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과 정동 그리고 아날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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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과 정동 그리고 아날로그
  • 김민지 이화여대·국문학
  • 승인 2023.11.11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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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브라이언 마수미』 (김민지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146쪽, 2023.10)

 

디지털 시대를 넘어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고민하며 살아야 하는가?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는 이러한 물음에 나름의 방향성과 현실적 조언을 준다.

≪브라이언 마수미≫는 마수미의 정동 개념을 정리하고 오늘날 디지털 문화와 살이 맞닿는 부분을 탐구한다. 디지털 담론은 어느새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한 담론으로 변화하고 확장되고 있어 정동 개념의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마수미는 디지털과 인공지능 문화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삶의 본질을 설명하고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제시한다.

≪브라이언 마수미≫의 핵심 키워드 세 개는 ‘정동’, ‘0.5초’, ‘아날로그’다. 마수미의 철학을 따라가다 보면 마수미 특유의 니체적, 스피노자적 삶의 방향성을 발견할 수 있으며, 현대 사회가 추구하고 도모하는 발전 방향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

① ‘정동’은 정서를 유발하거나 정서로부터 촉발되는 사건과 관련된다. 정동은 정신과 신체 나아가 시간을 횡단하면서 다양한 이미지와 반응으로 발현된다. 마수미는 스피노자와 들뢰즈가 말한 정동의 ‘정도(degree)’에서 나아가 정동을 새로운 변이를 위한 ‘충동(impluse)’으로 보았다. 마수미는 정동이 ‘마주침’에서 비롯한다고 보았다. 이로부터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이 발생한다. ‘충동’은 이러한 마주침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스파크’로,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일련의 사건과 미래의 사건에 대한 잠재적 가능성을 축적한다. 

마수미의 정동 개념은 우리의 가능성을 담보한 일종의 증명이자 ‘존재함’을 증명하는 생명의 작동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도나 해러웨이가 말한 “함께 만들어 가기”가 삶의 본질로 작용하는 이상 모든 생명체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정동 개념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일종의 공생 관계를 유지하고 지속하기 위해 정동은 필수다. 고로 무언가를 도전하고, 마주하며, 다른 이들과 대화하고 살을 맞대는 모든 사건은 정동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비로소 생성된 사건은 많은 필연이 모여 세계를 구성한다.

② 0.5초는 마수미가 벤저민 리벳(Benjamin Libet)의 실험으로부터 발견한 개념이다. 리벳에 따르면 인간은 외부 자극을 인지하기까지 0.5초의 시간이 걸린다. 즉 사유로 형성하기까지 걸리는 0.5초는 시간의 의미를 넘어 우리가 여태껏 규정할 수 없었던 개념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기준이 된다. 0.5초라는 지체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이 쌓인다. 여기에는 경험, 무의식, 가상 등 의식에 편입되지 못하고 초과된 잠재적인 것들이 포함된다. 이 찰나는 미래의 시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척도다. 

0.5초의 공간에서 현재의 행동을 독려하거나 미래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 순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생성하고 가능성에 노출시킨다. 0.5초의 잠재성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보고 느끼고 만지는 행위에서 기억하고 표현하고 말하는 작용의 잉여가 0.5초를 채우기에, 마수미는 0.5초 속에 ‘사물들의 환각’이 있다고 본다. 이 환각은 어떤 것으로 규정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한다. 사물들의 환각은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이자 앞으로 우리가 선택하고 직면해야 할 미래의 시간일 수도 있다. 0.5초 동안 인간은 무언가를 꿈꾸고 실행하는 잠재적 차원의 무의식적 이행을 실행한다. 

0.5초는 초과된 선택지와 잠재적 부분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강도’에 따른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며 실제적으로 표현된다. 마수미는 이러한 0.5초를 ‘잠재적’이고 ‘가상적’이라고 주장한다. 마수미에게 가상은 미래를 향한 현재의 감각적 풍요로움을 뜻한다. 즉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차원으로 존재하지만 당장은 어떤 것도 될 수 없는 상태. 이것이 바로 마수미가 말하고자 하는 가상(virtual)이다. 

③ 아날로그의 어원은 지속성에서 시작한다. 아날로그는 비례하다 혹은 가공할 수 없는 대상의 지속성을 뜻한다. 이러한 이래를 기반으로 마수미는 디지털이 오로지 아날로그를 통해서만 잠재적인 것과 가상적인 것을 연결한다고 보았다. 디지털은 코드를 통해 대상들을 잇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관계망’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아날로그가 디지털에 비해 촌스럽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날로그는 디지털과 대비되는 개념이 아니다. 마수미는 디지털을 아날로그의 우회 결과로 이해한다. 달리 말하면 디지털은 아날로그로 구성된 하나의 과정이다. 

마수미는 디지털을 가상을 넘나들 수 있는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하면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순환으로 생성되는 유비쿼터스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언제 어디서나 디지털 세계에 접속할 수 있는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고 보았다. 마수미의 예언대로 우리는 현재 많은 것이 디지털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 외국어 공부도 선생님 없이 인공지능과 함께할 수 있고, 메일이나 감사패 문안을 작성할 때 챗GPT를 이용해 고민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사회는 단순하고 윤택한 삶을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마수미는 이처럼 편리하고 단순한 삶은 권태로 빠지기 마련이라고 보았다. 정동 개념에서 살펴보았듯 우리는 무엇인가와 마주하며 새로운 사건을 생성하고 사유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인공지능과 디지털로 대체된다면 인간은 지루한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마수미가 강조한 것처럼 아날로그적인 것은 디지털적인 것과 비대칭적으로라도 함께해야 한다. 우리가 놓쳐서 안 될 부분은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다. 마수미가 『가상계』에서 “아날로그적인 것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듯 아날로그는 디지털 사회에서도 계속 추구해야 할 개념이며, 디지털과 인공지능의 발전과 활용의 기반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아무 것도 하지 않기를 원하지 않는다. 인간은 결국 최후에 아날로그적인 것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브라이언 마수미≫는 정동과 0.5초, 그리고 아날로그를 비롯해 마수미의 다양한 개념을 소개한다. 감정을 넘어 사회가 만들어 내는 동조, 공포와 불안과 같은 감정들이 어떻게 전염되고 정동되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다양한 마주침과 정동을 이해하면서 ‘나’ 자신이 사건을 생성하고 있음과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임을 확인하길 바란다. 마수미의 사유는 오늘날 문제의식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수미의 사유를 넘어 오늘날의 현상과 문제를 탐험할 수 있을 것이다. 

 

김민지 이화여대·국문학

이화여자대학교 호크마교양대학·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양학부 강사. 글쓰기센터를 운영하고 창작·글쓰기 특강을 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는 “정동의 잉여적 사유들: 브라이언 마수미 논의를 중심으로”(2020), “카타르시스와 정동의 시론적(試論的) 고찰”(2020), 질 들뢰즈와 브라이언 마수미의 정동 개념을 바탕으로 시대와 문학 작품을 분석한 박사 논문 “1920년대 한국 현대시의 정동 시학”(2022) 등이 있으며, 정동 관련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챗GPT를 활용한 시창작 방안 연구”(2023) 논문을 시작으로 인공지능 문학과 글쓰기 관련 연구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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