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문을 연 최초의 인문주의자,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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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문을 연 최초의 인문주의자,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 김효신 대구가톨릭대·비교문학
  • 승인 2023.11.11 2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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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에게 듣는다_ 『나의 비밀』, 『고독한 생활』, 『종교적 여가』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지음, 김효신 옮김, 나남, 각 248·312·304쪽, 2023.10)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는 중세의 말기이자 근대의 여명을 여는 전환기에 늘 알프스의 산봉우리들을 오르내리길 마다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러기에 알프스 산속에 깊이 들어앉은 수도원들의 지하 서고나 창고에 방치되어 있던 옛 문헌들을 뒤지고 또 뒤지는 일이 가능했다. 옛 문헌을 찾아내면 바로 필사하고 고전 작품을 현실로 불러오는 작업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페트라르카다. 그리하여 고전복원의 전통이 페트라르카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자신이 ‘고전 문헌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또한 고대 문화를 근대에서 부활시켰다는 의미에서 르네상스를 스스로 실천하는 ‘최초의 르네상스인’ 또는 ‘최초의 르네상스적 인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페트라르카는 단순히 “장서를 수집하기 위해 책을 모으는 것을 경계하라”고 말하며, “독서는 책을 ‘서가’가 아닌 ‘머리’ 속에 넣어야 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페트라르카의 방대한 독서량과 고전문헌 복원작업으로 얻은, 고전에 관한 해박한 지식은 그의 주요 저작에서 잘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나남을 통해서 소개되는 일련의 페트라르카 산문 작품들, 즉 『나의 비밀』, 『고독한 생활』과 『종교적 여가』 등을 꼽을 수 있다.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1304. 7. 20 ~ 1374. 7. 19)<br>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1304. 7. 20 ~ 1374. 7. 19)

중세와 근대를 연결하는 과도기적 인물이면서 ‘최초의 르네상스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는 이탈리아 인문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라틴어 학자다. 그는 1304년 7월 20일 이탈리아 아레초에서 태어나 1374년 7월 19일 아르콰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70년간의 삶을 통해 문학에 대한 사랑을 철저하게 실천한 계관 시인이기도 하다.

페트라르카의 라틴어 산문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나의 비밀』, 『고독한 생활』과 『종교적 여가』 등은 명상적, 종교적, 사상적인 특성을 띠며, 개인의 의미와 가치에 비중을 두고 있다. 『나의 비밀』에 이어 페트라르카는 인간 한계의 속성에서 비롯된 고통의 의미를 사랑을 통해 극복하고자 한 시집 『칸초니에레』를 탄생시킨다. 이탈리아어로 쓴 『칸초니에레』는 이탈리아 인문주의 시인 페트라르카가 남긴 불후의 명작으로, 이탈리아 서정시의 효시이자 서양 시문학사에 가장 절대적인 영향력을 보여준 시집이다.

페트라르카 연구자로서 <대학지성 In&Out>에 올해 10월 15일 한국에 처음 번역 소개된 작품들을 소개할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여기서, 페트라르카의 라틴어 산문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나의 비밀』, 『고독한 생활』과 『종교적 여가』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나의 비밀』

Secretum (나의 비밀)』은 페트라르카의 대표적 산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나의 비밀』은 페트라르카 자신의 정신적 위기를 계기로 자기 구원을 위해 쓴 작품이다. 페트라르카와 성 아우구스티누스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진 『나의 비밀』은 영혼의 고뇌에 대한 비밀을 파헤쳤고, 시인의 내면적 삶에 대한 냉정하고도 명쾌한 분석을 해놓은 명저이다. 중세적 사상과 근세의 사상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서문에 따르면, 영혼의 병에 시달리고 있는 저자 앞에 “진리 그 자체”가 거룩한 처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빈사 상태에 있는 저자에게 연민을 느끼고 구원의 손길을 뻗치기 위해서다. 그녀는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르게 하고 그가 저자와 대화하게 한다. 즉, 두 사람의 대화를 설정하고 그 후에는 침묵 속에 대화에 입회하여 그 빛으로 대화자를 비추고 지켜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진리의 여신” 앞에서 그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프란체스코와 아우구스티누스와의 대화가 사흘에 걸쳐 이어진다. 그 대화를 적어둔 것이 <나의 비밀』이다.

이 작품의 원제는 De Secreto Conflictu Curarum Mearum (내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갈등에 대하여)이다. 보통 『나의 비밀』이라고 불리지만, 이 이름도 결코 자의적인 것은 아니다. 페트라르카는 서문에서 이 책을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쓴 것, 따라서 세상에 내보낼 생각이 없다는 것을 기술하며 말한다. “너는 ‘나의 비밀(Secretum meum)’이며 또 그렇게 불릴 것이다.” 

