자는 서로 다른 개념의 부호 체계로서 문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언어를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서 문자는 청각부호(聽覺符號)인 언어를 시각부호(視覺符號)로 전환하는 단계에서 탄생한 정교한 고도의 대체 수단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문자는 일반적으로 자형(字形), 자음(字音), 자의(字義)의 세 가지 필수 구성 요소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문자 탄생 과정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먼저 실물 혹은 추상적 관념에 대한 인지(認知)가 생긴 후에 이것을 음성 기관을 통해 나타내는 발음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기록을 위한 시각적 부호 체계인 문자가 탄생한다. 따라서 문자에는 이러한 내용이 모두 형음의(形音義)의 형식으로 포함되어 있으며 문자의 탄생으로 인해 비로소 생각과 소리가 가지고 있는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다. 고대 중국문자 역시 대체로 모두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며 탄생하게 된다. 바꿔 말하면 문자는 형음의(形音義)의 집합체이며 이는 바로 중국문자의 본질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한대(漢代) 허신(許愼) 역시 이러한 점을 인지하여 자형을 위주로 수록하고 있는 중국 최초의 본격적인 자서(字書)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자의(字義)의 하나인 본의(本義)를 밝히기 위해 노력했으며 형성(形聲) 등의 문자 구조를 통해 자음(字音)에 대해서도 주목하였다. 

정리하면 언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며 중국문자 역시 이러한 과정에서 자형은 물론 의미의 새김과 발음까지 처음 창제 당시와는 다르게 변모를 거듭했다. 따라서 본 저서는 중국문자의 핵심 개념과 발전 과정을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담아내기 위해서 ‘중국문자 발전의 역사’라는 대주제를 중국문자 인식의 역사, 중국문자 연구의 역사, 중국문자 변화의 역사라는 세 가지 핵심 항목으로 나누어 다루었다. 먼저 ‘중국문자 인식의 역사’에서는 문자를 둘러싸고 있는 언어와 부호와의 관계는 물론 문자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 요소인 형태, 발음, 의미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으며 이를 통해서 중국문자를 인지하는 본질적인 과정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중국문자 연구의 역사’에서는 문자 속에 담긴 언어학 이론을 탐구하기 위해 노력한 연구자들의 학문적 내용과 결과에 대해 다루었으며 특히 역대 최고의 문자학 이론서로 꼽히는 설문해자(說文解字)를 대상으로 고대 언어학의 수준을 가늠했다. 그리고 ‘중국문자 변화의 역사’에서는 중국문자의 외형적 변화 과정과 자형의 성립 배경에 대해 갑골문과 금문(金文)을 비롯한 각종 고문자로부터 예서(隸書) 이후 현재 통용되는 문자에 이르기까지 자형별 특징에 관해 알아보았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각종 첨단 과학기술과 새로운 융합 학문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정보가 물밀듯이 쏟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마치 박물관에 남겨진 화석과도 같은 중국문자의 역사와 기원에 대해 살피는 가치와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결국 이러한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답은 문자를 창제하고 사용해 온 ‘인간’에게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수많은 중국문자 혹은 더 나아가 이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 문자로서의 존재가치조차 희미한 문자들도 인류의 발전과 함께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져 생명력을 얻고 또 변화하고 심지어 사라지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문자의 본질적 의미와 생동하는 변화 과정에 대한 원리를 깨우치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선현들의 고단함 또한 문자의 발전 과정에 담겨 있다. 결국 문자를 살피는 것은 이것을 창제하고 사용하고 또 연구해 온 인간의 지적 능력과 탐구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문자는 인간의 사유 활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인문학(人文學)과 문자는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인본주의(人本主義)의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돌아보면 문자의 근원적인 의미 파악을 위해 노력했던 허신(許愼)도 사람에 대한 새김을 ‘천지 만물 가운데 가장 귀한 것’(人, 天地之性最貴者也.)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위대한 인류가 만들어낸 문자는 소중한 문화적 산물 가운데 하나이자 인간과 관련한 다양한 학문 세계의 탐구를 위한 가장 유용한 도구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과정이며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나간 역사적 실체를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중국문자와 관련한 여러 주제의 탐색 과정도 이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따라서 현재의 문자 상황과 언어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언어학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중국문자에 대한 내용을 역사 속에서 살피고자 했던 이유이다. 

 

오제중(吳濟仲) 건국대·중국어학

건국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건국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대만사범대학(國立臺灣師範大學)에서 문자학으로 문학석사와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버클리대학교(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Center for Chinese Studies)와 인디애나대학교(Indiana University Bloomington, Department of East Asian Languages and Cultures)에서 방문학자로 연구를 진행했다. 건국대학교 언어교육원 원장과 한국중국언어학회 부회장 및 수석학술이사 등을 역임했다. 『한중일 공용한자 808자』(공저) 등의 저서를 집필했으며 『설문해자』를 비롯한 고대 중국어학 관련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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