이처럼 페트라르카 자신도 이 책을 “나의 비밀”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생전에는 유포하지 않았고 친구들도 읽지 못하게 했다. 말 그대로 “나의 비밀”로서 가슴속에 품고 몰래 이 책의 “대화”를 되새기고 종종 수정했다. 그만큼 애착이 깊은 작품이었다는 말일 것이다. 그는 29살 때부터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항상 지니고 있었으며 이 같은 사실을 공공연히 말했지만, 자신의 저서 『나의 비밀』 또한 숨겨둔 채 늘 가지고 다니는 책이었다.


『고독한 생활』

De vita solitaria (고독한 생활)』은 아비뇽의 주교 필립 드 카바솔에게 부치는 두 통의 편지로 이루어진 라틴어 서간문이다. 페트라르카는 이 편지에서 그리스도교로 표상되는 궁극적 미덕에 도달하는 길로 ‘고독’과 ‘여가’를 내세운다. 한편 고전 라틴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고대의 사상가들이 남긴 문학 자산을 자신이 마주한 현실적 고민을 해결하는 실마리로 삼는다. 그의 탐구는 기독교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 중심은 어디까지나 문학적 감수성과 이성적 성찰에 있다. 근대적 에세이의 전형을 예시한 작품으로서 르네상스의 탄생을 알린 기념비적 저술이다. 

『고독한 생활』은 페트라르카의 본성과 열망을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으로 영혼의 평온함과 자유로운 상태에 이르기 위한 고독과 침묵을 예찬하고 있다. 저자는 중세 금욕주의에도 소중한 주제였던 고독을 높이 평가하지만, 이를 관찰하는 관점은 엄격히 종교적이지 않다. 

『고독한 생활』에서 페트라르카의 목적은 혼잡한 장소와 성가신 걱정에서 은퇴하고 독서, 문학 창작, 평화로운 회상의 즐거움과 소수의 선택된 친구들의 사교에 전념하는 여가의 삶의 아름다움을 축하하는 것이다. 호라티우스와 에피쿠로스에 대한 그의 태도에는 도덕주의자나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자 이상의 것이 있다. 개인과 관습, 새로움과 전통이 상호작용하는 곳이 어디든지 간에 어떤 요소가 중요한지는 의심할 여지 없다. 페트라르카는 때로 자신의 진실한 감정에 대해서 자신까지도 속일 수 있지만, 결국 그가 남긴 글에서 그의 목적은 순수하게 개인적이고 사적인 이상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명백한 인상을 남긴다.

『고독한 생활』은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필요로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알게 해주는 작품이다. 그것은 절대적 도덕규범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첫걸음으로, 2세기 이상 앞선 몽테뉴의 『수상록』의 관점을 보여준다.


『종교적 여가』

De otio religioso (종교적 여가)』는 페트라르카가 동생 게라르도가 몸담은 카르투시오 수도회에 부친 두 통의 편지를 묶은 산문 작품이다. 여기서 그는 종교적 여가의 실천과 효용을 치열하게 성찰한다. 사색하며 지내는 고독한 삶이야말로 기독교적 미덕에 다다르는 길임을 힘주어 말하는 한편, 고전문학을 치열하게 읽고 연구한 경험이 영적 탐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증언하는 페트라르카의 진솔한 목소리가 한데 담겼다. 라틴 고전에 대한 풍부한 학식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이 작품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종교적 열망으로 승화하고자 한 저자의 뜨거운 진심을 엿볼 수 있다. 

페트라르카는 동생 게라르도에 대한 다정한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안과 걱정을 수도사의 평화로운 삶과 대비시켜 놓았다.

페트라르카의 전체 저서 중 『종교적 여가』는 금욕적 입장에 대한 그의 가장 일관된 표현을 담았다. 

 

김효신 대구가톨릭대·비교문학

대구가톨릭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겸 안중근연구소 소장. 한국외국어대 이태리어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영남대에서 국문학 박사(비교문학전공)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한국문화 그리고 문화적 혼종성》(2018), 《시와 영화 그리고 정치》(2014), 《한국 근대문학과 파시즘》(2009), 《이탈리아문학사》(1994), 《문학과 인간》(공저, 2014), 《세계 30대 시인선》(공저, 1997) 등이 있으며, 역서로 《페트라르카 서간문 선집》(2020), 《칸초니에레:51~100》(2020), 《이탈리아 시선집》(2019), 《칸초니에레:1~50》(공역, 200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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